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하는 임무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교회의 사업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돕는 것이다. 급진적이고도 바쁜 나날에 우리들은 너무나 지나치게 시간의 제한을 받고 있다.
우리들 개개인의 기구는 협의(協議)가 아니라 천주와의 따뜻한 대화이며 우리들의 조상은 사회종사와 연구 「크럽」의 감독 등에 더 많은 시간을 활당하기 위하여 매일이 기도를 단축시켜야 한다고 왕왕 생각해왔다.
오늘날 연구 「크럽」이나 소년단, 유치원 기타 수많은 이와같은 공공활동들은 모두 훌륭히 개선되고 잘되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하게 잘되어나가는 가운데 돼 그들은 기구와 강론과 죄를 사하고 고해를 받고 또 아직 신덕을 깨닫지 못한 자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한 근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사제를 모시지 않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들 신부는 기구와 신앙의 본질과 모든 평신도로 하여금 보다 나은 기구를 바칠 수 있도록 하기위한 강론 등을 절대로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바쁘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생활에 일대 해독(害毒)이다. 이것은 비단 일반 평신도에게만이 아니라 우리들 신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일반 교우들은 짧은 「미사」를 원하고 강론이 아주 짧거나 혹은 없기를 바란다. 예비자나 개종자들은 또한 교리지도가 빨리 지나가고 단시일 내에 배움의 과정을 끝내려고 든다.
성수를 이마에 찍는 시늉만 내고 반장궤를 적당히 하고 아직도 영성체가 행해지고 있는데도 신경질적으로 성당밖으로 튀어나가 그날의 오락과 불필요한 일에 정신이 팔려 허둥지둥 가버리는 것을 우리는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수년전 어떤 열성있는 주교가 결혼을 위한 여섯가지 지도에 관하여 책을 낸 적이 있다. 드는 말하기를 모든 사람은 여하한 결혼을 막론하고 비록 결혼에 대하여 잘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반듯이 결혼전에 지도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물론 그 지도가 꼭 여섯가지 뿐만 아니고 최소한의 기초지도는 말할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우리 인간은 기구할 줄 아는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 인간은 예수께서 고난스러운 일생을 마치신 것과 같은 동일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를 요한다.
우리들의 사업이란 존엄(尊嚴)과 신앙 속에 불어일으키는 신념(信念)을 가지고 굳세게 또한 즐겁게 영원한 고난의 생활을 바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간략(簡略)한 것을 좋아한다. 교회 내의 모든 예식절차에도 마찬가지이다.
영세, 결혼준비, 장례식절차(葬禮式節次) 등 모든 교회 예절은 필요이상으로 결코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종도에게 명하시기를 가르치라 그리고 영세를 주라고 하셨다. 성서에는 우리 인간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나타낸 구절이 많다.
우리들 인간은 배우는 데에 끝이 없으며 천주에 관하여 더욱 배워야 하고 그들이 바친 신앙과 교회에 관하여 더욱 배워야 한다.
시간의 압력이란 우리들에게 가장 심각한 곤란이 되는 것이며 우리들 사업은 「시간」이 아니라 「영원」인 것이다.
새해에 우리들은 더많은 시간과 열성을 기구와 강론에 바치도록 힘써야 한다.
광주교구장 하롤드 헨리(玄)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