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對話(대화) (下)
寬容(관용)이 完熟(완숙)하는 날까지
可能(가능)한 兄弟的(형제적) 交涉(교섭) 있어야
교회조직은 변할 수 없지만……
발행일1962-02-04 [제313호, 4면]
(承前)
스트란스키 神父=신의 진리는 구속력이 있으며 교황부터 평신도에 이르는 모든 가톨릭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통하여 그의 말씀을 알리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읍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이 믿고있는 그 안에 모든 제약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어떤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만일 교회의 권위를 떠나서 말하기를 허락받은 한 가톨릭신자나 혹은 지방 신부와 이야기할 것이라면 아마 그는 가톨릭신자와 이야기하기를 원치 않고 동료 프로테스탄트와 이야기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는 로마 가톨릭 신자와 다른 자들 사이에 엄격하고도 결정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가톨릭의 전반적인 금제(禁制)에 관한 당신의 언명은 불안정한 것입니다. YMCA나 「세계 그리스도교 학생연맹」(WSCF)과 같은 그리스도교인의 단체는 가톨릭 신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캣취」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정신이 어떻게 넓게 퍼지고 또는 어떻게 그것이 방책과 활동면에서 반영이 되든 간에 가톨릭과 비가톨릭 당국에서는 더욱 많은 정직하고도 공통적인 연구를 해야할 것이 요구되고 있읍니다. 또 어떤 금제(禁制)는 모든 협동이나 혹은 대화(對話)를 축출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5월 「루뱅」에서 나는 『공예학(工藝學)과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테마로 「빡스 로마나」와 「세계 그리스도교 학생연맹」의 30명 지도자들 간에 이루어진 아주 건설적인 토의에 참석했었읍니다.
넬손 牧師=당신은 실제적인 이해와 협동이 꼭 필요한 실제적인 분야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확실히 우리들은 그와같은 분야에서의 대화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하였읍니다. 신부님께서 그와같은 몇가지와 또한 오는 공의회나 혹은 가까운 장래에 특벼리 희망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말슴해주실 수 없겠읍니까?
「스」=만일 우리들이 신빙할 만한 에큐메니칼(교회일치) 정신에 눈을 뜨고 캣취한다면은 효과적인 토의와 활동을 위한 수많은 호기(好機)가 있으며 또 그것에 거의 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우리들 전교지방을 생각합니다. 과학과 경제 및 혁명과 같은 새로운 문제와 같이 증가하는 공산주의와 물질주위에 면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세아국내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자기 방어를 실천할 것이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진리와 선(善)의 공동 목적을 증진시킬 것입니다. 소수(少數) 그리스도교인의 모든 부과된 사회문제 및 정치문제와 다불어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연법의 기본적 원칙과 그리스도교 종교 및 엄격한 사회질서의 재건을 방위하는 충고적인 방법 의의(意義)를 토의하기 위하여 회합할 수 있을 겁니다. 공동 토의와 보다 굳건한 협동을 위한 행운의 기회는 한나라 정부와 국제적 기구 예를 들면 「유네스코」나 FAO(세계식량농업기구)와 같은 단체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토의될 문제들은 밋숀 스쿨과 일반학교의 종교적 교육문제 인종문제 정당한 임금문제 결혼과 여성의 권리(權利) 문제 인구과잉문제 도시화(都市化) 문제, 이민문제, 알콜중독 문제, 등등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런 것들과 아울러 반드시 토의되어야 할 문제중에는 신학적인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읍니다. 즉 교회와 국가의 관계, 종교적 관용문제, 부정한 개종권유문제, 교리지도와 전례문제 혼혼(混婚) 문제, 공동적인 성서 번역문제, 그리스도교 목사와 신부의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에 직면하고 있는 제문제 등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전교지방에 한해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께서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공의회가 무엇을 할 것입니까? 「에큐메니즘」에 관한 1949년의 검사성성 서한은 내가 지금까지 말한 바 있는 활동의 노선(路線)을 권고하였읍니다. 그와같은 협동작업은 최근에 발표된 교황 요안 23세의 사회회칙 「마뗄 엘 마지스뜨라」 안에도 포함되고 있읍니다. 나는 공의회가 이와같은 일반적인 원칙을 보강하고 명백히 하는 것보다 다른 무엇을 할 것인지 의문입니다.
