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18) 나자렛의 길 ②
발행일1962-01-28 [제312호, 4면]
그는 빈번히 <듀베리에>를 방문하고 있었다. 이것만이 이 파리에서의 대망의 긴 하루하루 동안에 그가 맺은 유일의 친밀한 우정이었다. 아프리카 세계에 대한 공통된 정열이 두 사람의 사이를 더욱 견고히 했던 것이다. <후꼬오>는 그래도 그 친구에게 자시 생활의 가장 속 깊이 숨어있는 부분은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회심에 대해서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집안에서도 <후꼬오>는 그의 새로운 열정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했다.
<듀베리에>는 그리스도교가 아니었으며 <후꼬오>는 이유도 없이 자기 회심담을 발표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88년 2월의 어느날 밤에 「세브르」 별장에서 하루종일을 과학상의 일로 보낸 다음 <듀베리에>는 친구에게 아무 생각도 없이 다과를 대접했었다. <샤르르>는 사순절이라고 하면서 다과를 사양했다.
<듀레리에>는 잠시동안 아연했으나 기쁜 낯으로 쾌히 승락했다. 두 사람은 친구간이었으나 우정은 누구에게도 지지않게 두터웠다. 그러나 <듀베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고 기분이 나쁜 것만은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은 수일 후에 두사람이 함께 <모노와르>의 집에서 만찬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듀베리에>는 그날 저녁에 <모노와르>에게 「사순절 동안에 금하고 있는 요리만으로 식사준비를 하지 말도록 부탁하기 위하여 사람을 보냈다. 그는 여기에 덧붙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드 후꼬오씨의 성격에 진심으로 애정을 느끼고 있읍니다. 그는 선량한 성질이기는 하나 나는 그가 치명적인 병에 걸린 사나이 혹은 그의 애정을 깊이 상처입은 인간이 아닌가 이심하고 있읍니다……』
상냥스러우면서도 고통을 받는 <듀베리에>는 4년후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자기 별장의 정원에서 피스톨 자살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1888년 어느 여름날에 <안돌슈>의 「본데이」댁에서 체재하고 있는 동안에 <마리>는 <샤르르>에게 부근에 있는 <퐁공보오>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찾아 가기를 권고했다. 수도원의 문턱을 들어서자 말자 그는 확실히 신성한 영역에 발을 디려놓았는 것을 느꼈다. 흰 모직으로 된 긴 옷을 입고 수도사들이 묵묵히 오고 가고 하였다. 모든 것이 신비적으로 보였으며, 깨끗함을 느꼈다. 한개의 망치가 철장을 뚜드리고 있다. 새는 나무가지 사이에서 노래부르고 물은 샘속에서 흘러나오고 곡괭이가 둔한 음향으로 대지를 울리고 있었다.
저편에서는 소들이 우는 소리가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간의 소리만이 침묵하고 있었다. 수사들의 이 절대적인 침묵은 모든 것을 변모하는 데 충분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시골 한구석에서 사막의 위엄을 인정했던 것이다. 기도시간에 기구하는 수사들의 노래소리만이 이 침묵을 깨트렸다. 그러나 <후꼬오>의 마음을 무엇보다도 이끈 것 그것은 한 수도사의 맑은 옷차림 더럽고 떨어진 노동용의 수도목이었다. 이 사람은 이곳에서 가장 비천한 자리를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옷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옷차림에 대해서 매우 세련되어 있었으나 그는 역시 모록코 탐험가라는 자랑으로 낡은 옷을 입고 있었다. 「모가도르」나 「라르라 말리아」에서 그는 너무나 가련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사나 직원을 만나고 싶다고 청했을 때 난폭하게 쫓겨났던 것이었다.
말단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그가 이보다도 더한 가난과 부끄러움을 참아 받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릇된 것이었을까? 트라피스트 수도회는 충분히 그의 원의를 충족시키게 될 것일까 더욱 예수 앞에 가까이 있기 위해서 더욱 비천하고 더욱 무일물(無一物)이 되는 곳이 또 어디 있을 수 있을까.
그의 심정의 모든 고백을 들은 <유브랑> 신부는 그에게 성지에 순례하기를 권했다. 그곳에서 그는 천주께 결정을 간청한 것이었다. <후꼬오>는 이와같은 여행은 생각지도 않았으나 순순히 복종했다. 그는 11월에 출항하여 12월 25일에 눈이 뒤덥힌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복음서의 회상으로 마음이 가득차며 그는 예수의 발자취를 밟아갔다. 그는 『고난의 길』을 밟아 갈와리아산에 올라가서 성묘지에 들어가 부활하신 뜰을 거닐었다. 성탄제의 밤에는 베들레헴에서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영했다. 그는 마리아와 나자로의 촌 베타니아와 예수가 어떤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가나의 땅, 베드루와 요안이 하늘의 영광에 빛나는 그리스도를 본 다볼산, 죽은 자 가운데로 조차 다시 살아나신 예수가 빵을 찢어서 자기 스스로를 알려주신 엠마우스 등을 방문했다.
