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16) 聖(성)스러운 反逆(반역) ③
발행일1962-01-14 [제310호, 4면]
1886년 1월 그는 거기서 해로로 프랑스에 돌아왔다. 「니미스」의 <마리 드 부릭크> 집에서 며칠을 보낸 다음 그는 <모와테시>에 댁의 바로 옆에 있는 파리의 「미로메널」가 50번지에 숙소를 정했다.
그는 그의 작품 『모록코탐험』을 완성했기 때문에 그것을 출판자 <샤라멜>에게 가지고 갔다. 이때에 그는 <이네스> 숙모는 나이는 많았으나 머리는 촉명하며 활동적이고 유복하여 정계의 일부에 다소 영향을 끼치는 살롱을 열고 있었다.
<후꼬오>는 그의 살롱에서 대환영을 받았다. 그에게는 가장 빛나는 전도가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마음을 도취시켜주지도 않았던 것 같다. 「미로메닐」에 새로 마련한 장식을 보더라도 얼마나 그가 모록코의 향수를 지속하고 있는가를 알 수가 있다. 가족들의 초상화를 건 벽 사이에 그는 모록코 풍경의 스켓취를 몇장인가 걸어놓고 있었다. 미장본을 가득 쌓아놓은 아름다운 책장은 있었으나 침대는 없었다. 그는 <시디 에드리스>의 집에서와 같이 두건이 붙은 외투를 입은채 마루바닥에서 자는 것이었다. 사치고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역시 그만큼 변했다는 증거였다. 그는 급사를 부리고 있었으며 지금도 역시 「세속적」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속에 있는 「낡은 사람」은 죽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이네스> 숙모댁에서 그는 항상 종자매인 <마리>를 맞나게 되었다. 그는 <마리>를 「지상의 천사」로 보고 있었다. <마리>는 순령(純靈)은 아니나 그에게는 신에게 인도해주는 신의 사자인 것이다. 그 여인을 이렇게 부르고 있는 그의 수상록 중에 그는 <마리>가 그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매우 명백히 말하고 있다. 『신이여 아름다운 영혼이 당시을 도웁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침묵과 우아함과 성의와 완벽에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영혼은 자기 스스로를 명백히 하며 선량하고 사랑의 마음을 이끄는 방향(芳香)을 뿜고 있었으나 능동적은 아니었읍니다.
우리의 구세주신 에수여 당신은 모든 것을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안에서도 이루어주셨던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내마음을 덕행으로 이끌어주셨으나 그 영혼에 있어서는 너무나 덕행이 아름답게 생각되어서 나의 마음은 다시 돌아설 수 없을만치 도취되고 말았읍니다. 당신은 이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나의 마음을 진리에로 이끌어 주셨던 것입니다.』
<헤겔> 이래로 사람들은 조소적으로 밖에는 아름다운 영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헤겔>은 그의 희화(戱畵)를 그렸으에 지나지 않았다. 즉 스스로의 운명을 거부하고 막연한 주관에 넘처 그의 위험의 빛이 『대기에 녹아버리는 무형의 증기와도 같이』 꺼져버리는 듯한 영혼을 묘사한데 불과하다. 그러나 <후꼬오>는 아름다운 영혼의 현존과 힘을 발겨했던 것이다. <마리>가 젊은 여인이라는데 사람들은 미소를 지을런지 모른다. 마치 그것은 이 모록코의 나그네가 자기에게 <마리>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래동안 『좋은생활』과 『행운』 속을 걸어온 그는 어디에서 그에게 대한 <마리>의 감화력이 온 것인가를 대단히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여성은 덕행의 순수하고 생생한 모습으로 된 그림인 것이다. 어떤 종류의 정열과 <마리>에 대한 이 찬미와의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된 척도도 없는 것이다. 그가 그만치 <마리>를 찬미한 것은 필경 그 여인이 그가 알지 못했던 절대적 순결의 감정을 괴롬없이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앙쥬우」가에 있는 이 집에서 <이네스> 숙모와 종자매 <마리>는 그를 <유브랑> 신부와 친교를 맞아주었다. 이 신부는 그들의 소교구인 「생 오규스땡」의 보좌신부였다. 옛날에는 사법학교학생이었으나 후에 신부가 된 그는 아직 50세도 못되었으나 훨씬 나이가 들어보였다. 피로와 병고로 그의 얼굴의 윤곽은 허물어져 있었다.
