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4) 未知(미지)의 모록코 ②
미셀·까루우즈 原著
발행일1961-09-24 [제296호, 4면]
그는 「알제」에 다시 돌아와 아무것도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있는 정력을 다하여 연구했다.
그는 한달에 3백50프랑의 생활비로 만족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4천 프랑도 낭비하고 있었는데) <라투우쉬>는 대단히 놀랐다.
<샤를르>의 생활이 가난한 학생 생활과 같았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그는 솔직하게 그 일을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도서관장 <맠크카시이>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라투우슈>는 그 당시의 노동자가 월 백 프랑의 수입도 못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단 말인가. <샤를르>는 그보다 현실에 밝았던 것일까.
그는 고관대작같은 생활을 떠나서 그가 친애하는 <호라 티우스>가 높이 평가하는 광휘있는 절조의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아직 빈곤을 발견하기에는 멀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과 인생에 있어서 지극히 큰 목적을 발견했다. 그가 추가비용을 요구한 유일한 낭비는 육분의(六分儀), 경선의(經線儀) 등의 탐험용 과학기구를 사들인 것이다.
「알제」만에 정박하고 있는 군함위에서 이것들을 조작하는 것을 배웠다.
이제 남은 것은 아주 확실하고 유능한 안내자를 찾아내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뿐이다. <후꼬오>는 값진 선물을 강청(强請)하는 것 밖에는 생각지 않는 자칭 아라비아 왕자에게 휘감겨들 것 같었다.
위험을 느낀 <라투우쉬>가 이 인물에게 보내는 송금을 거절하자 그 사나이는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이 은밀한 여행을 위하여 신뢰할 만한 인물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돌연히 기묘한 인물이 나타났다.
『1883년 3월, 나는 「알제」의 도서관에서 관리위원인 <막크카아사이>씨와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5,60 가량된 키가 크고 정정하게 보이나 허리가 꼽으라지고 눈이 나쁜 사람같이 더듬 더듬 거리는 「유데아」인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우리에게 가까이 왔을 때 나는 병든 사람모양 충혈된 눈에다 흰 털이 섞인 길고 검은 수염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다른 사람들 보다는 훨씬 온화하고 순박한 것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시리아」식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즉 허리를 벤카후단이 발끝까지 덮었으며 그 위에 같은 길이의 푸른 라샤로 된 망또가 스러져 있었다. 그는 검은 타반을 맨 둥근 모자를 쓰고 코담배갑을 손에 들고 거기서 쉴 새 없이 담배를 끄집어 내서 코에 넣고 있었다. 옛날에는 매우 훌륭했을 의복이 낡아빠지고 누추했다. 몸차림 전체가 가난하고 낙오된 인간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었다』
이것은 <말도세·아비·세루우르> 제관(祭官=라비)이었다. <막크카시이>가 <후꼬오>의 귓가에 속삭인 약간의 지시에 그는 매우 흥미를 이끌게 되어 이 새로 찾아온 사람과 근접하게 되어 이 노제관이 그의 처와 네 어린이와 같이 살고 있는 유테아 거리의 어둠컴컴한 그집에 가서 여러 시간을 보냈다.
<말도세>의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하나의 모험소설인 것이다.
1830년에 그는 <모록코> 남부의 「수우」에 태어나 청년시절을 그 주교영토(主敎領土)에서 보냈다. 토오라(THORA) 즉 율법과 「모이세」(五書) 중의 유태아교 전례서(典禮書)를 배운 후, 「예루살렘」행의 배를 탔으며 거기서 제관이 된 것이다.
자본금을 만드려고 생각하여 그는 「통부크루」로 떠나 그 유명한 흑인가에서 대상인(大商人)의 한 사람이 되어 「모록코」와 「수우단」 사이에 유리(有利)한 대상(隊商)을 여러개 조직했다.
이 호화찬란한 번영 바로 그것이 그를 파산시킨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지방의 전제군주의 욕심을 깨우치게 하였으므로 그는 무난하게 자기 신하의 재산을 몰수해 버렸던 것이다.
<말도세>에게는 저금이 약간 있었으므로 그것을 찾아내어 도망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모록코」에 가는 도중에 일단의 강도에게 잡혀 그의 번영의 마지막 것을 빼앗겨 버렸다. 동시에 그는 자칫하면 생명까지 빼앗길번 했던 것이다.
고향에 와 즉 양본친은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이미 그에게 대한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유산은 모조리 분배해 버렸던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파산직전에 결혼한 처와 같이 「모가도르」로 피난해 갔다.
