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일본)가톨릭學聯(학연) 全國大會記(전국대회기)
主議題 共産主義·人間疏外·敎會一致
敎會的 視野에 서야
발행일1961-09-10 [제294호, 4면]
해마다 개최되는 「일본」의 제14회 가톨릭학생연맹 전국대회는 지난 8월1일부터 5일까지 「도오꾜」 「상지회관」(上智會館)에서 열렸다.
『공산주의』 『현대의 인간소외』(人間疏外) 『교회일치』를 테마로 한 금년도 대회에는 대학생 2백50명 고등학생 2백명 지도신부 50여 명이 참가하였다.
다음은 동 대회 폐회 후에 발표된 대회보고(大會報告)이다.
■ 제1세미나=(共産主義) 主義 떠나 사랑을
공산주의를 취급한 이 「세미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고 또한 많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지 한 개 「세미나」에 끝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 더욱이 오늘날의 사회 전체에 미치는 것을 생각할 때에 금번 대회에 참석한 자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동 대회의 핵심점(核心点)이었다고 할 수 있을게다.
문제란 우리들 내부에 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태도의 상이(相異)와 공통점을 우리들 자신이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데에 있다.
혹자는 『공주의와 같은 자연법으로 보아 명백히 그릇된 「이데오로기」에 어찌하여 사람들이 이끌려 가는지를 알고싶다』 어떤지는 『공산주의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이론무장(理論武裝)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하여는 「네오 토미니즘」에 관하여도 알지 않으면 안 된다』하였고 또다른 자는 『우리들이 문제 삼을 것은 사회(社會)이며 공산주의를 취급하는 가운데 사회에의 이해를 깊게하고 신앙을 사회 안에 살게하는 연구를 해야한다』라는 태도를 취하였다. 대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산주의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알고자 한다는데 견해가 일치되고 있으며 그 방향은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그 하나는 공산주의를 「이데오로기」로서는 사회개혁의 수단이라고 보고 공산주의자를 우리들의 움직임의 대상이될 수밖에 없는 이웃이라고 본다.
또 하나는 공산주의를 우리들이 대결할 무신론으로 간주하고 공산주의자를 이론투쟁의 상대자로 여긴다. 즉 한쪽은 사회개혁과 이웃을 강조하고 다른 쪽은 무신론과 이 투쟁을 강조하는 방향이다.
이와같은 영향을 포함하면서 토론은 원리(原理)와 현실(現實)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 우선 원리론에서는 공산주의 발생의 역사적 배경으로서 공산주의가 발생한 것은 사회개혁으로부터냐 철학적 고찰부터냐에서 의론이 전개되여 「맑스」에 있어서는 「헤겔」의 유산(遺産)의 관념론(觀念論) 「영국」 경제학 공상적 사회주의(空想的 社會主義)의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으나 광범한 당시의 사회적 배경까지는 토의치 못하였다. 경제 혁명 종교관에 관한 토의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다음의 몇 가지이다.
①가톨릭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개인적 구제(救濟)에 끝이느냐 사회의 도덕적 경향까지도 포함하느냐 사회체제를 여하이 이해하느냐=일본은 과연 지유스러운 나라냐 그렇지 않으면 부자유나 자본주의의 어디가 나쁜가를 계산에 넣고서 사물을 생각하고 있느냐.
②『혁명은 인민이 그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도자의 기술적 문제이다』라는 의견에 반대하고 『어째서 지도자가 그것을 하는가 또한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회적 기초는 어떠냐』하는 문제 즉 공산주의 「이데오로기」에 관한 명확한 인식의 필요성 및 사회적 기반의 명확한 인식의 필요성
③사회문제를 통하여 인간의 가능성(可能性)을 추구(追求)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알게한다는 사고(思考)의 필요성, 현실문제에 있어서는 일본 자본주의의 현상분석(現狀分析)에 들어가서 「일본」의 저임금(低賃金) 빈곤(貧困) 사회보장(社會保障)의 관련과 문제점이 토의되었다. 아울러 『현제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경쟁』이라는 제명의 「레포트」를 제출하여 평화공존론(平和共存論)을 토론하였다. 끝으로 7월30일 발표한 「쏘련」 공산당 강령(綱領)의 설명이 있었다. 결론은 ◎공산주의 「이데오로기」에 대한 지적방파제(知的防波堤)가 되는 것이 가톨릭 신자로서 필요하다. ◎학원생활 문제가 「리알」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우리들 독자적 평화 노력을 하자. ◎그리스도교를 더 많이 알자에 도달하였다.
