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까 성사는 어느 바리세이 집에서 베풀어진 만찬회에서 된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하셨읍니다. 바리세이들은 언제나 사람 뒤에 그림자같이 오 주 예수를 원수의 입장에서 줄줄 따라다니는 그림자였읍니다. 오늘 그들이 예수를 초대하는 목적은 진실한 마음에서가 아니고 어떻게 하든지 예수를 음모하고 모략하는 목적으로 천재일우의 기회로 알고 모셨던 것입니다. 물론 판공날에는 그들의 법률에도 물도 못 깃고 먼길도 못 가고 글자도 완전한 글자를 비컨대 『주』자라면 이 『주』자를 완전히 써놓으면 파공을 꺠친 대죄로 지목하고 그들이 일부러 문간 옆에 고창병든자를 불러놓고(물론 돈으로 매수했겠지요) 에수님의 일거일동을 살폈읍니다. 파공날에 예수께서 그를 고처주시면 파공을 깨치는 자라고 모독하려 했고 만일 안 고쳐주시면 매정하고 몰인정 무자비한 자라고 몰아세울라는 양도론법의 전술을 벌렸던 것입니다. 장차 예수께서 취하실 태도는 무엇이였겠읍니까? 이미 그들이 완악한 그리고 간교한 계략을 빤히 들여다보시는 예수님의 역공격의 전략을 설계하시고 단도직입적으로 『파공날에 병을 낫게하는 것이 가하냐? 하시매 그들은 가슴에 싸늘한 감정을 느껴서 일언반구도 대답을 못하셨읍니다. 그때 오 주 예수는 『옳지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이……』 아마 이런 생각을 하시고 즉석에서 병자를 친히 붙들어 일으키시면서 완치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파공날에 너희들의 나귀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파공날이라고 그냥 두겠느냐? 그 즉시 꺼내주지 않겠느냐 하물며 소나 나귀보다도 더 귀중한 천주의 모상을 가진 이 병자를 파공날이라고 고쳐주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반격전략을 쓰셨으니 그들은 양도논법으로 예수를 공격하려다가 양도논법식으로 도리어 반격을 당하고 패배의 쓴잔을 마셨읍니다. 그들은 에수를 잡으려고 던진 그물에 그들 자신이 잡혔읍니다. 여기 전개된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겠읍니까? 두 가지를 배워야겠읍니다.
①첫째로 우리는 이기주의를 버려야되겠읍니다. 바리세이들의 태도 그들의 정신 계획과 전략은 성스러운 천주님의 판단하고는 천양지판입니다. 그들의 야심 야욕 공리주의로 가득찼읍니다. 오늘 파공날을 거룩하게 지키려함은 파공날 자체나 천주님을 위한다는 성스러운 심리와 동기에 기인치 않고 오직 자기 중심으로 행동하였읍니다. 고무풍선같이 부풀어 오른 그들의 허영심으로 만민에게 파공날을 아주 거룩하게 지키는 자로 뵈이려 하였던 그들이 천주님의 예리한 판단에는 세상에 아주 못쓸 찌끄러기 인간으로밖에는 안 보였읍니다.
만일 파공날에 예외를 그들 자신이 인정한다면 그들 자신에게 큰 손상거리가 되니까 파공날에 병자를 낫게 하는 것이 가하냐?고 반문하시는 예수께 일언반구도 대답을 못하였지았었읍니까? 이해타산의 극치를 말하는 이기주의자들이 아니였읍니까. 만일 그들 자신이 고창병 고치는 전능의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저희들은 예수께 가부를 여쭈어보지도 않고 치료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자신에 대한 판단과 비판이 똑같지 않으니 필경 이 두 판단 중에 하나는 허위요 불공편한 판단일지니 자기는 만사에 완전하고 남은 매사에 죄인이다 잘못이다 하고 판단하는 이 두 판단의 가부를 여러분은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무릇 남을 판단한 그대로 제 자신이 천주님게 판단을 받아야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오상방지거」 성인이 수사를 하고 길을 가다가 아주 파립페의로 남루한 걸인을 만나게 되었읍니다. 성인이 동정의 말을 하여 주시니 즉시 그 제자 수사가 『아니올시다 저는 비록 걸친 옷이 남루하여도 그 속은 금시 백만장자가 될 욕심으로 가득 찼을 것이요』하니 성인이 제 마음을 보아 남을 잘못 판단하는 수사를 책망하시고 또한 타인을 악한 줄로 의심한 죄를 보속하는 뜻으로 즉시 그 수사로 하여금 걸인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고 수사가 입은 옷을 벗어 걸인을 입히게 하였읍니다.
