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敎會(교회)의 反共運動(반공운동)
발행일1961-08-20 [제291호, 4면]
【편집자 주】 본고는 부산교구 학생연합회 지도 <안젤로> 김(金南洙) 신부가 광주시 「사레지오 남자 중고등학교」에서 개최된 제7차 「대한가톨릭학생연합회 전국대위원대회」에서 1주간에 걸쳐 강론한 강론 전문입니다.
공산주의가 근대 무신론의 극단형태(極端形態)로 나타나게 되자 반공운동에 나선 제일인자로서 가톨릭교회가 자처할 수 있다. 1891년의 <레오> 13세께서 공포하신 『레룸 노바룸』 회칙(回勅) 이래 오늘날까지 교회의 반공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 『레룸 노바룸』
<레오> 13세 회칙 「레룸 노바룸」으로서 <맑스> 사회주의로 기울어져 가는 서구 사회문제에 교회가 관심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그리스도교적 노동조합은 계급투쟁 정신을 공격하여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반공운동에 있어서 가톨릭의 가장 큰 공헌은 공산주의의 악마적 본질을 이미 시초부터 인지(認知)하고 「모스코바」에 대한 투쟁을 최초부터 바른 궤도에 올려 놓은 것이다. 이같은 가톨릭의 반공활동은 구주 각국에 다른 계통의 반공 그리스도교 활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 중 대서특필 해야 할 것은 「스톡홀므」에 창시된 세계회의(世界會議)의 일과 <작끄 마리뗑>을 중심으로 하는 『신(新) 토미즘』의 활발한 문필활동이 있고 또 그리스도의 모습을 독일 노동자들에게 친근케하려는 목적을 추구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사회주의의 일같은 것도 일어났다. 이런 활동들은 각각 별도로 시작되었지만 반공운동의 결정적인 움직임에는 틀림없다.
즉 진정한 반공주의자, 천상에 근원을 가졌기 때문에 지상에서 책임을 지는 인간을 양성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들에 있어서 가톨릭 교회는 주동역할을 한 것이다.
■ <비오> 11세
『레룸 노바룸』이 서구에서 상당한 효과를 걷고 있을지음에 「맑스」주의는 드디어 1917년 10월30일 「러시아 혁명」으로 실천에 옮겨졌던 것이다. 이렇게 현실화하고 구체화한 공산주의와 더불어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 <비오> 11세께서 『과드라제시모 안노』나 『디비니 레뎀프또리스』라는 두 가지 회칙을 공포하셨다.
『과드라제시모 안노』에서 교황께서는 『레룸 노바룸』의 원리에 입각해서 고전적인 가톨릭적 사회론을 수립하셨다. 여기서 특히 강조된 것은 외계의 개혁보다 마음의 개혁이 훨씬 더 주앧하다는 것이였다.
공산주의자들이 부정한 개인의 소유권 무제를 누구나가 다 납득할 수 있도록 해결지어 주셨다. 소유권의 문제는 개인 대 공동체에 관한 문제와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또 국가에 대한 가정 지방 단체 직업공동체의 존엄성과 지위를 보호해야 한다고도 강조하셨다.
사회 구성문제에 관해서는 1789년 이래로 통용되어 오던 개인 대 공동체의 직접대비에 그대로 동조할 것도 아니고 반대로 개인을 희생하여 공동체편(共同體便)을 과중하게 여길 것도 아니다. 자연의 중용을 존중하는 것만이 양극단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밝히셨다. 가톨릭의 사회론은 공익이 경제통제의 근본원리라 주장할 뿐 아니라 이러한 필요성까지를 함께 강조한다. 공익이라는 것이 자기의 이해보다 공공의 이해를 초월하게 여겨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이익을 억제하는 따위의 부자연성을 교회는 원치 않는다. 세계가 황폐해지지 않고 야만상태로 역행하지 않으려면 이 근본원리에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공동사회생활을 종교에서 의식적으로 이탈시키는 것이 결국 오래지 아니하여 공산주의와 『볼쉐비즘』을 승리케 하는 결과를 가저 올 것이라고 교황께서 경고하셨다.
