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96) 大邱(대구) 七星(칠성)동본당
평신자가 바친 첫 성당
2년 계획으로 달음질
일꾼 物色中(물색중)·布敎(포교)터 줄 잡았고
발행일1962-02-25 [제316호, 3면]
겨우 4년이 지난 본당에 무어 이렇다할 자랑거리가 있겠읍니가. 실속도 없이 신문에 선전만 하는 것 나는 좋아하지 않으니깐요…… 아직 더 두고봅시다. 말하자면 이 본당은 순전히 김 <바오로>(金德龍)씨의 고마운 특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아직도 첫살림이 되어서… 우선 교회일에 협조할 인재(人材)들을 모으고 길러서 본격적인 전교활동을 해보고 싶읍니다.』
한국뿐 아니라 동양(東洋) 전체를 통해서도 그 예를 잘 볼 수 없는 어떤 한 평신자의 특지로 이룩된 대구 칠성동(七星洞2가 93번지)본당은 한국 직물(織物) 생산고(生産高)의 약 4할을 자치하는 대구의 큰 방직공장(紡織工場)들이 늘어선 공장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교회라 공업지대라는 특수성을 참작하여 가톨릭노동운동과 한편 큰 기업주(企業主)들도 전교의 대상으로 삼아 전교활동을 전개해야할 이 본당에 대한 기대는 특히 주목되고 있다.
1958년 10월 28일 <시릴노> 신(申鉉玉) 신부가 첫본당 신부로서 임명되던 날이 바로 이 본당의 설정일(設定日)로서 이에 앞서 이 본당전체의 부지 1천1백평과 성당과 부속 건물 일체를 지어(도합 3백15평) 대구교구에 헌납(獻納한 은인(恩人)의 본명주보 성 <바오로> 종도를 성당 주보로 모시고 6월 30일(성 바오로 종도기념일)에 정초(定礎)를 한 건평 195평의 「모던 스타일」성당 건물이 그해 11월에 준공되어 11월 20일 축성과 헌당식을 거행함으로써 새살림을 시작했으니 엄격히 따지면 아직 3년 3개월의 어린 본당이다.
본당설정 당시 행정구역을 계산동, 비산동, 삼덕동 등 세 본당의 관할구역의 일부씩을 각각 이관(移管)받아 교적상(敎籍上)의 신자수는 1천3백명이었는데 그동안 약4백여명이 증가되어 현재의 신자수는 1천7백여명이다.
외교인들이 자녀교육을 통하여 교회를 알고 사괴도록 하기 위해 작년 6월에 『바오로 유치원』(원아 70명 보모 3명)을 개설하였고 금년 봄부터는 아동들과 여교우들의 교리지도 및 가정방문 전교를 위해 『복자회』 수녀 세분을 초청하여 부임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금년부터는 교회경상비(經常費)가 더 증가되는데』하고 걱정이다.
신자들의 「가톨릭 약숀」 단체로는 「레지오 마리에」가 한 쁘레시디움 발족하였고 「청년회」가 비교적 활발히 움직이고 「성모회」와 「연령회」가 있다.
신자들의 생활 상태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또 성당부근에는 교우집이 없다. 인가(人家)가 멀찌막히 떨어져 있는 넓은 지대라 도난사건이 빈번하여 성당 안에 걸어둔 시계를 잃어버렸고 대낮에도 끌을 가지고 성당문을 잠을쇠를 패내는 놈이 있는가 하면 그간 자전차 8대를 도단당했고 도적이 던져준 독약을 먹고 죽은 개가 네마리째로서 『도적 때문에 골치야』라고
『첫째 돈없고 사람없어 내가 급사(給仕)고 신부지요… 그러나 2년 이내에 본당으로서의 모든 시설은 다 갖추어 놓고 신자는 3년 이내에 2천5백명으로 증가시켜보려고 노력중입니다』고 본당신부님은 일해 보려는 의욕과 열정에 가득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