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22) 노동자의 집 ①
발행일1962-02-25 [제316호, 4면]
시리아에 도착한지 2년후인 92년 8월에는 <알베리크> 수사가 신학연구 도중에 그를 위하여 준비된 거룩한 명예에 대하여 불안을 느꼈다고 한다면 다음해인 93년 4월에는 이보다도 더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로마 교황의 친서는 트라피스트 수도자가 기름과 뻐터를 채식재의 조미료로서 사용하는 것을 허가한 것이었다. 사실에 있어서는 이 허가는 하나의 권고이었던 것이다. 로마교황은 트라피스트 수도자가 건강에 더욱이 주의할 것을 원하여서였다.
성심의 성모수도원은 이 요망에 따랐다. <알베리크> 수사는 그것을 슬퍼하였던 것이다.
『……우리들의 음식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지방질의 물건이 넣어 있읍니다. 극기를 조금이라도 약하게 한다는 것은 그만치 천주께 바치는 것을 작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만치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을 작게 하는 것입니다.……』
<알베리크> 수사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결핍의 배후에 숨어있는 희열 가난한 생활을 감수한다고 하는 신성한 감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맛있는 저녁밥을 준 사람이 얼마나 그의 생활을 철저하게 뒤엎어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참된 회심이라는 것은 모든 원망을 버리는 데 있다. 만일 성스러운 복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더라면 <알베리크> 수사는 그에게 주는 기름과 뻐터를 돌려보앴을 것이다. 또한 필요한 때에는 그는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자기의 피를 줄 각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알베리크> 수사는 트라피스트회에 들어간 것을 후회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그의 영적 지도자에게 복종하여 그곳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수도원장들에게 복종하여 마지 않았다. 그래서 트라피스트회는 그에게 수도적 양성을 해주었다. 과거에 대하여 아무것도 후회할 수는 없었다. 그는 천주께서 그에게 지정해준 길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래는? 그때 그의 가슴 속에서 어떤 극적인 문제가 성장해가고 있었다. 즉 이 이상 트라피스트수도자들이 있는 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을가? 머물러 있어야 되느냐? 그에게는 이 질문을 자기자신에게 무를 절대적인 권리가 있었다. 그것은 그를 위해서 유기서원만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권리로서 고민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샤르르>에게 있어서는 사회에 남아서 우수한 탐험가로서의 생활을 계쏙할 수도 있고 혹은 가정을 이루는 것도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권리를 이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 트라피스트회를 떠난다는 권리를 행사해야 될 것인가? 이번에도 또한 그의 스스로의 권리로서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알베리크>는 그의 영적지도신부와 수도원장에게 또다시 조언을 구했다. 이리하여 1893년 여름동안에 <알베리크> 수사의 대계획이 생겼던 것이다.
『트라피스트회 속에서는 가난함과 비천함과 참된 이탈과 겸양의 생활을 보낼 수는 없다. 즉 다시 말하면 나자렏에 있어서의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잠심의 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가 나에게 이러한 원망(願望)을 이처럼 강하게 주시는 것은 다만 그것을 희생으로 삼게 하기 위해서인지 혹은 성교회 내에서 어떠한 수도단체도 주께서 이 세상에서 살으신 것과 같은 생활을 본받아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작은 수도단체에 기초를 형성할 수 있는 몇사람의 동지를 찾아볼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했다. 그리고 그 단체의 목적은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그리스도의 생활을 본받는 것일 것이다.
