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益泰(안익태)氏(씨)를 찾아서
미사曲(곡)은 神(신)의 멧세지
그때문에 古典(고전)은 完全(완전)한 것
발행일1962-02-25 [제316호, 3면]
信仰人의 모습
세계악단(樂壇)의 지보적 존재이며 지금도 계속 저명한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를 도맡고 있는 우리 애국가의 작곡자 안(安益泰)씨가 가톨릭신자이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모을리는 없다.
세계를 주름잡아 갈 길만을 재촉하고 있는 씨는 두시간동안 체류하는 숙소(대구 동일호텔 14일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톨릭시보 기자의 방문을 전해듣자 다른 「스케쥴」을 제쳐놓고 반겨주었다.
문=안선샌님께서 입교하신 그간의 사정을.
안익태씨=여, 1945년 스페인에서 결혼할 임시였읍니다. 그곳은 다 가톨릭이니까요. 제 본명은 <리챠드>이지요.
문=부인께서는 「마드리드」에서 많은 교회활동을 하신다고 듣고 있는데요.
안익태씨=가톨릭 부인회에 직책을 가졌읍니다. 딸들도 수녀원 학교에 보내고 있읍니다. 저도 귀국하면 서울 노주교님을 뵙고 있읍니다. 구라파에서는 교회안에 더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읍니다. 3월초나 중순경 저의 집사람을 데리고 와서 노주교님을 찾아 뵐 생각압니다.
문=음악이야기로 옮기겠읍니다. 우리의 애국가 부르는 것을 들으시고 고언(告言)이 많으시단 말을 듣고있읍니다.
안익태씨=예, 우리 애국가는 한말로 애국심이 치솟게 한 것입니가. 거기엔 슬픈데가 조금도 없읍니다. 처음부터 동 · 해 · 물과……하고 활발하게 끊어가면서 힘차게 불러야 합니다. 스페인에 이런 말이 있읍니다. 『슬픈 노래는 기쁨을 찾기 위한 것』이라구요. 슬픈 노래도 끝에는 기쁨을 얻자는 것이란 뜻이겠지요. 애국가만은 애국심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도록 우렁차게 불러줄 것을 부탁합니다. 제가 꼭 하고싶은 말을 물어주셨읍니다. (이때 안씨의 동반자인 피아니스트 <하롤드 콘>씨가 들어왔다. 그는 1957년 구라파에서 안씨를 알게되어 이번 두번째로 한국에서의 연주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안씨의 역량(力量)을 최대로 평가하고 싶다는 솔직한 자기 심정을 털어놓았다. 한국사람 정서는 한국음악의 무한한 장래를 약속해준다고 하였다.)
문=교회음악에 있어서 가령 한국에서는 한국 고유의 음악을 채용하면 더 좋은 뜻이 있지 않겠읍니까?
안익태씨=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음악은 민속같은 마을(地方)에서 생겨진 고유음악과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베토벤>의 미사곡은 잘 들어보면 인간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미사곡은 곧 천주님의 멧세지입니다. 그 말씀을 색인 것이지요. 작곡가는 적어도 미사곡을 지을 때만은 풍부한 「인스프레션」을 받는 것입니다. <바하>의 것 중에도 그런 것이 많습니다. 다만 그 어려운 것을 다 할려고 하지말고 쉬운 것만 골라서 미사곡을 엮어갔으면 합니다. 민속음악 또는 모던 음악을 교회안에 채용할 필요는 없읍니다. 고전(古典)음악이란 옛것이 아니에요. 완전(完全)한 것을 고전(음악에 있어서는)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사곡에 포함된 천주님의 멧세지를 들을 수 있으면 제말에 납득이 갈 것입니다. <헨델>의 「할렐루야」와 같은 대곡은 민중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이 곳을 들을 때 다 일어나서 함께 부를 수 있지 않겠읍니까(안씨는 다이나믹한 팔을 가누어가면서 미사곡의 신비스런 힘을 설명하였다.)
문=좋은 말씀입니다. 선생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은?
안익태씨=앞으로는 지휘를 좀 쉬고 작곡에 전념했으면 합니다. 우리 민족이 음악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 같이 즐겨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이 보급되어야겠읍니다.……
안익태씨는 곧 「런던」으로 떠날 차림에 분주해하면서 인상적인 회담이었다고 거듭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