때때로 그는 교회에서 강연을 하였으며 거기에는 사교계의 인사들이 와짝 물려 들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조금도 속ㅁ물신부같은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위계(僞計)를 써서 진리를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고 듣는 사람의 호감을 사려고 덕행을 설명하지도 않았다. <후꼬오>는 그 신부에게 감탄은 했으나 그를 쫓아갈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유브랑> 신부는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며 사제였다. 그는 마술사는 아니었다. <마리 드 뽕디>와 같이 그에게도 다른사람에게 신앙을 억지로 밀어넣어줄 힘은 없었던 것이다. 본래 신앙은 밀어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결정저인 일보는 영혼의 심오한 곳에서만 내딛일 수 있는 것이며 배일에 덮인 문턱 저쪽에서만 밟을 수 있는 것이다.
<후고오>가 이 문턱을 넘어서기 위해서 모든 것이 감추어져 있었으나 그는 이것을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매일 그곳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슈에>를 재독하여 그전보다 더 잘 이해했을 뿐 아니라 고독과 잠심(潛心)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는 때때로 「쌩 오규스땡」성당에 들어가 그곳의 조용한 분위기에 잠겨서 다음과 같은 기구를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천주여 이 세상에 조재하신다면 나에게 그것을 알려주십시요』
『네가 이미 찾아 낸 것이 아니면 나를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파스칼>은 이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정은 멀고 위험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영감을 주는 것을 이정하기가 그다지 용이한 것은 아니다. 신앙이 돌연한 섬광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또 신앙이 「다마스코」에서 종도<바오로>를 대지에 넘어지게 한 우뢰소리와 같이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신앙은 오히려 일종의 기나긴 발걸음인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드라마」의 최후의 순간에 그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그렇다』라고 하는 한마디 속에 전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시에 증명이 완료되는 학설의 증인인 것은 아니고 돌연히 나타나 호흡하는 존재의 밑바닥에 숨어있는 거대한 비밀의 영역인 것이다.
그것은 인생행로를 변경하거나 살아있는 어떤 사람의 애정을 거절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언제든지 거부할 수 있는 하나의 생명인 것이다. <후꼬오>는 신앙이 자기 옆에 있으며 이미 자기 생명에 어떠한 빛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저러한 신공을 할 수 있으랴.
그러나 결국에 있어서는 그가 사랑의 승락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다. 어느듯 세월은 흘러갔다. 표면적으로는 무엇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후꼬오>는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9월 중순경 그는 짧은 여행을 하기 위하여 「츄니쟈」로 또다시 출발했다. 그는 이 여행에서 「탕재」에서 「츄니스」에 이르는 북아프리카 전토를 봐버리는 것이다.
86년 10월 중순경에는 그는 이미 파리로 돌아와서 종자매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유브랑> 신부님은 인제는 강연을 안하시는 모양이드군요. 참 섭섭해요』 이렇게 <마리.가 말하니까 그는 『나도 참 섭섭해요 나는 참으로 가 강연을 들으러 갈 작정이였읍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수일 후 그는 <마리>에게 자기마음을 고백했던 것이다.
『당신은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나는 광명을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같은 달의 말일경인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사이에 그는 어느날 「쌩 오규스땡」성당에 아침 일찍 갔다. 아직 조반도 먹기 전이였다. 그에게는 조금도 확고한 결의는 없었으나 마치 자기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어떤 욕구에 움직여지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그는 고해소에 <유브랑> 신부를 만나러 갔다. 그는 꿇어 앉지는 않았으나 종교에 대해서 가르쳐주기를 원했다.
『무릎을 꿇으십시요. 천주께 고해를 하십시요. 그러면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신부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나…』하며 <후꼬오>는 항의했다. 『나는 그것때메 온 것은 아닙니다』
『고해를 하십시요』
신부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후꼬오>는 자유인 것이다. 돌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안했다.
<후꼬오>는 무릎을 꿇고 지금까지의 생활을 숨김없이 전부 고백했다.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모든 죄의 사함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한번도 잊어버린 일이 없는 듯한 강하고 확고한 신앙을 다시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사제는 그에게 『아침식사는 아직 안하셨읍니까』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아직 안했다는 대답을 듣고 <유브랑> 신부는 즉시로 성체를 영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