「넬」=우리들은 대화에 관하여 이미 이야기 했으며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모두 공의회가 가톨릭과 비가톨릭 간의 상호간의 존경, 신뢰, 참뜻 아량 등을 나타냄으로써 고무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아량을 보이는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는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서 놓여졌다고 봅니다.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비단 한 국가 내에 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존재하는 종교적 다원론(多元論)을 인정함이 없이 가톨릭 국가 안의 정치인에게 반드시 그것을 정치적 사실로서 주의하라고 지시하셨읍니다. 그와같은 성명은 교리에서가 아니라 정책에서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프로테스탄트에 향한 태도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있읍니다. 나는 <베아> 추기경의 언급에 고무되었읍니다. 그러면 종교적 자유분야에 관하여 논평해주시고 특히 그리스도교 일치국의 제활동이 여하히 종교자유를 보호하는데 있어서 상호간의 존경과 아량을 효과적으로 이끌 것인가에 관하여 말해주실 수 없겠읍니까?
「스」=일치국 자체와 전세계를 망라한 일치국 멤버들은 많은 동일한 질문을 받았으며 나는 다른 그리스도교 단체와 가톨릭과의 관계는 가톨릭 교리의 과용이 완전하게 발전할 때가지는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증가하는 가톨릭 신학 학교는 우리들의 교리를 더욱 깊게하고 발전하기 위한 보다 많은 『방침 변화』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관용의 교리는 단순히 사회적이나 정치적 방편, 혹은 『오류(誤謬)는 올바른 것이 없다』라는 지적(知的) 추상(抽象)에만 기초를 둘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인간의 자유자체와 신앙의 자연성에 기초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공의회가 얼마나 오래 걸리며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를 예견할 수는 없읍니다.
「넬」=요는 그리스도교 일치국이 설치된 자체와 일치국이 지금껏 행한 업적이 대단히 중대한 의의(意義)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두가지의 가능한 대화 방법은 마련할 수 있을겝니다.
사실 누가 먼저 말을 건낼 것인가 같은 주저(躊躇)함이 없이 이와같은 대화가 조직된 단체간에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러한 대화가 「세계교회 평의회」(WCC)와 일치국 간에 개최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는 공의회에서 일치국의 격려와 발전 및 일치국이 상징하는 과정(進行)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실제적인 그리스도교 일치에 도달할량이면 로마 가톨릭과 서슴치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스』=아마공의회는 일치국이 교회의 공식기관으로서 계속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일치국은 교회가 대화에 관하여는 공식적인 위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분리된 형제들을 『분리되었다』 보다는 『형제』로서 대할 것이며 정복해야 할 적대자(敵對者)로서가 아니라 회답을 바랄 수 있는 형제로써 대한 것입니다. 얼마 안되는 일치국의 경험은 성신(聖神)께서 여하히 1961년도의 교회의 비판에서 우리들 분리된 형제들을 통하여 가톨릭신자인 우리들에게 말하여 주는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읍니다. 가톨릭신자로서 나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을 믿고있읍니다. 교회의 조직은 변할 수 없읍니다. 그러나 교황 요안 23세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들은 가능한 인간의 장해를 제거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일치국이 접수한 수많은 비가톨릭 그리스도교인들의 긍정적 부정적 비판은 과연 그와같은 장해물이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알려주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의 결합은 천주의 은총의 사업입니다. 언제 어떻게 기적을 행하실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천주 은총이 주시는 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우리들은 겸손하고 끈기있는 방법으로서 지금 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읍니다. 나는 당신과 모든 분리된 형제들이 우리들의 의회를 이 준비를 위한 바로 한 스텝으로서 보아주기를 희망하며 우리들을 위하여 기구해줄 것을 바라맞이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