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년경제개발계획(經濟開發計劃) 그 1차년도를 맞이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여기 온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위정자나 경제인들에게만 소여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거족적인 관심과 공동노력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그 내용을 알고 응분의 봉사와 희생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설계(設計) 그리고 그 실행은 쉽게 해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실행하려는 중요의도(意圖)를 살펴보면 조속한 시일 안으로 공업화(工業化)되는 길을 얻으려 하고 있다. 기존 중요 공장이 잘 움직여서 100%로 가동하게 되고 또 더 많은 공장시설이 구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상당한 실업자 구제의 방도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일진(一進)해서 공업국을 건설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된다. 여기 일정한 설계(設計)가 필요하게 되는 법이다. 그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생산력이 증대와 농업소득의 향상을 앞세워(先行)야 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경제의 착실한 바탕을 장만하는 일이다. 이것은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공업만을 앞에워 농업의 기계화에 동한한 나머지 종국에 가서는 전체경제를 파행시킨 교훈을 남긴다. 그래서 정부는 구체적으로 농경지의 확대, 유축농업의 확대 그리고 영농자금 및 영어자금(營漁資金)을 방출하여 이런 간접의 방법으로 농어촌을 부흥시켜보려고 하고 있다. 그밖에 충주(忠州) 비료와 도입(導入) 비료의 가격 차이를 조정하는 방법으로 비료보상금(肥料補償金)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책은 농업생산을 확대하고 농업 소득을 증대시키는 방법인데 이런 것은 정부가 농촌부흥을 위한 직접 간접의 투자를 하게되는 방법이라고 하겠다.
이같이 농촌경제 재건에 중요한 정책을 쓰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업위주(爲主)를 목표로 농업 우선(優先)을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 이와 관련된 재정(財政)은 또한 중요한 것이다. 이 재정문제는 계속해서 희망적인 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의 원조 외에 DLF나 서독 등의 차환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외부에서 우리의 장래를 평(評)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만한 일이다. 가령 「뉴욕타임스」지 <카알브> 통신원 같은 이는
① 1945년 이래의 약30억「딸라」나 되는 미국의 경제원조는 한국사람들로 하여금 의타적인 생활을 가르쳐 주었다.
② 한국의 고민(苦悶)은 국토의 양단에 있다. 남한은 공업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인구 1천만 미만의 북한에는 공장과 자연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 배 되는 인구를 가진 남한은 원시적인 농업지대인 것이다. 그뿐 아니다. 약 4백만의 피난민은 나만을 더욱 복잡하게 했다.
③ 남한 공산군의 가능한 공격을 막기위해 육군 약50만을 유지하고 방대한 국가 예산을 소비하지 않을 수 없다.
④ 광범한 실업자 사태를 내고있다. 물론 그것은 경제의 저조(低調)에서 오는 것이다. 확실한 숫자는 아니지만 추측에 의하면 약 천만의 노동인구의 약 25%는 실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⑤ 남한은 지난 10년간 「인풀레이션」으로 인하여 통화는 악화(惡化)되어 왔다.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인풀레이션」은 1954년부터 1959년 사이에 연평균 약 50%의 증가를 보여왓다고 한다. 그러나 차차로 안정되어 왔다.
⑥ 1959년 4월에서 금년 4월 사이의 소비재가격(消費財價格)은 20% 앙등을 표시하고 있다. 일반세대(世帶)가 그 수입의 약45%를 소비하는 곡가가 동기간에 약 60%나 상승했다.
⑦ 남한의 주택사정은 지극히 한심하다. 특히 도시에 있어서 직업난과 주택난이 심각한 것이다. 이런 것을 나열해 간다면 끝이 없다. 그러나 또한 속일 수 없는 사실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처지에서 5년간의 경제계획을 수립하고 그 제1차년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경제기본정책(經濟基本政策)만이 발표되고 있는 단계에 있다. 가령 공공투자(公共投資), 지역사회개발, 곡가유지, 환율의 안전 등은 모두 기본적인 것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같은 장기계획(長期計劃)이 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냐 혹은 민간(民間)을 중심으로 해가야 하느냐 하는 것도 논의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어느시기에 가서 당연히 민간 위주로 한다는 목표를 세운다 할지라도 거기 따른 방법 등은 그 출발에서 정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어느 이론을 전개하거나 또 무엇에 고집을 놓자는 것은 아니다. 이같은 경제계획에 임(臨)하는 우리 스스로의 가질 바 떳떳한 심향(心向)이 더욱 주요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바이다. 이런 초조한 사정에서 국가의 어떤 정당한 강제(强制)를 승인하고 복종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또한 지적하는 바이다.
특별히 내핍생활 저축생활 근로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것은 신앙생활과 그 태도에 있어 일치하는 것이다. 이때야말로 그리스도교적 생활만이 크게 빛날 시기라고 해서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서독의 경제부흥을 가끔 인용하고 「라인」의 기적 운운하고 있으나 그곳 그리스도교 민주당의 경제정책을 지지하고 나선 국민적 뒷받침을 도외시할 수 없다. 교회는 경제윤리(經濟倫理) 및 사회정책면에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적극적으로 이를 지도할 용의(用意)를 가지고 있다. 작년도에 발표된 사회회칙 「마델 엩 마지스뜨라」는 이 경제적 사회적 면에 있어서 교회가 생각하는 바를 요약한 대원전(大原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거기보면 농촌부흥(農村復興) 지역사회 개발에 가장 큰 관심을 표시하고 있음을 본다.
지금은 경제재건에 있어 기본정책만을 운위할 때가 아니고 거족적 국민의 협력을 얻어 그 성공의 뒷받침을 장만할 때인 것이다.
또 흔히 말하는 「라인」의 기적하듯 「한강」의 기족하는 식으로 매혹적인 말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5개년 계획의 성공을 위한 인내와 희생과 노력을 자발적으로 약속할만한 그리스도교도의 신앙적 용이가 필요한 때라고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