■ 디비니 레뎀프토리스
이미 『과드라제시모안노』가 가톨릭이 요구하는 사회구성원리를 제시하고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였거니와 1937년 3월19일에 공포된 회칙 『디비니 레뎀프토리스』는 무신적 공산주의와의 대질을 목적하고 있다. 이 회칙은 「볼쉐비키」 공산주의에 내려진 십자군의 소집영장과도 같으며 동시에 그리스도교와 「볼쉐비키」적 공산주의와의 대립의 인상깊은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천주와 호ㅜ세에 대한 신앙, 인간영혼 불멸성에 대한 신앙에 의거한 개인의 인격과 자유의 권리를 역설하고 사회는 권위자와 복종자의 유기적 조직이라 생각하고 인류는 각 민족의 특수한 천분과 임무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사해동포의 이념을 고수하되, 공산주의에 있어서는 자연주의와 유물론이 강조되고 사람은 다만 현세적 집단의 일원에 불과하며 이 집단은 극복하기 어려운 적대심으로 타집단에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
교황께서는 인류가 일대위기에 임했다고 보시고 이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여러 세기를 통해서 그리스도교가 지상의 갱신력(更新力)이 되었고 평화적 요소가 되었던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의 이념과 축복을 전인류가 받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제 제민족(諸民族)은 이처럼 애처럽게 호소하시는 교호아의 뜻을 따르든지 그렇지 않으면 「맑스주의」와 「볼쉐비즘」이 더 광범한 영역에 침투함을 버려두든지 판가름을 지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정치적 경제적 제세력이 「볼쉐비즘」을 항거하여 반격을 전개하게 되었지만 이런 세력이 바른 정신과 진정한 도덕에 입각해서 그리스도교를 고유최대(固有最大)의 동맹자로 생각할제 비로소 최종적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크게 위로되는 일은 얼마 전까지 애매한 자유와 평등이란 「슬로강」만으로 반공투쟁에 나섰던 강(强)「팀」 미국이 드디어 1956년 여름에 하원에서 『우리는 신을 믿는다』라는 국제반공 「슬로강」을 택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미국이 그리스도교를 반공전선의 동맹으로 받아들인 증거일 것이다.
교황께서는 『디비니 레뎀프토리스』에서 「러시아」 「멕시코」 「스페인」 등지에서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공갈, 약탈 등에서 오는 심한 일체의 사물에 대한 무차별 투쟁은 「볼쉐비키」 체계의 당연한 사물인 것이다. 이것은 분명 우주와 인간사회의 온갖 질서의 중심이 되어야 할 천주로부터의 이탈일진데 인간의 사고와 해우이가 다시 살아계신 질서이신 천주께 접근할 때에 비로소 사회질서의 근본요소가 나타날 것이다.
개인이 가정·국가·경제적 사회영역, 인간 공동체에 못지 않게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성은 경제적 착취로 인한 인간의 실격과 노예화에 항거하지만 그만 못지 않게 또한 집단주의 공포정치로 인한 인간실격과 노예화에 항거한다.
이것이 조물주의 뜻이다. 개인과 사회가 다같이 창조주로 섬겨야 할 천주께서 양자의 상호관계의 근본 원리를 통제하신다.
교회는 사회나 국가가 교회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 사회 그 국가의 복지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것이다. 위대한 구호사업 수공업자들을 비롯한 각종 노동자들의 힘있는 조직체로서의 「길드」(組合)같은 것들이 그 실례이다.
오늘도 자유진영에서는 이와같은 근본사상을 되살려서 여하한 방법으로서든지 실생활에 적용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 『디비니 레뎀프토리스』는 다음과 같이 굳은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만일 정치가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모성적 경고를 존중하기만 한다면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 대신에 자유주의와 무종교주의를 기초로 삼는 다른 사회를 형성하였다. 그 사회가 최초에는 유력하고 거대한 것처럼 보였지만 오래지 아니하여 그 기초가 튼튼치 못하였음이 폭로되고 따라서 사회 자체가 하나씩 붕괴되고 만다』 하였다.
