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소리지르되 주의 길을 닦으며 그 지름길을 바르게 하고 모든 골짜기를 메우며 모든 산과 고개를 무너쳐 굽던 것을 곧게하고 험하던 것을 평탄한 길이 되게하라」 (누가 3장45절)
<요안> 세자는 광야에서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저의 은혜를 누리고저 하는 자는 바르고 평탄하며 좁고 고독한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훈계하셨읍니다.
첫째로 바른 길이어야 합니다. 바른길은 꾸불꾸불한 길과는 달라 목적지에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고 또한 보기에 아름다우며 비록 목적지가 멀어도 중간에 가리워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끝을 쉽게 볼 수가 있어 걷는 사람에게 많은 위안을 줍니다. 모든 신심생활의 기초는 주의 길로 나아가는데 있읍니다. 주의 걸은 바른 길로서 곧 주의 법이고 주의 법을 준수하는 자는 바른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른 길을 걷기 위하여서는 바른 지향이 필요합니다. 천주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원조를 당신과 비슷하게 만드신 것과 같이 우리를 당신과 비슷하고 아름다운 자로 만드시기 위하여 법을 세우셨읍니다. 이와같이 법을 세운 참목적이 사랑이므로 『사랑하는 자는 법을 준행하는 자로』 (로마 13장8ㅓㄹ) 바른 길을 걷는 자입니다.
다음으로는 평탄한 길이어야 합니다. 평탄한 길을 만들기 위하여서는 언덕을 깎고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언덕과 골짜기와 같은 장애물이 있읍니다. 그 하나는 자만(自慢)하는 교만이고 다른 것은 비겁한 실망입니다. 어떤 사람은 양심을 자기 멋대로 만들어 아는 것이나 생활하는 것이나 모두 충분하다고 추측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장점 이외에 단점이나 결점을 알려고 하지 않고 양심을 거스려 행동하는 것이 없이 안전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돈을 낭비하여도 이것은 내돈인데 무슨 불의한 것이 있느냐 하고 남을 몹시 괴롭혀도 벌을 받을만 하니까 그랬지 하고 물건을 속여 팔아도 나도 속아 살때가 있으니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못보는 자로 하여금 보게 하고 보는 자로 하여금 소경이 되게 하기 위하여 심판하러 오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동안은 절대로 성총을 충만히 받을 수 없으므로 항상 완덕으로 전진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덕을 닦는데 힘쓰지 않는자는 더욱이 외덕에 목말라 하지 않는자는 분명히 자기를 모르는 자입니다. 병에 들었는지 빼가 곺은지 모르는 자가 어떻게 병을 고치고 배를 부르게 하겠읍니까? 또 어떤 사람은 재되중에 있음을 인식하면서 빨리 뉘우치지를 않고 돈 모은 다음에 혹은 늙으며는 천주께서 회개의 성총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읍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고 또한 이와같은 위험한 산을문어뜨리지 않고는 주의 길을 닦을 수가 없읍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한두번 덕을 닦는데 힘쓰가 용기를 잃고 실망의 구렁속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덕을 닦는 것은 너무 어렵다 또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대저 성총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성총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못할 것이 없읍니다. 성인들도 다 우리와 같은 나약한 사람이였읍니다. 그렇다면 같은 사람인 우리는 왜 성인들이 가신 길을 걷지 못하겠읍니까?
그러므로 신앙과 신뢰로써 실망의 골짜기를 메우고 겸손과 거룩한 두려움으로 자만과 교만의 산을 무너뜨려 평탄하고 유쾌한 길을 만듭시다.
셋째로는 좁은 길이야 합니다. 좁은 길에는 호화스러운 자동차는 못다니고 걷는 사람들의 어깨에는 짐이 지워져 있읍니다. 복자 <유스띠아누스>는 치명자와 같이 피를 흘리지 않고 또는 증거자와 같이 고신극기를 하지 않고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생명의 길은 십자가를 메고 가는 길이고 포도밭에서 일하는 길이고 원수와 싸우는 것입니다. 우누가 다 이와같이 수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여 많은 불편으로 고통을 당하는 가난의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있읍니다. 만일 열심하다면 참을 것이고 열심치 못하다면 사기와 도둑질을 시작하여 좁은 길에서 떠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로 가난한 사람이 지는 짐보다 더 무거운 짐 즉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택임을 어깨에 집니다. 저들은 인색과 낭비와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수하에 있어 복종할 의무가 있고 어떤 사람은 장상으로 수하 사람을 돌볼 의무가 있으며 노인도 젊은이도 제각기 어깨에 메어야 할 짐이 있읍니다.
먼저 주의 길은 유쾌하고 평탄하다고 하였읍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 길이 좁아야 합니까? 인내는 육신을 괴롭히나 영혼을 즐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고통을 받는 것 보다 더 유쾌한 것은 없읍니다. <바오로> 종도께서는 『모든 환난중에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천주를 멀리하는 사람들의 걷는 길은 겉으로는 유쾌한 길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쓴 생활의 길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달콤하게 보이는 향락과 정욕에 차있으나 그러나 아무도 그것으로 만족을 채우지는 못하고 많은 수고가 공로는 고사하고 벌만을 기다리게 합니다.
끝으로 고독한 길이야겠읍니다. 생명의 길이 좁은 길이므로 고독한 길일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넓은 길을 걸어 멸망으로 가고 소수의 사람들이 좁은 길을 걸어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겼읍니다. 이 교훈의 말씀은 주의 길을 닦기를 원하는 자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선악에 상관없이 공통된 행동을 요구하는 풍속 같은 것은 예를 들어 옷입은 모양같은 것은 남달리 하려고 하지말고 그대로 따라야겠지만 그러나 그러나 선악이 성립되는데 있어서는 범죄하는 무리들을 따라가지 말고 준수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따라 그리스도와 종도들께서 하신 말씀과 보여주신 표양을 따라야겠읍니다. 이와같이 하기위하여서는 보통 길이 아니라 고독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남에게 잘못하였을 때 용서를 청하는 것은 주의 계명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렇지만 이와같이 하는 사람이 바로 고독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李啓重(요안) 神父(서울 鐘路 主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