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兒制限(산아제한)은 必要(필요)한가?
現在(현재) 資源(자원) 이용하면 50배 인구 산다
향락주의자의 한갖 괴변
불의·부정 고치면 돼
발행일1960-12-11 [제258호, 4면]
(承前)
그러나 우리 반대측에서는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모든 문제는 인구 조절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고 오히려 정치적으로써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또 인구조절이란 사람들의 힘으로 마음대로 이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문제이니까 또 경제적 문제도 인구를 줄임으로써 해결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무한한 자원을 더 잘 개발하여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제나 산아제한을 반대하는 우리 가톨릭적 입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최근 영국식량연구회에서는 지금 인류가 이 지구의 자원을 과학적으로 더 잘 이용한다면 현재 지구상에 살고있는 사람의 50배의 사람을 먹여살릴 수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와같이 지구안에는 아직도 무한한 자원이 있다. 우리가 부족을 느끼는 것은 아직도 이 자원을 완전히 이용하지 못하니가 그렇고 또 개발된 자원도 일부에서 잘못 이용하니까 그렇다. 우리 한국만 보더라도 이북 공산주의자들의 불의의 정권이 없어진다면 우리 한국내에 경제적 혼란이 얼마나 해결될 것이다.
또 우리 남한만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기 어려운 것은 다만 사람이 많아서만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니고 오히려 사회적인 불의와 부정이 성행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이혼란을 해결하는 길은 앞으로 생겨날 제이 국민의 수효를 줄임으로써가 아니라 당장 성행되는 불의와 부정을 교정함으로써 비로소 해결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사회에 이 불의와 부정을 고치지 않고 인구만 주린다고 하면 무엇이 되겠는지 한번 상상해보자. 그러니까 오늘의 사회적 혼란을 교정하는 길은 인구조절이 아니라 전국민의 도의심을 앙양시키는데 있는 것이다.
또 현재 산아제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정말 살기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인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중류계급 이상의 생활을 하는 향락주의자들이다. 이것은 세계 어느나라에서든지 마찬가지다.
사회적 혼란의 원천이 되는 모든 불의와 부정이 이러한 무리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악을 고치기도 전에 또다시 앞으로 생길 아이들까지 없애버리고라도 우리는 향락을 누려야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악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만일 누구가 사회적 혼란을 사회적 불의부정을 교정하지 않고 인구조절로써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에게 악에다가 악을 합하면 선이 된다는 것을 먼저 증명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우리 현실에서도 남을 못살게하고 나만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죄악이라면 싹트는 생명을 없이해버리고 우리는 안락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죄악이겠는가.
또 피임행위가 윤리적으로 얼마나 추한 짓이며 또 얼마나 많은 죄악의 원인이 되는지는 각자가 자기의 양심의 호소로서 깨닫고도 남을터이니 새삼스러이 여기에 말하지 않겠다. 토론한 연사중 한 분이 사람이 많아서 못살겠으니까 산아제한을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일지도 모른다고 한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이론은 내가 잘 살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방해가 되면 그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말과 마찬가지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무자비한지 모르지만 천주님은 절대로 이렇게 무자비하시지 않다.
혹시 누가 수태되기 전에 수태되지 않게 막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수태된 생명의 힘은 수태되기 전 생명의 힘에서 생겨나는 것이니까 살 수 있는 힘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둘이다 꼭 마찬가지다. 어느 것을 죽이든지 살려고 하는 힘을 꺾어버리는데 매일 반이다. 노약자를 죽인 것은 장성한 사람을 죽인 것 보다 더 중하게 취습하는 형법의 원리를 생각한다면 전자의 죄악이 더 클지도 모를 것이다.
우리가 잘 살기위한 계획은 다른 생명을 부정함으로써 성취할려고 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생명까지라도 잘 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므로써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구안에는 자원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다. 이 자원을 잘못 이용하고 못다 이용하니까 그런 것이다. 한 사회가 잘못되는 것은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사회질서가 혼란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인구조절문제가 선견문제가 아니고 사회질서 확립문제가 선결문제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