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깐」공의회 豫想記(예상기)
主要議題 교회법, 신학, 성서, 과학 및 교회일치 평신도 사도직 등
발행일1961-09-03 [제293호, 4면]
내년(1962년) 가을,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그 역사적인 막을 올리게 된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읍니다. 오는 공의회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거기서 무엇이 논의될 것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상정시킨다는 공식발표가 아직 없는 만큼 아래 말씀드리는 것은 모두 예상(豫想)에 불과하겠읍니다. 비록 예상이긴 하지만 그 성격을 어느 정도 밝힌다는 것은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읍니다.
<라브> _부의 근저 『가톨릭교회의 20회 공의회』를 보면 이런 말이 있읍니다. 교회사(敎會史)를 흐르는 강물에 비긴다면 20회 공의회는 (교회사상 스므차례의 공의회가 있었읍니다) 이 긴 물길(水路)에서 다시 한 번 여러 강줄기의 물을 모으고 여러 흙탕물을 정화해서는 폭포수처럼 세차게 떨어지는거와 같다. 강줄기들을 이 지점(공의회)에서 모으고 새 힘과 속력을 얻어 앞길을 바로 잡음과 같다고 했읍니다.
이번 공의회는 제21회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 연고는 전번 공의회 즉 제20회 공의회가 제1차 「바티깐」공의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제1차 「바티깐」공의회는 1869-70간이었으며 여기서 교황의 무류성(無謬性)을 교리로 정의(定義)했읍니다. 그 전번 공의회가 유명한 「트렌트」공의회입니다. 이 공의회는 그 회기가 1545-63년간 실로 18년을 계속했읍니다.
또 이 공의회에는 전세계 주교들이 교황에 의해 전원이 소집되며 그외에 특정의 신학자·성서학자·교회법 전문가들도 초청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관심은 오는 공의회에 있다고 하겠읍니다. 현재 「바티깐」에는 공의회 준비를 위한 중앙준비위원회가 있읍니다만 성하께서는 이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앞서 전세계 2,500 주교들 앞으로 주교들이 생각하는 중요의제(議題)를 제출케한 바 있읍니다. 2년 전 일입니다.
앞서 밝혔음과 같이 구체적인 의제에 관한 공식발표는 아직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하의 의향을 여러 성명을 통해서 살펴보면, 서방(西方) 교회와 동방교회의 「까논」법전(法典)을 새로 선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안> 성하의 공의회에 관한 첫 성명에 포함된 것입니다. 가톨릭 신앙의 성장, 더욱 건전한 도덕의 회복 및 이 시대의 요구와 조건에 합당한 교회 훈령(訓令)의 적절한 적용(適用)은 진리와 일치와 사랑의 장관(壯觀)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읍니다. 1959년 8월 성하께서는 그리스도교 일치에 관해서 이를 추진시킬 뜻을 더욱 분명히 하셨읍니다. 교회의 생활한 힘을 북돋게 하기 위해서 이 공의회를 통해 『모든 갈려진 형제들, 올스독스·프로테스탄트·그 외의 종파들 앞에 교회의 광휘(光輝)를 보내고저 하니 형제들이여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니라』 그러므로 주께 간구하기를 은총의 베푸심을 힘입어 주의 원하시는바 그들이 교회의 품 안에 돌아오기를. 이렇게 표현하여 오는 공의회에서 교회재일치(再一致)에 관한 것을 주용한 의제의 하나로 다루게 될 것을 또한 분명히 했읍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 되겠읍니다. 왜냐하면 지금껏 공의회는 이단(異端)을 규탄하고 「프로테스탄트」 신조를 단죄하는데 그쳤읍니다만 이번에는 그들이 다시 모교회(母敎會)로 돌아오도록 간곡히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하의 뜻을 받들어 지금 교회는 「그리스티안·유니티」, 교회 재일치에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어 상당한 성과를 울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사실은 신문지상으로도 많이 보도되고 있는줄 알고있읍니다.
1960년 6월4일, 성하의 특별성명이 발표되었읍니다(스페르노데이 누뚜). 전세계 주교 및 중요수도원장 가톨릭대학 기타 학술단체로부터 2000여 회신(回信)을 받은 것입니다. 이 회신은 각 성성(聖省)에 회부되어 충분히 검토되고 또 구분을 짓게했읍니다. 이것은 「바티깐」출판으로 인쇄되었는데 전 9판이나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내용은 아직 비밀에 속합니다. 이 회신(回信)을 분류(分類)해서 부문(部門)을 나누고 각 부문의 위원회를 구성하게 했읍니다. 이 위원회는 각 주교들의 제출한 주의제(主議題)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며 이를 통할하는 것이 곧 중앙위원회인 것입니다. 중앙위원회는 51개국 대표로 위원이 구성된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교황 주교 신부 평신자 할 것 없이 그 개인 자체는 완전할 수 없읍니다. 개인은 영성적으로나 지성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요구에 비길 때 많은 결함과 부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허나 완전한 자인 교회는 각인의 완전을 촉구하고 있고 특별히 죄인의 회두를 간절히 희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흔히 그 개인 결함만을 보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조차 오는 찬란한 빛을 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역사의 관점(觀点)을 크게 착각하는 중요한 원인인줄 생각됩니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 내부에서 불변(不變)의 교리를 재천명하고 혹은 발전시키는 일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음을 볼 것입니다. 이는 천주에게 있어서는 진리를 계시(啓示)함이요 한편 인간에 있어서는 이를 정확히 알아듣기 위함인 것입니다. 동시에 이를 전확히 형성(形成)해서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화(言語化)를 구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읍니다.
