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 23세 社會回勅(사회회칙) 마뗄 엩 마지스뜨라(MATER ET MAGISTRA) 全文(전문) (8)
발행일1961-10-08 [제298호, 2면]
■ 문제의 조건
세계적 범위로 고려된 사실을 말하면 일방의 인구증가와 타방의 경제적 발전 및 식량공급의 능력 사이의 관련성이-적어도 목전과 가까운 장래에-곤란을 조성할 것 같지 않다. 모든 경우에 있어 사람이 자신(自身) 있는 결론을 꺼낼 수 있는 요소들은 너무도 불확실하고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외에 천주께서 당신의 인자와 지혜로써 자연 안에 무궁무진(無窮無盡)한 재원을 뿌려놓으시고 그 재원을 정복하는데 적당할 기구를 창조하며 그리고 그 재원을 인생의 수요와 요구가 만족하도록 변화시키는 지성과 천재를 인간에게 주셨다. 그러기 때문에 그 문제의 실제적인 해결이 천주께서 세우신 도덕 질서를 거스리고 또 인간 생명의 바로 그 기원을 손상하는 방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 지배를 심화(深化)하고 신장(伸張)하려는 인간편의 갱신(更新)된 과학적 및 기술적 노력에 있다. 이미 실현한 과학적 및 기술적 진보는 이 방향으로 제한이 없는 지평선을 전개(展開)하고 있다.
어떤 지역과 발전 중인 경제의 정치공동체 안에서는 인구의 증가율에 비례되는 생활 조건을 제공하지 않는 불충분한 경제적 및 사회적 조직 및 그리고 또한 사람들 가운데 연대책임이 충분한 저옫에까지 작용하지 않는 사실에 기인하는 실지로 엄중한 문제와 난관이 있을 수 있고 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설(假設)에 있어서도 이 모든 문제를 상대하지 말아야 하며 이 모든 난관은 인간답지 아니하며 오로지 자기 자신과 자기 생명에 대한 순전히 물질주의적인 관념으로만 설명되는 방법과 수단에 의뢰함으로써 극복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당장에 명백히 언명(言明)해야 한다.
진정한 해결은 오직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진정한 인간 가치를 존중하고 향상시키는 경제적 발전 및 사회적 진보에만 발견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단 한 사람의 인간 존재의 생명이 지니는 방대한 가치와 일치되는 도덕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제적 발전 및 사회적 진보 안에 그리고 유익한 지식과 자본과 인력(人力)의 질서 있고 성과 있는 교환을 허락하며 돕는 세계 범위의 합작 안에만 발견되는 것이다.
■ 生命律의 존중
인간의 생명은 가족 즉 그리스도교도에게 성사의 존엄성에까지 드높여진 하나이며 해소될 수 없는 혼인으로 성립된 가족의 수단으로써 전승(傳承)되는 사실을 나는 엄숙히 선언해야 하겠다. 인간 생명의 전승은 자연이 자연인(自然人)에게 그리고 위반할 수 없고 불가변(不可變)한 그리고 승인되어야 하고 준수되어야 할 법 즉 천주의 모든 법을 복종하는 의식전인 행동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이나 동물의 생명 전승에 적당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며 방법을 따름이 허가될 수 없다.
인간 생명은 신성하다. 인간 생명의 바로 그 시초부터 천주의 창조 행위가 직접으로 작용한다. 그 어른의 법을 위반으로써 초자연적 지존(至尊)을 거스리며 그 개인과 인간성이 타락하고 그들이 성원(成員)이 되는 공동체도 그와 마찬가지로 쇄약해진다.
■ 책임감에 대한 교육
새 세대가 적당한 문화적 형성은 물론 종교적 형성으로써 교육되어야 함이 가장 크게 중요하다. 그들의 모든 표현과 따라서 가족의 형성에 관하여서도 그리고 자녀의 번식과 교육에 있어 깊은 책임간에로 이르는 이 형성을 획득함이 부모의 의무이며 권리이다. 이 모든 일은 인간 생명의 전승과 자손의 교육에 있어 천주와의 합작인 만큼 지극히 숭고하고 또 흔히 지극히 수고로운 사명을 완수하는데 노고 희생을 당할 각오를 위하여 신앙생활과 초자연적 섭리에 대한 큰 신뢰(信賴) 안에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한 교육을 위하여 교회만큼 그처럼 많은 효과적인 방법을 갖춘 제도가 없으며 이러한 이론으로서도 교회가 자기 사명을 완전히 자유롭게 완수하는 권리를 가졌다.
■ 인생에 有用하게
천주께서 최초의 인간 존재에게 두 가지 명령을 어떻게 내리셨는지 창세기가 이야기한다. 생명 전승의 명령과 『생육하고 번성하라』-자연 지배의 명령이다-『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이 모든 명령은 서로 보충한다.
확실히, 자연을 지배하라는 이 신성한 명령은 파괴적 목적을 겨누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에 생활에 유용하기 위함이다.
한편에서 궁핍 상태가 뚜렷이 드러나고 비참과 기아의 요괴(妖怪)가 우리를 따라 다니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과학적 발견, 기술적 발명, 경제적 수단이 흔히 광범위한 파괴와 죽음의 무서운 기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는바 우리 시대를 몹시 괴롭히며 좀먹는 가장 침해(侵害)하는 모순의 하나를 지적하기를 나는 슬퍼하는 바이다.
생며의 전승에 수반하는 많은 미묘(微妙)한 문제까지도 위신있는 모양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섭리하시는 천주께서 충분한 수단을 인류에게 허락하신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게 또는 해결될 수 없게됨은 사고(思考)가 비끄러지거나 의지(意志)가 꺼꾸로 된 인간이 그러한 수단을 이성(理性)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대하므로 인간의 사회성(社會性) 또는 섭리의 계획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는 결말을 구하기 때문이다.