그는 나자렛에 두번이나 들러서 오래동안 머물러 있었다. 거기서는 다른 어느곳에서 보다도 <유브랑> 신부의 말씀을 묵상했다. <후꼬오>는 자기가 공적 생활에 있어서 예수를 따르는 것이 자기의 성소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자렛은 그의 마음을 깊이 움직이게 했다. 이 땅이야말로 예수가 성모와 목수인 요셉 앞에서 침묵과 기구와 목수일을 하면서 30년간을 살아온 곳이다. <후꼬오>는 어느듯 그와같은 생활을 하겠다는 것 밖에는 꿈꾸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에 돌아오자 그는 「솔렘」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또 「솔리니」의 트라피스트 수도원과 눈의 성모 트라피스트수도원 또는 「크라마르」예수회 수도자들에게서 여러차례 피정을 했다. 그의 희망은 더욱 더욱 굳어져 갔다. 그는 자기를 지적인 생활이나 포고에 이끄는 어떠한 수도회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원하고 있는 바를 종자매인 <마리>에게 보낸 편지 속에 확실히 표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성바오로와 같이 주의 품속에 완전히 매장당할 것 즉 주께서 그러하셨으므로 나도 모욕당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며 또 주의 발 밑에서 일생동안 탄식하고 지내기 위하여 위 주께서 단식하신 산 속에 굴을 파고 살던 은수자들의 모범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는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에게로 가면 자기의 원하는 생활이 있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라피스트수도원 중에서 가장 빈약하여 생각되는 눈의 성모수도원에 가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 트라피스트수도회가 시리아의 「알렉크산드렛트」 근처에 새로운 수도원을 창립했다는 것을 알고 이 새로운 수도원은 가장 빈한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는 그곳에 증원대로서 보내는 사람들 중에 참가하기를 짐심으로 희망했다. 그가 모든 소원을 <유브랑> 신부의 판단에 맡긴 즉 <유브랑> 신부는 그에게 전면적으로 찬성했다. 여기에 이르러 비로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그러는 동안 89년 1월에 「난시이」의 재판소는 그에게 후견해제를 언급하고 재산처분권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전보다도 더욱 낭비가가 되었다. 그해가 저물기 전에 그는 전재산을 여동생에게 주었던 것이다.
파리와 「디이줌」과 「난시에」 가서 가까운 친구에게 최후의 인사를 하고난 후 그는 즉시 출발하려고 결심했다.
90년 1월 15일에 <샤르르 드 후꼬오>는 「쌩 오규스뜨」 교회의 <유브랑> 신부가 드리는 미사에 성체를 영하러 갔다. 그날 오후 <샤르르>는 「양쥬우」 거리를 지나서 가까운 친척과 포옹을 한 뒤에 다만 홀로 이용역으로 향하여 살아지고 말았다.
여름방학 동안을 <샤르르>는 「란돌」의 「보디이」 댁에서 지냈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것이 종결되었다. 아니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한개의 생애가 훤하게 밝아오는 것이었다. 전에 맛보던 어떠한 행복보다도 한없이 크고 끝없는 기쁨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웟다. 천주의 길을 가는데 그에게는 아무런 장해도 없었다. 그러나 이 기쁨은 그를 벙어리도 장님도 그리고 묵감각하게도 만들지는 않았다. 이 기쁨을 앞에 두고 단애를 파도치는 바다와도 같이 그는 영원히 애처러운 이별의 고뇌를 느끼는 것이었다.
『이 희망은 나의 눈물의 전부를 가지고 산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래로 그리고 그날 이래로 나는 눈물을 흘린 일이 없읍니다. 이제는 눈물이 완전히 말라버린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빼 놓으면…… 1월 15일의 상처는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의 희생은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희생입니다. 』
그는 얼마후 수도원에서 이와같은 서신을 종자매에게 보냈다.
그가 고아였기 때문에 <마리>는 그에게는 <성 아우구스틴>에 있어서의 <모니카>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오래동안 <마리>는 침묵과 순수한 사라을 가지고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그를 돌봐주고 있었다. 그가 승락을 했을 때는 <마리>는 부탁하지 않으면 안될 멧세지를 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또 <마리>는 사라지고 말핬다. 전언을 전달한 사람은 그것이 성취되도록 그앞에서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