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歷史의 監視者 옷세르바또레·로마노紙 百周年 記念
「바티깐」 일간신문 「옷세르바또레 로마노」지는 금년 그 창간 백주년을 맞이하였다. 즉 1861년 7월1일 창간호를 박았던 것이다.
이 신문의 권위로 말하면 전세계 가톨릭신문의 첫 자리에 서 있으며 교황의 유일한 국제기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신문의 독자성(獨自性)은 또한 그 자체의 권위를 충족시켜 가고 있다 하겠다. 그 증거는 금년 백주년을 맞이한데 보내는 전세계의 동 지에 보내는 관심의 표명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백년을 두고 성좌(聖座) 및 전교회를 방위(防衛)하는 효과적인 「져나리즘」을 영위(營爲)해 왔다. 이 신문이 최초로 봉착한 문제는 정교(政敎)문제이었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있어 정당한 언론(言論)을 주도(主導)할 중대한 사명이었다. 「이태리」 반도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타지역에서도 정교문제 앞에서는 지도적 역할을 해왔다. 이 신문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센세이셔날리즘」을 전혀 구사하지 않고 매일 보도에 충실하며 전쟁 중에는 평화를 순순히 설파하여 오직 역사적인 입각점(立脚点)에서 그 날의 지면을 제작해 갔던 것이다. <비스말크> <뭇소리니> 그리고 <힛틀러> 그 외 수많은 이 역사에의 반역무리들을 겪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와같이 오늘 인간자유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와 붓으로 대결(對決)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신문을 「바티깐」 기관지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신문이 「바티깐」 당국의 공식반영(公式反影)을 한다는 뜻으로 기관지라 한 것은 수긍(首肯)할 여지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엄격한 의미에 있어 신문이 기관지가 될 수는 없다. 다만 가톨릭신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가톨릭신문은 진실하고 권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옷세르바또레 로마노」지는 성청국무성과 공식적인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렇다고 거기 도전하거나 반대표시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신문인 것이다. 가령 미국 대통령 선거에 붙이는 동 지의 논평은 미국민의 찬부(贊否)를 피치 못했다.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롭거니와 1951년 <투루만> 대통령이 <막.아더> 장군을 해임한 것을 찬성한 것은 우리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동 지의 편집책임자는 현재 <라이몬도 만치니>씨이고 그를 보좌하는 <알레산드리> 교수 <롤리> 교수 같은 증진들이 있다.
인간의 존__ 자유 및 그 모든 명예를 보호하기에 과감한 붓을 들고 있는 동 지는 모든 가톨릭신문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또 앞서말한 충실한 역사의 기록을 엮어나갈 동지의 사명은 21세기의 문턱을 넘어려는 시대적 의의와 더불어 더욱 건전히 발전해갈 것이다. 각국 지도적 신문이 동 지 백주년에 찬사와 존경을 보내는 마당에 본보가 이를 이정도로나마 소개하는 것만도 영광으로 여기는 바이다.
■ 1980年? 自由 없는 自由를 約束하는 유토피아
5개년계획 또 제5개년 계획을 거듭해 온 쏘련은 다시 20년 계획을 <후> 수상에 의해 제출되고 있다. 20년 후에 올 무슨 약속이건 대담히 할 수 있는 편리한 제안인 것이다. 최근 발표된 공산당 신강령과 함께 이 20년 계획을 오는 10월의 제22차 전당대회에 제출될 2대 안건이다. 여기 관한 많은 논평이 쏟아지고 있거니와 「뉴·욕 타임스」에 실린 전 8페지를 읽고 나서 흡사 <힛틀러>의 「마인캄프」(나의 투쟁) 같다는 소리가 자자하다. 20년 후의 「유토피아」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손 치더라도 그것은 자유 없는 자유인 것이 분명하다. 인간생활의 신체적 그리고 영성적인 자유가 오늘 보장되어야 한다. 쏘련 국민은 뭣보다 거기 굶주리고 있지 않는가.
이 공산당 선언 기초 안에 대한 신문논평의 중대한 오류를 지적해야겠다. 일본의 「아사히」를 비롯한 몇몇 신문을 보면 그들이 평화적 공존(共存)을 선명히 했다는 것이다. 누차 지적했거니와 그들의 평화란 의식적 투쟁에 의한 평화쟁취(爭取)를 뜻한다. 이런 뜻으로 자유세계에 대한 새 선전(宣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무릇 전쟁의 뜻을 ①군사적 ②정치적 ③경제적 ④선전(宣傳)의 네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네 가지를 종합하고 이를 동시에 진행(進行) 시키고 있는 것이 곧 <후>의 평화공세라고할 수 있다. 가공할 전쟁방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같이 적(敵)의 진상(眞想)을 전하면 반공선전이거니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 때문에 자유세계는 적의 평화공세에 후퇴의 굴욕만 겪어온 게 아닌가? 쏘련은 이 평화공존(공세)의 맛을 단단히 본 모양이다. 「아프리카」에서 「라오스」에서 「큐바」에서 이번에는 「베르린」에서 일련된 수법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핵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본토를 폐허로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같은 소전쟁을 택하고 있다. 그들의 용어를 빌리면 해방전쟁인 것이다. 한편 공산주의를 펴가고 한편 민족주의를 이용한 그것이다. 적의 진상을 알자! 쏘련은 달 「로켓트」를 발사할 단계에 있으면서 왜 또 다시 20년 후에 보다 나은 국민생활을 약속한다고 하는가? 그것은 그간 무수한 소전쟁을 수행하자는 것이요 그것으로 일보일보씩 세계정복에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 베르린 問題 譁和條約案의 但書가 노리는 것은?
서 「베르린」 문제에 이제 회담방식에 의한 해결을 구하는 협상을 성립시킬 시기가 성숙(成熟)된 듯하다. 그 협상 성립의 시기가 9월의 서독 총선거 이전이 될지 혹은 10월의 「모스코바」에서의 공산당 전당대회 이전이 될 것인지 하는 예측을 남겨두고 있다. 공산권의 소식을 뒤저보면 최근 「와르샤와」 동맹국의 회합이 있었다. 이와같은 시기에 「크레므린」서는 <후> 수상과 <판파니> 이(伊) 수상과의 「베르린」 문제에 최후의 의견을 서로 교환했던 것이다. 첫째 여기서 거듭 주장된 것은 110「마일」에 달하는 공산지역으로 뻗친 「앙클라브=ENCLAVE」의 문제이다. 지도를 펴보면 서부독일 지역에서 서 「베르린」에 이르는 기차철로가 동독 지역을 상당히 통과하고 있음을 본다. 이렇게 된 곳을 「앙클라브」라고 한다. 이것은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3년 전부터 주장해온 <후>의 요구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후>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체면문제가 된 것이다. 동독과 공산 「폴란드」를 국경짓는 「오델·나이세」 선에도 문제가 있다. 이 선의 동부지역은 현재 「폴란드」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물론 2차대전 전엔 독일영토이었다. <아데나워> 수상은 동독은 곧 이 「오델 나이세」선을 독일 동부전선인 것을 승인받고자 주장하고 있다. 「베르린」은 자유시로 정하되 완전한 비군사지대로 하고 외부 세계와의 교통엔 방해가 없게 하자는 것이다. 이같이 말하는 공산주장에는 단서가 붙어있다. 특히 양독일 경계(境界)의 불변(不變)을 성문화(成文化) 하자는 것이다. 서 「베르린」이 완전한 불간섭지대 즉 일종의 독립시(獨立市)가 되는 것을 최종목적으로 하는 공산측 요구와 어떤 협상이 성립될런지 주목할 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