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83) 水原(수원) 고등동본당·소화국민학교
신설 본당 苦衷여기도
알뜰한 小花國民校
발행일1961-10-08 [제298호, 3면]
◇고등동본당
북수동(北水洞)성당에서 서쪽으로 약 2「키로」 가량 떨어진 지점인 고등동(高等洞)본당은 3년 전인 1959년 1월25일에 설정된 새본당이다.
북수동성당과는 달리 「모던 스타일」의 건물인 이 성당은 건평(建坪)이 120평으로 북수동의 「고틱」식 성당보다 약간 더 큰 것 같은데 작년 11월5일에 낙성되었다. 총 부지 약 1천5백평 위에 성당은 신식 건물로 세워졌지만 사제관(司祭館)과 교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일본식 가옥을 수리하여 쓰고 있는데 본당 신설 당시에는 이 집이 성당으로서도 쓰여진 모양이다.
사제관 뒷뜰에서는 「세멘트」로 벽돌을 만들고 있어 또 새 건물을 세울 예정인 것 같으며 아직 건설의 단계에 있는 본당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본당의 신자수는 7개처의 공소를 합해서 약 2천명인데 주일날이면 5리 밖 10리 밖에서 미사참례를 오는 교우가 많고 대부분 영세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신입 교우들과 부녀자들이기 때문에 본당의 재정(財政) 운영에는 애로가 약간 있다. 본당의 경상비만 매월 10만환이 드는데 교무금(敎務金)은 40만환 정도라니 본당 신부님의 고충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사제(司祭)로서 일을 좀 해보려는 정열에 넘친 <스테파노> 이(李鍾撤) 신부님은 『별 능력은 없지만 힘다는 데까지 해보려하고 있읍니다. 새본당인고로 무엇보다도 전교에 주력을 하고 있지요…』 하면서 이 본당 관내에는 비교적 지식층 신자가 많으며 전교는 주로 「레지오·마리에」 운동을 통하여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였다.
「레지오·마리에」는 성인(成人) 「쁘레시디움」 4개 미성년(未成年) 「쁘레시디움」 3개 그리고 공소에 2개 「쁘레시디움」이 조직되어 있으며 신부님 사무실 옆방은 언제나 「쁘레시디움」의 주회의(週會)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다.
또한 신부님 방에는 어린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하는 교리 설명계도(_圖)가 걸려있어 신자들의 교리지식 수준을 높이기 위한 신부님의 노력 자체가 열심히 엿보이고 있다.
◇ 소화국민학교
북수동(北水洞)성당 광장(廣場)이 바로 학교운동장이 되고 있는 이 가톨릭 초등(初等) 교육의 전당은 1934년 4월 당시의 본당 주임 <띠시테리오.뽈리>(沈) 신부가 『소화(小花) 강습회』를 창설하고 학원장(學院長)으로 취임한 것이 설립의 역사로서 그 후 1946년 1월24일 문교부로부터 국민학교(國民學校)의 인가를 받게되고 1949년 3월에는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바오로> 윤(尹炳熙), <바오로> 최(崔奭浩), <요셉> 이(李福永) 신부 등 여러 신부님을 역대 교장으로 뫼셨고 현재 <바오로> 임(林鍾求) 신부님을 교장으로 뫼시고 있는 이 소학교는 교직원 8명 중 수녀(성가회)가 두 분이나 있어 순진한 어린 마음에 종교적인 정서를 담북 길러주고 있다.
6학년 6학급에 남아(男兒) 210명, 여아(女兒) 218명으로 학생수 도합 428명의 아담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의 국민학교로서 공립(公立) 국민학교의 『도매(都賣)식 교육』에 비하여 얼마나 이상적 훈육(訓育)인가.
이 학교 아동들이 잘하는 자랑거리는 음악과 체육인데 특히 야구(野球)가 뛰어나 작년에는 전국(全國) 국민학교 야구대회에 출전하여 준우승(準優勝)의 영예를 얻었고 서울시 「야구협회」 주최대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하여 3년 연승(連勝)으로 우승기(㫊)를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