「모가도르」의 「프랑스」 영사관이 지리학협회(地理學協會)를 위하여 「모록코」와 「통부크루」를 탐험하는 사명의 일부분을 그에게 맡겨줄 때까지 할 일 없이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 그다지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되었기 때문에 협회에서는 새로운 일을 그에게 의뢰하는 것을 중지하고 있었다. 협회는 다만 그를 추천할 수는 있다고 동의했기 때문에 그 추천으로 처음에는 「알제」에서 교원제관(敎員祭官=라비)의 지위를 얻게하였다.
<말도세>는 이 젊은 탐험가를 위하여 안내인이 될 것을 승락하기는 했으나 막대한 댓가(代價)를 요구했다. 그러므로 협정이 이루어지기까지 오랜동안의 협의가 필요했다.
1884년 4월, <후꼬오>는 이점에 대하여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가족에게 이별하는 인사를 하고 <막크카시이>의 소개로 조언과 지지를 얻기 위하여 지리학협회의 비서관장(秘書官長)인 <모노와르>씨를 방문하러 「파리」에 잠시 여행했다.
「알제」에 돌아왔을 때 또다시 사고가 생겼다. <말도세>는 보수에 대한 의견을 변경하여 또다시 막대한 금액을 요구했다.
참을 수 없게 된 <흐꼬오>는 전에 자기를 괴롭게하던 『아라비아 왕자』와 교체해 버릴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막크 카시이>가 모든 교섭을 인수하여 <말도세>와의 새로운 협정에 성공했다.
<후꼬오>는 재빨리 <라투우슈>에게 필요한 자금을 부탁하는 편지를 썼다.
<라투우슈>씨는 <샤를르>가 참으로 이러한 뱅동을 하려하고 있는지 또는 그가 택한 안내인을 진정으로 신용해도 좋을가 어떨가 참으로 불안하였다.
『이 <말도세> 제관(祭官)은 참으로 「통부크투」에 있던 사람과 동인물일까요 내가 상상하듯이 그는 여행자를 간계 속에 끌어넣어 위험속에서 그를 내버리는 일도 없을까요 모험가다운 실제적 감각이 완전히 결핍된 하나의 몽상가에 지나지 않는 <샤를르>의 무경험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총명할런지요』 이렇게 그는 <막크 카시이>에게 써보냈다.
이 진기(珍奇)한 주의(注意)에 대해서도 <막크카시이>는 또다시 지극히 진실하게 대답을 써보냈다.
그래서 그는 「알제」의 총독 <티일망>씨에게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도는 그러한 편지가 효력을 발생할 수 있는 이 젊은 탐험가에게 「모록코」의 모든 「프랑스」 대표자와 「모록코」 관헌에게까지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공식적인 편지를 얻어보려고 진력했다.
6월5일, 드디어 제관과 후견인의 허가를 얻은 <후꼬오>는 <막크카시이>가 준비한 계약서에 서명했다.
본문(本文)은 「우쟈」에서 「드라아」강(남방에서)까지의 노정(路程)과 「단지에」를 돌아서 다시 귀환하는 길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여행을 위해서 6개월 내지 7개월의 기간이 예정되었다.
그동안 <말도세>는 안내인이 되고 통역도 되어 이 탐험가를 그곳 사람들에게 가장 호감을 받도록 소개하여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보호자가 될 것을 약속했다. 이에 반하여 <후꼬오>는 <말도세>에게 매월 2백70프랑의 봉급을 지불할 것을 약속했다. 그의 총액, 즉 다달이 제관의 처에게 지불할 약간의 전불(前拂)을 제하고 전액은 돌아와서 비로서 지불하도록 되어있었다.
탐험의 계획은 상용(商用)으로 긴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외관으로 의장(衣裝)할 생각이었다. <후꼬오>는 여행의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과학에 관한 이익을 전부 자기가 소유하나 상없아의 이익은 전부 안내인에게 맡긴다는 약속을 했다. 불화가 생겨서 제관이 탐험가를 내버리면 그는 즉시로 보수에 대한 모든 권리를 상실하는 것이다.
요컨데 여행하는 동안 <말도세>의 처와 아이들은 「알제」에 머무르는 것이다.
<막크 카시이>는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재관에게 <후꼬오>에게서 비밀히 8백 프랑의 추가수당을 받을 것이라고 비밀히 말해 두었다.
3일 후 <후꼬오>는 정부의 통행증을 받았다. 18개월간의 준비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것이었다. 탐험가는 다음날 즉시 출발할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