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기도
발행일1962-02-25 [제316호, 2면]
■ 일반의향 - 신자 사이의 생활 양식 개정이 인류의 그리스도적 인간개조로 인도되도록
참된 人間改造를
천주께서 <아담> · <에와>에게 『자식 낳아 번성하고 온땅을 채워 그를 복종시키라』 하셨다.
이 말씀 가운데 천주께서는 당신 모상으로 창조된 인류의 대가족을 꿈꾸셨고 인류의 일치를 원하셨다. 그러나 죄가 이 일치를 찢어버렸다.
「바벨」탑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 불행을 안다. 그후부터 인류는 벌써 한가정 한정신이 아니고 오직 서로 대항하는 많은 가족 많은 백성 많은 종족이 되었고 평화를 알기는 커녕 서로 물고 뜯고, 살고 있다. 그럴지라도 천주의 꿈은 인간마음 속에 기록되어 남아있었다. 모든 시대에 형제적 불화에 피곤한 인간은 국가를 초월하여 평화와 번영을 알아야 할 공동체의 꿈을 꾸었다. 이 꿈은 오늘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삽시간에 새 「바벨」탑이 하늘 높이 건설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또다시 혼란이 온다.
일치와 진리와 형제애에의 장애물은 우리 안에 있다. 가정에선 형제자매의 논쟁으로 사회에선 정당사움으로 국제간에는 국가적 이기주의로 이러한 장애물을 만들고 있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는 모든 분리의 「심볼」이었던 희랍인과 이방인을 화목시켰다. (에페소 2,1118) 승천하신 후에도 그리스도는 당신 교회 안에 살아계신다. 세상 마칠 때까지 교회는 『마치 나의 배필인 긔스도와 하나인 것처럼 너희도 하나이되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의 이 일치는 세상모든 백성에게 아직 멀다. 먼저 크리스찬 아이의 분열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 가톨릭은 어디에 일치가 발견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이 이 일치의 증거가 되는가?
우리는 분리된 형제사이에 그리스도의 더 큰 사랑과 복음과의 더 큰 친밀성과 더 열렬하고 더 깊은 기도로 가끔 대하고 있는지? 더욱더 나아가서 복음정신을 거사리는 모욕을 주지않고 우리의 매일의 처신에 있어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고 있는지? 그리스도는 겸손하고 자애롭고 외롭고 정결하라고 요구하신다. 그러나 실지에 있어 우리의 생활은 이러한 덕으로 무장되어 있는지?
가톨릭은 이혼을 배격한다. 그러나 사실 외인들이 선교사가 가르치는 「모랄」을 지키지 아니하는 신자들이 「모랄」을 생활에서 분리하는 모순을 가져오는 것을 보는 예(例)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 활발한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교황의 마음에 이렇더니 귀한 교회의 계획이 만일 생활의 완전한 변화를 위하여 적어도 더 거룩하게 사는 것이오 복음의 원칙에 의하여 참으로 일치된 인류의 재건이 우리의 표양으로 도우는 것이라면 우리 각자의 생활개선에서 시작해야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 전교자방 - 복음의 설교가 성사를 이용하고 덕행을 닦음으로 전교지방에 사는 신자들을 생활의 더 완전한 성성(聖性)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聖德의 열매 맺길
이 기도 의향은 「밋숀」이 두가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즉 신자답게 사는 것 거룩한 자 되는 것이다. 물론 선교사들의 첫째일은 신앙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새 신자들을 가능한한 최고의 성덕에로 인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이달은 우리가 성덕의 열매가 증가되도록 특별히 기도한다. 『가서 실과를 맺기를 위함이라』(요왕 15,16)
천주의 은총만이 이 열매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힘있는 기도로써 이것을 찾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성인의 필요가 급하기 때문이다. 이 기도의향은 조금도 놀랄 것이 없다. 바오로 종도를 「빠가니즘」과 우상에서 개종한 첫 그리스도신자들을 성인이라 불렀고 『이는 너희들이 모든 서업에 열매를 맺으며 천주께 대한 인식에 있어 자라기를 위함이라』하셨다. 이것은 반드시 초대교회에서만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건너 모든 민족의 역사가 그들의 영적 영웅을 가졌다. 교회는 세상 어디서든지 낯선자 될 수 없고 모든 장소에서 신앙의 영웅을 내어야 한다. 어디서든지 선사의 이용과 덕의 실천이 완전한 사랑과 기도의 길 위에 영혼들을 재촉해야한다. 만일 교회가 모든 장소와 모든 환경에서 <요왕> 종도가 천주의 어좌의 발밑에서 본 모든 종족 모든 언어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거룩하다고 할 수도 없고 가톨릭이라고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서둘러야 할 목표는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것과 미신자의 회개이다.
<분도> 15세께서는 인도의 교황사절에게 『모든 인도 가톨릭은 서로 형제처럼 사랑한 초대신자들의 표양이 모든 미신자들을 위한 것이 되도록 하라. 분열을 없이 하고 서로서로 합법적인 권리에 화목과 복종으로 하나이 되라. 그러면 그들은 언제나 한마음 그리고 영혼에는 평화와 그리스도의 사랑이 깃들 것이다. 이러한 길로 그들은 미신자의 회개를 적지 않게 도울 것이다.』 말씀하셨다. 신약은 항상 외인형제들을 도우고 신자의 빛이 그들 앞에 빛나라고 새로 영세한 자에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이 너의 착한 표양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를 현양케 하라』하셨다. 「밋숀」의 역사는 이러한 회개의 예로 넘치고 있다. 성덕은 신비로운 결실로 신앙을 낳게 한다. 젊은 나라의 모든 신자들은 선교사적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현 교황께서 말씀하신 모든 이를 위한 형제적 사랑의 넘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신자들의 영적 생활이 비록 새로 시작했을지라도 높은 수준에 올라가도록 기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