오로지 손으로 하는 일에서 얻는 것만으로 살며 다른 사람에게서 어떠한 도움도 받지않고 희사를 청하지도 않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든 권고를 문자 그대로 따르고 원하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주고 물건을 사용할 때는 될 수 있는 한 엄격하게 결핍된 생활을 할 것이다. 이 노동에다 기구를 많이 할 것 성가대에서 외우는 성무도 없이 한다. 그것은 밖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하나의 장애물이며 무지문맹의 사람들의 성성에는 약간의 도움밖에는 되지않는다. 소인수의 클럽 갈멜회 수도원과 같은 비둘기 집 같은 것 밖에는 만들지 않을 것(다수의 수도자가 있는 수도원은 거의 필연적으로 적빈과 겸양에 상반하는 물질적인 중대성을 갖게된다) 그리고 전세계 특히 완전히 버림받은 이교도들의 나라로 퍼저나갈 것.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주의 종을 증가시키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일 것이다.』
자기를 힘써서 뛰어나지 않는자로 하는 것 사랑하며 감탄하고 있는 수도회의 명예를 피하는 것 밖에는 원하지 않는 이 온순한 수도자는 그의 성소가 이 수도회의 성소와 완전히 일치하지 핞는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그 당시의 성회 내에서는 그의 원의에 맞는 듯한 수도단체는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고까지 생각되었다. 이때 그의 마음 속에 하나의 창립자의 혼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 계획중에는 무엇인지 정신상의 교만함이 섞여 있지나 않을까? 최후의 장소를 찾는다는 가장 아래 <알베리크> 수사는 그의 어른들보다도 총명하다고 자만하고 있지 않을까? 또 이와같은 그의 계획은 변하기 뒤운데서 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사실은 <알베리크> 수사가 그의 성소의 깊은 뜻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찾아낸데 불과하였다. 그의 생애의 이 새로운 단계에로 들어가는 방법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천주로부터 온 것인가 혹은 악마에게서 온 것인지 또는 나의 상상력을 통해서 일어난 것인가를 문의하고 신부에게 이와같은 생각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스스로 생각할 만큼 상당히 강렬한 원의를 가지게 되었다.』 『<포리카르프> 신부는 지금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 것이며 만일 그것이 천주에게서 온 것이라면 천주께서 반드시 기회를 주실 것이니 그 기회를 기다리라고 나에게 말하였다. 그 신부의 이 말씀은 나에게는 참으로 감탄할 만한 총명한 말씀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복종하였떤 것이다. 나는 천주에게 나의 소원을 바쳤다. 그리고 그것이 천주의 위대한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와같은 원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기구했다.』
그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투쟁을 하게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은둔을 구한다음 그 회에서 다시 자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투쟁은 공명정대한 것이었다. 그는 그 고해신부와 또 얼마후에는 수도원장에게 또 <유브랑> 신부에게도 자기가 어떠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과 그의 계획이 왜 필요하나를 명백히 말하였던 것이다.
그는 어떠한 사람도 비난하려하지 않았으며 조그만치도 인내성이 없다는 것은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소원을 표명했으나 사람이 그에게 주는 시련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알베리크> 수사의 편지로서 이와같은 사건을 안 <유브랑> 신부는 몹시 그것을 반대하였다. 그는 한사람의 새로운 회심자의 과격한 열심을 위태롭다고 하였다. 그는 이 창립의 계획을 염려하였으며, 그리고 <알베리크> 수사에게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지금과 마찬가지 생활을 계속하도록 하라고 요청했다.
『적어도 부제품을 받을때까지 신학연구를 계속하고 내면적인 덕 그중에도 완전한 자기포기에 전념하기를. 외부적인 덕에 대해서는 이것을 회율과 당신의 웃어른에 대한 완전한 순명을 가지고 실천하기를 다른 것은 후에 알게됩니다. 그밖에 다른 사람들을 지도한다는 역할은 당신에게는 맞지 않고 전혀 적합지 않은 것입니다.』
확실히 <유브랑> 신부는 무모한 행동을 두려워 했던 것이다. 그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무기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인내하였으나 그 인내는 그의 마음을 몹시 괴롭혔다. 나자렛의 이메지에 그는 여전히 매혹되고 있었다. 고요한 밤에 그의 이메지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장작더미와 포도밭 위에 비나는 태량보다도 그에게는 보다 강렬하게 빛나는 것이었다. 이 기간에두가지의 새 사건이 트라피스트 수도자의 생활을 동요시켰다. 그것은 <동 루이 드 곤자아그> 신부가 알제시의 바로 옆에 있는 「스타웰리」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원장이 되기 위해 떠나간 것이었다. 그의 후임에는 <동 에치앤느> 신부가 왔다. 또 하나는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이 총회가 수도자의 물질적 생활에 또 새로운 완화를 주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세월은 지나가고 아무일도 변하지는 않았다. 천주께서는 아무런 표적도 주시지 않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