■ 세계적 범위의 합작 모든 인간 문제의 세계적 부피
인생의 모든 양상에 있어 과학 및 기술의 진보는 정치공동체들 사이의 관련성을 배가하며 증진하기 때문에 그들의 상호의 존엄성이 항상 더욱 깊어지고 또 활기를 띄게된다.
그 결과, 그 내용이 무어든지-과학적,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또는 문화적을 막론하고- 오늘날 어떠한 중요한 문제라도 초민족적 그리고 흔히 세계적 범위의 부피를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정치 공동체들이 아무리 자기 나라의 정도가 높고 또 보급되었어도, 국민들의 수가 많고 근면하여도, 경제 체계가 능율적이어도, 영토가 넓고 산물이 풍부하여도 자기들의 공유한 환경 안에서 자기들의 공유한 힘으로써 자국내의 중대한 문제를 다시는 더 적당히 해결할 수 없다. 각 정치 공동체들은 서로 반응(反應)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해와 합작이 그처럼 필요한 것이다.
■ 상호불신
사람은 그와같이 개인적 인간존재의 마음 속에 또 서로 다른 백성들 가운데 상호간의 이해와 합작의 시급한 필요성에 대한 확신이 어떻게 항상 더 널리 보급(普及)되어 감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보다 큰 책임을 맡은 사람들 자신이 서로 이해하는 능력이 없음을 보인다. 그러한 무능력의 뿌리는 과학적, 기술적, 또는 경제적 원인에 찾을 것이 아니라 상호 신임(信任)의 결핍에 찾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고 따라서 국가들이 서로 무서워한다. 상대방에서 정복 계획을 가지고 그 계획을 실시하기 좋은 순ㄱ나을 대기하고 있다고 서로 걱정한다. 그 때문에 각자가 공격을 위함이 아니라 어떠한 효과적인 침략에 대하여서도 강력한 침략자를 제지(制止)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방위를 조직하며 자기를 무장한다.
그 결과로서 광범위한 인간의 정력과 방대한 재원이 비건설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그러는 반면에 개인적 인간 존재의 마음 속에 광범위하게 노동하려는 자발적 정신을 감소시키는 주저(躊躇)와 불안감이 일어나 커진다.
■ 도덕질서 승인의 태만
상호간의 신뢰가 없다는 이유는 특히 보다 더한 책임자들이 자기들의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 틀리는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인생관의 시사(示唆)를 받는 사실에 있다. 불행히도, 그런 모든 인생관의 일부에는-초월하며 보편적이며 절대적이며, 만인에게 평등하고 명령하는 질서인- 도덕 질서가 승인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만인에게 이의(異議) 없이 묵수(墨守)되는 하나이며 동일한 정의법에 비추어 서로 만나 완전히 또 숨김 없이 이해할 수가 없다. 정의라는 말과 『정의의 요구』라는 귀절이 만인의 입에서 발언됨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발언은 서로 다르며 반대되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서로 만나며 또는 이해하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보다 오히려 정의와 정의의 요구에 대한 되풀이되며 극히 흥분된 호소는 혼란을 증가하며 대립을 날카롭게 하며 논쟁을 격분한 채 끌게한다. 그 결과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기의 고유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가장 엄중한 죄악에 앞서 폭력을 수단으로 하기 외에는 아무런 다른 도리가 없다는 신념이 퍼지고 있다.
■ 참 천주가 도덕질서의 기초이심
인간 사이와 국가 사이의 상호 신임은 도덕 질서의 승인과 존중을 제외하고 시작될수도 증가될수도 없다.
도덕 질서는 천주 바깥에서 지탱하지 않는다. 천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도덕질서는 무너진다. 인간은 사실상 물질적인 유기체에 불과하지 않고 또한 사상과 자유가 부여된 하나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국민 공동체 안의 개인 생활과 집단 생활 문제와 그들 가운데의 제(諸) 관계에게 줄 수 있는 지시와 해결에 어떠한 물질적 가치보다 더 관계를 가지는 도덕적 및 종교적 질서를 사람이 요구한다.
과학 및 기술의 승리시대에는 인간이 천주 없이 자기들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모든 동일한 과학적 및 기술적 진보가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의 기원(起源)이오 종궁(終窮)이신 천주께 대한 성실하고 적극적인 신앙에 비추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세계적 범위의 인간문제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로써 열러진 그 동일한 제한 없는 지평선이 수학적 및 과학적 개념이 지적은 하지마는 추단(推斷)하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의 더욱 더 깊은 양상을 완전히 표현한다는 신념을 낳기를 도와 그 신념을 발전시킨다는 확정(確定)으로써 이 모든 사실이 재확인된다. 기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거대한 힘이 건설적 및 파괴적 양방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 비극적 경험이 정신적 가치의 긴박한 중요성을 명백히 하므로써 과학적 및 기술적 진보가 문명에 관하여 그의 본질적으로 수단적 성격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서는, 고도의 생활 수준을 가진 국민 공동체에서 인간 존재 가운데 보급되는 불만감의 증가는 지상 천국에 대한 희망의 환상을 파괴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위반할 수 없는 보편적인 권리에 대한 의식이 점점 더 명백하게 되며 더욱 유력하게까지 됨은 보다 정의롭고 보다 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갈망이다. 이러한 모든 일은 모두 인간 존재로 하여금 자기들의 고유한 제한을 의식하게하며 자기들 안에 정신적 가치에 대한 노력을 조성하는데 공헌하는 동기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성실한 이해와 유익한 합작을 위한 다행한 성의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