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97. 大邱(대구) 飛山(비산)본당
軍隊(군대)식으로 다스려
貧困(빈곤)이 특증이라고
발행일1962-03-04 [제317호, 3면]
대구 서북쪽 높다란 지대에 자리잡은 이곳 비산동(飛山洞)성당은 바로 성당 담밑으로 경부선 철로가 지나고 있어 경부선을 타고 대구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지금으로부터 34년전 1928년에 설립된 비교적 역사가 깊은 본당으로 현재 공소 4개소를 합하여 교우총수 2,500 예비신자 300명(그중 영세준비자가 70명)이나 되는 대가족이다.
성당 건평 134평인 현대식 벽돌건물에 부속건물로는 강당(건평) 61평, 사제관 40평, 수녀원 24평, 그밖에 복사사랑과 유치원 등이 있다.
유일한 본당사업체로는 성심유치원이 있어 바오로회 두분 수녀님이 어린 꼬마들을 돌보고 있다.
지금의 성당이 건립되기까지에는 역대 신부님들의 많은 노력이 들었으니 처음 <마지아> 이종필 신부님이 담을 쌓아 낭떠러지의 위험을 막았으며 그후 <야고버> 이(李己守) 신부님이 비로소 현재 비산본당 총회장인 <비오> 유성금씨와 본당 여러 유지들과 교우들이 힘을 합쳐 현재의 건물을 지었다.
본당의 주보성인은 성바오로 귀화(歸化)이시며 역대신부로는 맹신부(佛), 하신부(佛), <마지아> 이종필 신부, 헬렌 신부(佛) <야고버> 이(李己守) 신부, <요셉> 정수길 신부, <요왕> 김영제 신부, <안드레아> 이(李昌鎬) 신부, 그리고 지금 본당주임으로 계씬느 <베드루> 조(趙相益) 신부까지 꼭 10명의 신부가 34년간 사목한 곳이다.
본당 내의 신심단체로는 5개의 레지오 마리에 쁘레시디움이 있고 그밖에 성모회, 성심회, 청년회, 학생회가 있어 개인성화와 외교인 귀화 등 전교활동이 왕성한 곳이다.
천주교 초대군목으로 10여년간을 군목생활을 한 본당 조(예비역 中領) 신부님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오랜 군목생활에서 본당을 맡으니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겸손한 말씀을 하며 인삼주(링겔병에 미삼(尾蔘)을 넣고 소주를 넣은)를 내놓으신다. 신부님이 주시는 귀한 술이자, 그 맛이야말로 바로 감로주(甘露酒)다. 10년간 몸에 젖은 군대생활이 그대로 아직도 가시지 않고 앞으로 전교와 교회 운영도 군대식으로 해나갈 작정이라고 한다. 그 예로서 레지오를 강화하며 미신자 포섭에 적극 노력할 것이라 하며 사리사욕을 버리고 남을 사랑하는 참다운 그리스도 정신을 본받아 우리 교우들은 누구보다 먼저 재건운동의 선봉이 되어야 한다고 군대식으로 말했다.
끝으로 본당의 특색을 묻는 가지 질문에 시내 어느본당보다 빈한한 점이라 하며 교우 대다수가 극빈자이며 그대신 이곳에서 어느정도 살만하면 으례히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한다. 그래서 비산동을 지금도 「날미」라 하는 것 같다고 하고 한바탕 웃음을 남기고 비산본당의 발전을 기원하며 노을비낀 날미 고갯길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