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78) 국립 마산병원
病·傳敎 위해 孤軍奮鬪
異·離敎서의 改宗者 많아
敎友 78명에 豫備者 80명 넘고
발행일1961-08-27 [제292호, 3면]
「구마산」 항구에서 「통통」배로 약 40분 가노라면 「가포」(架浦) 해수욕장에 닫는다.
배에서 내려 산밑으로 뻗은 「뻐스」가 뿜어놓은 먼지투성이의 길을 따라 약 20분 또 걷노라면 소위 「국립 마산 폐결핵 요양소」로 알려져 있는 「국립마산병원」이 있다.
소나무가 울창한 앞산이 바로 코밑까지 마주 닿고 뒤에도 울창한 솔밭이다.
어느 대학병원의 정문과 같은 인상의 수위실을 통과하면 비로소 병원에 왔다는 실감이 나게 된다.
낡은 목조건물에다 난방시설조차 없는 것이 병실의 실정이며 주위 환경도 병원답게 완전히 정리가 안 된 것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3백20여 명의 대식구를 거느리고 있는 국립병원으로서는 건물 시설 등이 모두 초라하다는 것도 아마 과언은 아닐상 싶다. 잡초가 무성한 사이사이에 진료소 수술실 진찰실 기타 사무실 등이 산재하여 있고 뒤로 약간 언덕진 곳에 환자들의 병실이 줄지어 있다.
또 한 가지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은(상식에서인지 몰라도) 환자를 개개인마다 격리시켜 입원시킨 줄로만 안 것이 각 병실에 5명 내지 10명씩 공동입실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국에 50만 이상의 결핵환자를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 이나마 「국립」병원에 입원되고 있는 불과 3백명 남짓한 환자마저 충분히 가료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국민보건상 일대 경종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최소한의 식생활 및 병치료를 국고에 의존하면서도 환자 개개인의 자비(自費)를 강요(?)당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에 비추어보아 단시일 내에 완치란 바랄 수 없다는 것이 환자 자신들의 의견이었다. 어느 병보다 영양을 최대로 섭취해야 하는 필요성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생활이 곤란한 환자들은 국고보조에서 나오는 혜택밖에는 전연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고 하니 입원하여 최하 2년 최고 10년을 이부언생활해야 한다는 것도 납득이 갈만하다.
기자가 특히 느낀 것은 이들 환자들이 한결같이 종교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된 사실이다.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수적으로도 우세할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 「프로테스탄트」 유지들의 기증으로 세워진 석조(石造) 교회를 가지고 있고 또 그들만이 입원할 수 있는 입원실을 따로 가지고 있다.
현재 입원하고 있는 환자 중에 가톨릭신자는 78명이다. 그 중 여자환자가 24명이며 그 대부분이 입원 후에 영세했거나 또는 「프로테스탄트」에서 개종한 자들이라 하니 놀라웠다. (현 예비자 수는 교우수보다 많다)
순전히 자기네들끼리의 전교로 이와같은 수의 신자를 가질 수 있었고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신부의 유기적인 지도와 많은 교회서적이나 가톨릭 출판물의 획득이었다.
현재 그들은 자체로서 교우회(校友會)를 조직하고 있다.
연세대학 출신의 <시몬> 최(崔慶_) 회장은 무엇보담도 가장 원하는 것은 교회도 교회고 입원실도 입원실이려니와 밖같 사회 가톨릭 신자들의 관심과 거기에 따르는 정신적 종교적 원조를 바라는 것 뿐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전교를 맡은 <멜키올> 유(柳時泰)씨는 무엇보담도 전교에 필요한 가톨릭 서적의 공급을 열심히 바라고 있었다. 이말들은 자기네끼리 구령사업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최소한 이 정도의 도움과 후원이라도 못해준 과거를 뉘우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