■ 제2세미나=(現代의 人間疏外) 自我發見과 忠實
소외문제의 전반적 전망으로서 소외란 한 말로 하면 근대사회가 낳은 한 개의 파탄(破綻) 인간의 비인간화(非人間化)라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측에서나 「맑시스트」 측에서나 다같이 지적되고 있는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즉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소실하고 인간으로서 알맞는 행동을 할 수 없으며 인간의 가치가 다른 물적기준(物的基準)에 바꿔져 계산되고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현상(現象)으로서 본다면 1. 인간의 기계화…기계에 인간이 규제(規制)당한다. 2. 자본주의 기구(機構)가 가지고 있는 문제……노동의 상품화 인간화 물건의 가치의 도착(倒錯) 3. 대중조직(大衆組織)의 문제…대사회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관료제(官僚制) 인간의 일률적인 통제
그러면 소외(疎外)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1. 보편적 실존적 조건……인간에 내재(內在)하는 것 예를 들면 원죄(原罪)와 같이. 2. 역사적 사회적 조건……한시대 하나의 상항(狀況)하에 일어난다. 노예제(奴隸制) 자본주의 등.
그러면 소외의 현실을 적시(適時)하면
○기술로부터 오는 소외……기계문명의 진보의 결과 인간은 단조(單調)로운 균일노동을 기계로부터 강제당하여 주체성(主體性) 창조성(創造性)이 소실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기술 그 자체는 중립이며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의도에 의해서 소외를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기계문명의 참다운 이용방법을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의 소외……단순히 임금(賃金)을 얻기 위한 목적만으로 상품화된 노동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구조와 소외(疎外)……기술의 중립을 악용하여 노동을 상품화시키는 원인을 추구하면 우리는 현대의 사회구조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익추구(利益追求)를 제일 목적으로 하는 사회이며 방치해두면 인간도 포함한 모든 것을 이 수단으로서 사용된다는 본질적인 방향을 가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연구 토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것을 규정지었다.
한 개의 사회체제에 대하여 인간이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포촉한 관점에서 비판한다는 것은 참되게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살고 있는 자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웃을 압박하고 비인간화 하는 한 개의 체제를 변혁해 나가는 것은 「이웃사랑」에 기반을 둔 우리의 의무이다.
이 사명을 실행하기 위하여는 우리는 우선 자신을 깊이 자각하고 참다운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신학적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 현실에 눈을 돌리고 관심과 비판의 눈을 양성해야 한다.
■ 제3「세미나」=(敎會一致) 再一致에의 첫발을
이 「세미나」에서는 「일본」 기독교 목사이며 「도오꾜」 신학대학 교수인 <기따모리>씨가 『교회일치에 관하여-프로테스탄트 입장에서』를 강연하였다.
이 강연은 매우 「아카데믹」했으며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보다 잘 이해하고 호의가 넘치는 것이었다.
강연 후 「세미나」는 2개 「구룹」으로 갈라져서 「프로테스탄트」 학생과 대화하였다.
가톨릭 측은 성직자를 포함하여 약 50명 저쪽은 YMCA YWCA 연합위원장을 위시한 지도적 학생 약 20명이 회합하였다.
질의응답 내용은 주로 가톨릭교회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대한 상호간의 무지(無知) 편견을 시정하는데에 유효한 지식을 서로 교환하고 다음의 세 가지 중점에 동의를 가져왔다.
1. 가톨릭학생연맹과 YMCA YWCA의 조직적 교류를 도모할 준비를 한다.
2. 상시 문서교환을 하여 상호간의 교우(交友)관계를 긴밀히 한다.
3. __대학 단위로 가톨릭연구회와 「프로테스탄트」 써클과의 상호협력 회합을 할 것에 노력한다.
이와같이 금년도의 「교회일치 세미나」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일은 가톨릭학생과 「프로테스탄트」 학생이 금후 제휴(提携)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든 것과 교회일치 운동은 단순히 교회분열의 아픔을 매일같이 느끼는 일부 가톨릭신자만의 일이 아니라 전체 가톨릭 신자가 자기 문제로서 생각하여 넓은 시야 밑에서 고찰을 가해야 할 것이라는것이다.
「교회일치 세미나」에서의 욧점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와는 서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은 우선 가톨릭교회가 가지고 있는 보다 깊은 진리를 추구하고 동시에 유연성(柔軟性)을 가진 이해태도를 나타나도록 노력하지 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통일된 자세를 세우기로 하였다.
1. 대화 방향
「프로테스탄트」 학생과의 적극적 대화이다. 열려진 마음 성실한 태도 사라으이 불꽃을 가지고 「프로테스탄트」와 대화할 것이다.
2. 자기 개혁의 방향.
주변적(週邊的)이 아니라 중심에 이끌어 가려는 것이 일치의 대도(大道)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진리의 탐구에 향하지 않을 수 없다.
정적자조(靜的自照)와 동적파악
즉 자기개혁한 교회, 현재 자기개혁을 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탐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특히 대공의회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같은 방향은 「프로테스탄트」와의 대화와 동일한 방향이며 그리스도의 참다운 교회의 확충 발전 심화(深化)인 것이라고 확신한다.
3. 기구
상기한 2개 방향에 무한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현실에 눈을 돌리면 우리는 눈앞에 가로놓여있는 어쩔 수도 없는 장벽이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이것을 넘는것은 무엇이냐.
교황 <요안> 23세께서도 인정하신 것과 같이 교회재일치 운동에는 성령(聖靈)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리는 재일치를 위하여는 심심한 기구를 바쳐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