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치 한 임군이 세자의 혼인잔치를 배설함과 같다.
여기 말하는 임군은 천주시다. 혼인잔치는 기쁨과 행복의 「메씨아」의 왕국이다. 고양의 혼연에 불리움을 받은 자는 복된 자라 묵시록에(19장9절) 말씀하셨다. 혼인 예복이란 혼연에 불린 자의 자격을 주는 영세 때 받은 흰옷을 말한다. 종들은 최후의 날에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천주의 심판에 입회하는 천사들이다.
이 혼인의 비유는 주님이 당신과 함께 천국에서의 영원한 상봉(相逢)을 우리에게 약속하기 위하여 택하신 비유이다. 이 비유는 결정적으로 분리되는 날까지 「메씨아」 왕국인 교회 안에는 선인과 악인이 섞여있다고 하는 『그물과 가라지』의 비유와 비슷하다. 우리는 교회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세 때 받은 흰옷을 언제나 입고 있어야 하고 영세한 자로서 합당히 살아야 한다. 즉 『이전의 행실을 좇아 기만적 원욕을 따라 생활한 부패된 묵은 사람을 벗어버리고 정신생활에 있어 일신하여 참된 정의와 성덕을 구비하고 천주의 모상을 따라 조성된 새로운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서간경) 묵은 사람에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세례로써 그리스도 신자가 된 자가 획득해야 하는 현실이다.
주의 밭에는 가라지와 밀이 섞여있고 그물 속에는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섞여있듯 초대를 받은 자가 모두 간선자가 아니다. 즉 신앙을 받은 자가 모두 애덕과 선업에 살고 도덕적 이상에 살고 있지 아니하고 그 중에는 천주와 사랑과의 관계에 있어 자기를 허위나 기만의 노예로 만드는 욕망 가운데 사는 사람도 있다. 예수가 각각 입어야 할 예복이다. <바오로> 종도 말씀데로 그리스도 안에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를 입는 것이다. 그러나 세례는 과거의 죄를 사하는 것이지만 영세 후 법하는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세 후에는 수양을 게을리해서 다시 죄를 범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바오로> 종도는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여 너희 구령에 더욱 힘을 쓰라』고 경고하신다. 우리 신자는 천주의 생명을 보존하지 아니하면 죽는다. 그러므로 이 생명을 빼앗는 대죄를 범치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주의 생명을 발전시켜야 한다. 여러 가지 덕을 닦으므로써 이 생명을 발전시키고 기도와 성사 특히 천주의 생명자체인 성체를 영하므로써 발전시킬 수 있다. 예수께서 성부께로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을 우리에게 담보로 남겨주셨다. 예수의 제자들은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예수의 살과 피가 되는지를 몰라도 그것이 예수의 참 살이오 참 피라는 것을 믿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우리의 살과 피가 되는지 볼 수 없어도 그것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종도들에게 주셨고 세상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하라고 하셨다. 물론 종도들은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와 신부들이 미사 중에 예수께서 하신 것과 같은 성변화(聖變化)를 하신다. 그리스도는 관대하신 마음에서 우리의 마음 속에까지 오시고저 하셨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하셨다. 오늘도 우리를 성체난간으로 초대하신다. 그러나 예복을 입지 않고 즉 상당한 자격이 없이 잔치집에 들어가서는 아니된다. 그래서 <바오로> 종도는 누구든지 합당치 않게 이 면병을 먹거나 주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의 죄인이 된다고 경고하셨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직장과 가정생활이 가져오는 수고에 억눌려있는 것을 잘 아신다. 그는 우리가 매일매일의 걱정과 유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잘 아신다. 그러므로 『무릇 수고하는 자와 무거운 짐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하시고 즐거운 단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밖에서 쉼을 찾는고, 이 맛스러운 잔치의 초대를 거절하는고 생활의 현실에서 도피하고저 하는 자 방종의 길에 몸을 내던지는 자는 이 그리스도의 혼연 초대를 거절하는 자이다. 『나』하신 그리스도의 안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수고를 덜어주시는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의 십자가와 함께 어떻게 행복되이 살아가야 하는가를 뵈여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데 있다.
申相祚 神父(효셩여자중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