교회의 가르침에서 출발하고 거기서 얻어진 경험의 빛을 받는다면 오늘이라도 이와같은 불상사를 치료하고 구제하는 수단을 인식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즉 교회가 요구하고 원하는 완전한 신사회를 구성할 새 시대로 옮겨가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일체의 사회악·정치악의 근원이 되어 있는 인류의 현세화와 세속화에 대립하여 지상재물을 버린다는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부활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또 온갖 공동생활의 기초는 사랑과 엄정한 정의의 밀접한 결합이다. 오늘과 같이 권리의 주장이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사회적 평화 대신에 적대, 반목 증오만을 결과할 것이며 이때에 사랑과 정의의 결합은 근본적으로 반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는 오래 전부터 사회정의(定義)라는 범주(範疇)를 정의의 종류에 첨가하였다.
사회정의는 개인보다 공익상 불가결의 요소를 요구하고 있다. 진보하는 사회와 변화하는 인간생활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제문제 앞에서 교회가 그 의제 요구를 얼마나 진중히 부합시키려고 노력하는지를 이 이상 더 명확히 납득시키는 문헌은 다시 없을 것이다.
교회는 가톨릭운동의 방침과 활동을 무신적 공산주의에 대립시켜 사제들과 평신도들의 사도적 협력체를 구성하라고 요구한다.
<비오> 11세의 수많은 회칙과 교서는 마디마다 이 문제에 관한 증언의 보고(寶庫)인 것이다.
조직의 형태 정신, 목적, 활동 대상 등 무엇이나 다 세밀히 지시하고 계신다.
특히 끊임없이 요구하시는 것은 국가와 교회의 친밀한 협력이다. 교회는 끄칠줄 모르고 계속해서 경고를 발한다. 국가가 교회와 밀접히 협력함으로써만 국가 자체의 권위를 보장받을 것이다. 권위 없이는 여하한 노력과 열성도 결국은 위선(僞善)해우이에 불과한 것이되고 말 것이다. 교회는 성직자들에게와 같이 국가 지배자들에게도 책임을 자각하고 진퇴조치를 경고한다. 권위가 영속적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모범적인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강력한 외부적 수단도 결국은 그 권위를 추락시키고 말 것이다.
■ 『슴미 뽄띠피까뚜스』
세계평화 재건에 관하여 <비오> 12세께서 1939년에 공포하신 회칙 『슴미 뽄띠피까뚜스』에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신다.
『천를 증오한다면 도덕의 온갖 기초가 파괴되고 무학자나 미개민족에 있어서까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하며 무엇이 허락되고 무엇이 금지 되었는 지를 가르쳐주는 양심의 소리는 침묵을 지킬 것이며 적어도 양심이 약화되어 버릴 것이다. 이 도덕적 기초의 파괴는 구라파에 있어서 「베드루 어좌」에 위탁되고 설명되어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일찌기 구라파에 정신적 통일을 주었었고 구주 전체가 십자가에 의하여 교육되고 향상되고 개학하여 최고도의 발달을 가저왔기 때문에 타민족과 타대륙에 스승으로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불행이도 성교회의 무류적교권(無謬的敎權)을 부정하였기 때문에 적지 않은 이교도(離敎徒)들은 마침내 그리스도교의 중심교리인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까지 부정하기에 이르러 이로서 정신적 쇠퇴의 길을 급속도로 재촉하였던 것이다』
이 말씀을 따라 사회의 두 질서가 나타난 근본원인은 인류가 천주를 떠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질서 파괴의 주동자인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원자탄도 수소탄도 아니라 오직 인류가 다시 천주께로 돌아가는 길 뿐이다.
사백여 년에 걸쳐 완전히 천주께서 떨어져 나온 현금의 천체 인류는 탕자와 같이 돼지가 먹는 깍지로 배를 채우며 신음하고 있는 것이니 과연 앞으로 그 얼마를 기다려서 아비집을 찾아 갈 것인지 초조한 마음 급할 길이 없다. 탕자인 오늘의 인류가 천주께 돌아가는 날 진리와 자유와 정의의 재통(再統)일이 가능할 것이며 세계평화는 현세를 참된 낙원같이 변모케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