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구에서 열번째로 세워진 본당 「평택」은 삼각산을 병풍삼고 평택역을 내려다보고 있다.
경기도와 충북의 도계선(道界線)이 평택이기도 하다. 6·25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경기도 평택읍 비전리(碑前里) 608번지에 자리잡은 이 성당은 지음으로부터 36년전인 1926년 경기도 안성(安城)본당에서 분할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인 <요셉> 모(牟) 초대신부는 안성의 초대 <안또니오 야곰벨트> (孔安國) 신부의 협조를 얻어 창립했다.
몽소승천하신 성모님을 주보로 모신 이 성당이 세워진 해 서울교구에는 서울의 혜화동(惠化洞)과 경기도 양지(陽智)본당 등 셋이 설립되었다.
6·25사변이 일어나던 해까지를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네분에 의해 사목된 이 본당에 들어서면 먼저 성신보육원이 눈에 띈다. 흰 버들집 2층건물에는 6·25동란의 비극이 나은 자취들, 전쟁고아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걸쳤던 당시의 처참한 옷들을 언제 입었더냐는 듯 강보에 싸인 세상의 아들 딸들처럼 곱게, 명랑하게 내일에로 내닫는다. 천주님의 정해주신 새 어버이의 알뜰한 정성이 60여명을 국민교 중고교에다 취직가지 돌본다.
이곳에서 층층대로 올라가면 언덕위에 사진과 같이 흔히 어린이들을 그 앞에 물러 모으는 성모 어머님이 서 계시고 1백여평의 성당이 그 뒤에 서 있다. 애당초는 이 성당이 80평 남짓했었으나 4대 주임 <로이>(邊) 신부가 증축에 착수한 것을 6·25로 중단되어 대를 이은 <요셉> 황(黃貞敎) 신부가 미국의 원조 등을 얻어 4,60평의 넓은 땅을 좀더 메워 허전을 면케했었다.
교세는 본당설립 당시의 2백여명에서 3천7백명으로 늘었고 공소는 오성(梧城)·포승(浦升)·현덕(玄德)·고성(鼓城)·청북(靑北)·고덕(高德)·원곡(原谷) 등 7개면에 20개처로 증가했다.
『골고타』, 『마돈나』와 『영혼의 노래』가 흘러 나오기도 한 이 삼각산 기슭, 내일은 또 다른 시흥(詩興)이 우리를 님 대전에로 이끌 것이다.
왜냐면 주인 왕산(旺山) <요셉> 하(河漢株) 시인 신부님이 『골고타에서의 설은 눈물을 구원(久遠)의 마돈나이신 성모님의 치맛폭에 적시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영복 누릴 차비 열심히 하라고 타일으시니……
구슬방울의 조화음(調和音)을 읖조리다가도 단구(短軀)의 백발신부님은 불의를 단호히 처부신다.
3천7백의 양떼에서 한마리의 시랑이도 없이 하려
6·25 피난민이 많기도 한 이곳, 은경축도 지낸 이 신부님께는 벅찬 성신보육원 경영, 3천7백 영혼의 어버이로서의 성직 과중한 것 같으면서도 27년의 사제새왈의 경륜이 척척 해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