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를 만든 사람] (12) 죤.헨리.뉴만(John Henry Newman)
발행일1961-08-27 [제292호, 2면]
■ 생애
1801년 2월21일 「런던」에서 출생 「트리니티」대학과 「옥스포드」에서 연학 재능이 풍부한 그는 처음에 성서(聖書)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1824년에 「성공회」 성직자가 되고 1828년 「세인트 메리」교회의 주임목사 1831년에 대학설교사가 되다.
1843년에 교직을 떠나고 주임목사의 지위를 사임하여 1845년 10월10일에 심한 내면투쟁을 격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로오마」로 가서 1847년에 신부 서품을 받고 「버밍감」과 「런던」에 성 <필립프스 네리>의 「오라또리오」회를 창설하고 1851년에 「더브린」에 가톨릭 대학을 설립했다.
1879년 선교황 <레오> 13세에 의해서 추기경 임명을 받았다.
1890년 8월11일 「버밍감」에서 서거.
■ 사상
<뉴만> 추기경의 사상을 높이 평가하기에 주저할 것 없다. 실용주의자 진화론자 신앙절대론자 근대주의자 신 「스코라」학자 등 여러 학파는 그들 자기네 입장의 대상자라고 다 주장하고 있다.
그의 신앙의 철학은 ①현실적 파악과 개념적 파악과의 구별 ②독특한 반성작용으로서의 동의(同意)와 확실성과의 본질 ③양심의 인식기능(認識機能) ④모든 인식 특히 종교적 인식에 있어서의 유비원리(類比原理)의 의의(意義) 등의 4개의 인식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또한 호교학(護敎學)에 있어서는 특히 다음의 두 가지 관점이 유익하다고 하였다. 즉
①천계(天啓)에 관한 주관적 확실성은 독특한 인식작용(認識作用)에 의해서 개연성(蓋然性)의 집적(集積)에서부터 생겨날 수 있다.
②반대자들의 무조건 반대를 타파하기 위하여는 그들의 사유(思惟)에 의한 무의식적 전제와 출발점을 적출(摘出)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방법은 <뉴만> 추기경이 교모하게 적용했으며 또 정신사적(精神史的) 연구에 있어서 지극히 유효한 것이 되었다.
특히 그는 「대학의 이론」으로 유명하다.
■ 비판
그는 실천적으로 지극히 중요한 근본 인식으로서 가톨릭적 인간의 포괄적(包括的)인 인간학을 낳게했다.
이것은 순 「영국」적인 것으로서 구체적 실존과 구조(構造)에 있어서 반계율적(反戒律的)인 인간으로부터 나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공동체에 의한 「새로운 인간」에로 인도한 것이다.
여기에 <뉴만>이 근대인의 사목자로서의 실천적 의의(意義)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와같은 모든 독창적 인식이 그 정신사적 의의에 있어서 평가된다면 아마도 <뉴만>은 「근세의 교부」이라는 것이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성인(聖人)과 같은 생활은 근대 교부의 면모를 갖추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