[納凉(납량)] 여름과 냉맥주
발행일1961-08-20 [제291호, 4면]
내가 아는 이 중에는 여름에 도리어 살이 찌고 식욕이 왕성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본시 건강한 체질에다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30분 내지 한시간 동안 줄넘기를 하고 추침 전에도 운동을 하는 일과를 다년간 계속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섭생(攝生)에 매우 노력하는 사람이였다.
나는 어느 쪽인고 하면 더위를 타고 식욕이 후퇴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여름철이 싫지 않다.
추운 때는 추운 때의 풍치(風致)가 있고 더운 때는 더운 때의 풍치를 깨닫는다. 더위를 피하여 산이나 바다로 가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근자 10년 사이에 산에는 거의 간 일이 없고, 바다는 두어 번 간 일이 있는데 다른 「비지네스」에 따른 여행이였고, 해수욕이나 피서만을 목적으로 떠난일은 한 번도 없었다.
글쓰는 사람 중에는 밤에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도 한 때는 야밤 중에 남이 자는 틈을 타서 일을 했었다.
그러나 과거 10여 년간, 밤에 일하는 예는 극히 드물었고 낮에 일하는 습관을 계속해 왔었다. 수은주가 「화씨」 100도를 오르내리는 한낮_ 잔등이와 이마에 땀이 축축이 배이면서 원고지와 씨름하는 것이 나의 납양법(納凉法)이다. 더위를 피하지 않고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요령인데 이열치열(以熱治熱) 이독치독(以書治書)하는 이치이다.
혹시 게으름을 피고 일을 하지 못했을 때는 비록 시원한 바람이 불어도 마음은 시원치 못하다.
더위와 싸워 일을 한 날은 뙤약볕 속을 걸어도 마음에는 일진의 청풍(淸風)을 느낀다. 그리고 허물 없는 친구와 함께 저녁에 냉맥주 한잔을 나눈다면 그 시원한 맛은 비길 ㅔㄷ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첫잔 한 「그라스」이고 잔을 거듭할수록 청량미(淸凉味)는 줄어든다.
그러든 것이 작년 봄부터 위병으로 금주를 하고 보니, 여름철에도 그 시원한 맥주 한 잔도 삼가게 되었다.
한잔 쯤의 맥주라면 비록 위가 나쁘더라도 마시지 못할건 아니겠으나, 술이란 한 잔으로 끄치는 에가 없다. 주고 받는 잔이 자연 두 잔 되고 석 잔 되고, 열잔 스무잔으로 확대되고 만다.
결국 섭생을 하려면 술 근처에 가지 말아야 했다.
술친구들은 여름에 시원한 냉맥주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나를 퍽 동정하는 기색이였다. 동정한다기 보다는 인생의 가장 즐거운 한토막을 빼았긴 불구자로 역이는듯 했다.
과연 나도 한 때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술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을 그와 비슷한 눈으로 나도 보아왔던 것이다.
위병에는 위를 냉하게 해서는 안되므로 나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목욕을 한 뒤에는 뜨거운 국물을 마셨다. 그런데 하루의 땀을 씻고, 더운 것을 마시는 기분도 맥주 맛만 못하지는 않았다. 이마에 맑은 구슬땀이 맺힐 때 땀이 가라앉는 맥주맛과 다를 것이 없이 시원했다.
위병을 얻은 뒤 나는 한때 퍽 비관이 생겼는데 그 대신 불규칙한 생활에서 규칙생활로 들어갔고 한편 술에 따른 시비나 실수에서도 해방이 되었었다.
술이 즐거운 점도 있으나 또 나쁜 점도 적지 않은지라, 나는 병 덕분에 술에 따른 즐거움은 상실했을 망정, 그 해독에서 벗어나는 이득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술에서 얻은 즐거움 쯤은, 다른데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