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NC】 예부성성(禮部聖省)장관 <가에타노 치꼬냐니> 추기경이 자난 2월 5일 향년 80세로 서거하였다.
38년간을 성청 외교관으로 활약한 노련한 외교관이며 현 바티깐 국무장관 <아멜또 치꼬냐니> 추기경의 형인 고 추기경은 지난 2일간 독감에 걸려 병상에 누었다가 5일 심장마비로 서거한 것이다.
교황 성하께서는 동 추기경이 서거하기 직전에 특별 강복을 보내셨고 임종시에는 형인 <아멜또 치꼬냐니> 추기경만이 곁에 있었다 .
고 <가에타노 치꼬냐니> 추기경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 1881년 11월 26일 이태리 「브리시겔라」에서 출생 ▲1904년 9월 로마에서 서품 ▲로마의 「아포리나리스」 교황직할 신학교에서 교회법 교수 ▲교황 직할 「에크레시아 스티칼 아카데미」에 들어가 외교관 교육 》1916년 서반아 주재 교황공사 피명 ▲1924년 로마로 소환되어 「보리비아」 주재 교황공사 대리 ▲1925년 「안씨라」의 명의 대주교로 피명 ▲보리비아 성청사절관이 대사급으로 승격됨에 따라 첫 보리비아 주재 교황대사로 피명 ▲1928년 페루 주재 대사로 전임 ▲1936 비엔나로 전임되었다가 1938년에 서반아주재 교황대사 피명 ▲1953년 1월 12일 추기경으로 임명 ▲1953년 12월에 예부성성장관으로 피명
【루렌꼬 마르끄-모잔비끄=NC】 「루렌꼬 마르끄」 대즈교 <테오도시오 드 구베아> 추기경이 지난 2월 6일 백형구 과다증(白血球過多症)으로 오래 병석에 있다가 향년 72세로 서거하였다.
동 추기경은 24시간 내에 서거한 2명 추기경중의 한분이다.
또한 동 추기경의 서거로 현재 아프리카에는 단 한 명의 추기경 「탕가니카」의 「부코바」 주교 <루감바> 추기경만이 남게되었다.
고 <드 구베아> 추기경이 서거하기 직전에 성하께서는 특별 멧세지와 강복을 보내셨다.
略曆 1889년 5월 13일 「마메이라」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탄생 1919년 부활절에 서품되었다. 폴투갈에서 처음 근무하다가 1929년 로마로 소환되어 「폴투갈」 대학에서 근무했다. 1936년 선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서 주교로 임명 「모잔비끄」 전교지방으로 전임되다 1941년에 「루렌꼬 마르끄」의 첫 대주교로 피명 1946년 2월 18일 선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서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루감바> 추기경이 임명될 때까지 고 추기경은 14년간 단 한사람의 아프리카 추기경으로 있었다. 또한 고 추기경은 「비적성성」(秘蹟聖省), 포교성성, 연학성성(硏學聖省) 임원으로 있었으며 오는 대공의회 중앙준비위원회 위원이었다.
<드 구베아> 추기경의 서거와 앞서 서거한 고 <치꼬냐니> 추기경의 서거로서 현 추기경 인원수는 78위로 감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