②둘째로 오늘 성경에서 배울 것은 법률 글자 그 자체에서가 아니고 법률 구성의 정신을 배워야 하겠읍니다. 주의 사랑의 계명을 배울 때에 그 외면에 나타난 정경 환경 구절 문제를 우리가 습득하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고 그 계명을 주신 천주님의 근본정신을 배워야 하겠읍니다. 옳고 바른 것을 배우고 또 남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자기 본위를 떠나 주의 근본정신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 범주 안에서 언행일치를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자기태만 자기오류 자기오만심과 허영심 그리고 자기 무관심한 심경과 태도를 변명하는데 주의 법률을 남용함녀 안 됩니다.
예를들면 『주일에 꼭 미사 첨례하라는 중대한 게명이 있기는 하지만 나 하나만을 위하여는 예외입니다』 한다면 이것도 진정한 양심의 소리에 역행하는 잠고대밖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 주일에 미사에 가긴 가지마는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늦게 가던지 미사 절반만을 첨례하던지 상관 없다는 식으로 나간다면 법률의 글자는 지켜도 주의 법률 즉 근본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주일과 파공날에 미사에 첨례하는 것은 신자로써 중대한 의무이고 의무를 생활화하므로써 가치 있는 신앙의 주인공이 된다고 법의 근본 정신에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성당에 가는 것 첨례하는 시간 그동안 가져야 할 경건한 내적 외적 태도는 천주님의 것이라 하고 생각할 때 법의 근본 취지대로 사는 신자일 것입니다. 이런 정신상태로 규계를 지켜나가면 오늘 바리세이들 보다 월등 초월하게 천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살고 또 파공날을 주의 뜻에 맞도록 거룩하게 지내게 되며 따라서 우리 영혼에 무한한 주의 성총이 넘처 흐를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영혼이 허영의 헛물을 키는 고창병이든 영혼이라 할 지라도 참된 참회의 성사로써 것든히 주의 전능에 의지하여 모든 병이 깨끗이 나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내용은 법에 합법적이고 비합법적인 것을 변론하고 토론하려는 것이 아니고 영혼과 아울러 육신의 병과 곤경을 구제하는데 본뜻이 있는 것입니다. 즉 법에 대한 우리 심신의 솔직하고 겸허한 태도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법 자체이신 천주님게 법의 문구 문체 여하를 초월하여 솔직담박하게 천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원하시는 정도로 원하시는 모양대로 채워드려 천주께 영광과 찬미가 있도록 하여 거기에서 오는 결과로 우리 영혼을 고창병자같이 영원히 치유의 좋은 결과를 차지하도록 할 것입니다. <바오로> 종도의 말씀에 『글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신은 사람을 살린다』고 하신 말씀도 여기를 두고 하신 것입니다. <모이세>의 뉘동생 <마리아>는 겉모양을 보고 오라비 <모이세>를 잘못 판단하여서 오늘 바리세이들 같이 즉석에서 천벌로 천형병 문둥병에 걸리지 않았읍니까? 또 <다위> 성왕이 결약의 궤 앞에서 성영을 읊으며 노래하여 주를 찬미하는 것을 그 아내 <미콜>이 조롱하다가 종신토록 수태 못하는 벌을 받고 그 때문에 <다위> 성왕으로 하여금 탈선하여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죄와 그의 처를 강탈하여 간음하는 죄와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하는 원인을 만들지 않았읍니까?
오늘의 바리세이들 같이 법의 근본 정신에 치중치 않고 외면적 허영적 또 이기주의적으로 판단하여 주의 계명의 근본정신에서 이탈하는 둘째 번 바리세이가 우리들이 되지 않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필자=大田본당 주임)
吳基先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