가톨릭교회를 무슨 전제체제(專制體制)로 보는 사람에게 공의회와 같은 민주방식을 보여 줄 수 있겠읍니다. 공의회는 물론, 교황에게 부여된 신권(神權)에 의거하는 것임을 더 말할 것 없겠으나 그 진행(進行)은 온전히 민주방식으로써 주교들은 자유로히 어떤 교리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설명하고 새 법령의 필요성을 발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에 주교들은 이런 발언의 자유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 다른 민간의회(議會)의 그것과 비길 수는 없겠읍니다. 주교들은 오직 천주 성신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여금 교리의 명확한 이해를 탐구하고 이를 바르게 형성하며 또한 그같은 교리가 현대의 조건에 잘 적합할 것을 진심으로 바라는 지극한 정성으로 이 공의회를 진행시켜 가는 것입니다. 또한 주교들은 교회의 모든 교리는 천주성신으로써 된 것임을 확신코 있으므로 교회는 어느 경우에서도 교리적인 오류에 빠지지는 않음을 전제로 이 회의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주성신의 무류(無謬)의 은혜는 각 주교들이 교회의 성전(聖傳)과 신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항상 따르는 것입니다. 하물며 용의주도하게 마련된 특별 위원회가 제출하는 신학에 있어 거기 아무런 의심도 개입할 여지는 없는 것입니다.
천주성총의 자유, 우리 사이에 합리화된 신앙의 기능, 예정(豫定)의 의미(意味), 원죄와 구속의 성질, 구속에 있어 동정성모의 역할 교회의 진정한 성질 그리고 교회와 교회 밖의 교회와의 관련이와 같은 의미의 국가의 사회질서에 대한 교회의 사명 등은 명확히 성명되어야만 할 중요 항목인 것입니다. 앞서 설명했음과 같이 지명(自明)한 것을 재삼(再三) 말함이 무의미 하지 않으며 더욱 명료한 설명을 붙여야 하고 시대에 적용해갈 중대한 의의를 가졌다고 하겠읍니다.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발달은 또한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지구(地球)의 시작(始作) 고대사(古代史), 핵「에너지」, 공간여행(空間旅行), 인간과 타우주(他宇宙)와의 연관성, 원죄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진화(進化)의 관계, 정신분석학, 의학, 최민(催眠) 산부인과 분야에 있어서의 현대과학의 발견 및 산아예방의 학설, 대중부패와 개인책임, 이혼, 그리스도교인과 국가 및 사회질서와의 관계 등에 언급이 있어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또한 절실히 요구되는 바이라고 하겠읍니다.
성서(聖書)는 가장 중대한 분야에 속할 것입니다. 역사학 언어학의 연구는 성서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지식을 가지게하고 있으며 성서연구에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서 전문가들은 이 방면에 있어서도 실로 방대한 연구와 고대 신앙의 관련성을 깊이 추궁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것도 공의회에서 주교들에게 보고될 것이며 성서가 가르치는 바의 더욱 철저한 해석을 듣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서가 곧 기록된 천주의 말씀이요 정히 알아듣고 그릇침이 없어야 할 성서자체의 가르침에 추호의 변경도 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인간을 통해서 인간의 언어를 빌려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의 언어(言語)입니다. 지난 세기에 발견된 사실에 입각해서 성서 가운데 천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더욱 분명히 인식해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겠읍니다. 가령 「요나」에 관한 이야기 등은 예수 친히 인용하기까지 했읍니다만 대체로 비유(比喩)에인 것이 분명합니다. 「욥」서(書) 「토비아」서 같은 종류이며, 「노아」의 홍수 등도 모두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도 명백한 설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평신자의 교회안의 위치 역시 신학지간에 크게 논의되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교회의 구성을 교황, 주교 신부 등 성직자만을 고려한 경햐잉었읍니다만 이 평신자의 존재에 크게 주목하게 된 것은 또한 큰 자성(自醒)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교육의 진보와 또한 평신자로서도 교회 학문을 습득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교육, 경제, 정치 및 일반 문화의 영역에 있어서는 교회의 요구에 실질적으로 응할 수 있는 것은 평신자인 것입니다. 시대적 요구는 평신자가 교회 안에서 보다 큰 책임을 지고 평신자로서만 감당할 수 있는 분야에 있어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또 그들을 적소(適所)에 사역(使役)할 수 있도록 교회구성의 일원이 될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빈다. 더욱 적극적으로는 평신도 선교사가 파견되고 있으며 그들 가운데는 결혼한 자로서 더 큰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전례(典禮) 문제에 있어서는 창의적(創意的)인 것이 검토되고 있읍니다. 전례의 형식은 교리의 사회적(社會的) 표현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교회는 모든 문명문화 그리고 민족의 다양성(多樣性)에 적용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공의회를 통해서 그 자체를 성찰(省察)하고 밖으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길을 제시(提示)하자는 것입니다. 이상은 간략한 예상(豫想)에 불과하지만 대채로 지도적 논의를 종합한 것이라 하겠읍니다. 이 정도로서도 오는 공의회가 교회사에 있어서 어떤 의의를 차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