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25) 나자렛이라 하는 極地(극지) ②
발행일1962-03-18 [제319호, 4면]
『내가 오래동안 꿈꾸고 있던 것이 이제야 비로소 완전히 실현된 것입니다. 가난한 수도단체의 하인이며 시종입니다』라고 그는 동생에게 써보냈다. 이와같은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그는 마을과 전원(田園)의 사이.
나자렡의 교의에서 살고있었다.
그는 한 수도단체 근처에, 동시에 멀리 고독하게 사는 동시에 이웃사람으로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언제나 밤이 밝기 전에 잠이 깨던 즉시 프랑치스꼬교회의 수도원에 가서 아침 6시까지 기구를 했다. 뒤이어 소제하고 제대와 제의를 정돈하기 위하여 크라라회의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7시에 그는 주임신부의 미사에 복사하고 그것이 끝나면 성당 속의 모든 것을 정돈하는 것이다. 그는 크라라회 수녀들이 빌려주거나 혹은 가족이 보내준 신심과 신학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었다.
허드레일꾼인 이 새로운 하인은 우편물을 가질러 가는 일도 담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사렡에서는 우편국은 하나 있으나 우편 배달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편물이 와있는가를 보러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지방의 사람들은 뉴스를 알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로 만족하고 있다.
그들은 대개 통신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다. 수도원은 많은 편지를 쓰는고로 <샤르르> 수사는 날마다 크라라수녀원의 일로 우편국까지 갔다.
자기 자신은 때때로 편지를 받았다. 편지 왕래는 그에게 있어서 최대의 사치 중의 하나였다. 그는 매주마다 동생에게 종자매 <마리>에게 <유브랑> 신부에게 혹은 다른 몇 사람의 친한 사람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샤르르> 수사는 과거 어느때에도 이만치 행복하였던 때는 없었다. 옛날의 애정에 그를 연결시키는 것이라고는 종이 위에 적는 글자 이외에는 없고 <샤르르 드 후꼬오> 로서의모든 것은 과거로 살아지고 말았던 것이다.
응접실의 철망 뒤에 숨어있던 수도원장 <매에르 쌩 미셀>도 접수소를 맡아보는 수녀도 그의 이름이라든가 과거의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최초에 그 수녀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으나 그것을 알고난 뒤에는 너무나 감탄하였기 때문에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그의 침묵을 존경하며 그가 자기의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하는 정열을 존경하였다. 그러나 수녀들은 그가 보통 걸인이 아니라는 것도 벌써부터 느끼고 있었다.
원장 <메에르 쌩 미셀>은 그를 만나지는 않았으나 그의 일신상에 일어나는 일은 전부 알고 있었으므로 원장수녀의 감탄하는 마음은 날로 커질 뿐이었다.
이 은수자의 생활 양식은 항상 검소하고 조식(粗食)을 하는 크라라회 수녀들과 같았다. 최소한 첨례날에는 그러했다. 그것은 첨례날 이외에는 그 식사가 그에게는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날에는 그는 자기가 두때의 식사라고 부른 식사만을 취했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하루에 건빵을 두끼 먹는 것이었다.
때때로 접수에 있는 수녀들이 수도원장의 명령으로 그의 식탁을 조금이라도 풍부히 하기위해 파단행(巴旦杏)과 무화과 열매를 갖다 주었다. 그러나 수녀들은 그가 데서트의 과실을 어떤 상자 속에 두었다가 사람눈에 띠지 않을 듯 할 때 아이들이나 걸인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을 알아채리게 되었다.
이해 1897년은 <앙드레 지으드>가 『땅의 양식』을 쓴 해였다. 그러나 <사르르> 수사에게는 가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비천함을 원하였다. 누구든지 때로는 금욕주의를 자랑하기 위하여 부와 쾌락을 경멸할 수가 있다. <샤르르> 수사는 이런 종류의 아리바이를 신용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적인 자기포기에까지 가려고 생각했다 .즉 여러사람에게 경멸을 당하게 되기를 원했다. 두랑자와 같은 누더기 옷을 입고 처음으로 크라라회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그는 성체앞에 꿇어 앉아 조배하며 세시간 동안을 지냈다. 그때 성당에 기구하러 왔던 하층민인 신자들은 이러한 가련한 적빈자가 자기들 틈에 끼어있다는 것을 보고 고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접수계에 있는 <마리 휘델>은 불안해 하며 대체 무엇이 이런 방랑자를 이렇게 오랫동안 성당 속에 붙들어두게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반드시 성체 현시대를 집어 가지고 살그머니 자취를 감출 예정일거야』하며 수녀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얼마후에 확실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수녀는 자기가 잘못 추측한 것을 <샤르르>에게 고백했다.
<샤르르> 수사는 그것을 듣고 행복에 가득찼다. 천주의 아들은 유데아의 재판장에게서 모독자(冒瀆者)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샤르르> 수사의 행복에는 다만 하나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도 크라라회 수녀들이 너무나 자기에게 대한 것을 잘 알게되어 자기가 원하는 이상의 정의를 가지고 그를 대우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이상한 풍체는 그런 것을 싫도록 본 동양인의 눈에까지도 가련하게 보렸을 정도이며 동리의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샤르르> 수사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어느날 그들은 돌을 던지며 그를 쫓아갔다. 행복한 날이었다.
나자렡에서는 <샤르르> 수사는 머리를 깎거나 손질하기 위해서 이발사를 집에까지 데려오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 혼자서 거울도 보지 않고 머리를 짤랐다. 마치 되는대로 막 깎아버린 듯하였다 어느날 그는 수도원에 잠깐 들린 한 사람의 갈멜회의 신부 앞에 머리를 숙이고 축복을 청했다. 신부는 이와같은 봉말(봉髮)의 남자를 보고 우슴을 참지 못하여 『당신은 대체 어떻게 되었읍니까? 멀가 진물렸읍니까?』하고 외쳤다.
<샤르르> 수사는 웃으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행복한 날이었다. 예수는 가시로 된 자관을 쓰셨던 것이다.
또 어느때 <샤르르> 수사는 여호와 싸우는 임무를 받았다. 이 동물은 매일밤 수도원서 닭장에 침입하여 그때마다 희생자를 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수녀들은 야경을 할 수 있도록 <샤르르> 수사에게 총을 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웃사람 <카람>의 아들이 총을 가지고 왓다. 그는 총쏘는 법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자세한 주의를 하면서 총을 <샤르르> 수사에게 내주었다. 은수자는 웃지도 않고 듣고 있었다.
딴 사람들이 완전히 천진하기 때문에 그는 한층 더 조롱받는 것이 기뻗다.
밤이 오자 그는 오리브나무 뒤에 엎드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총을 무릎 위에 가로 놓고 온밤중 묵주신공을 바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샤르르> 수사는 여호가 여전히 닭장에서 닭을 잡아간 것을 알았다. 나자렡의 온 동리에서 『선량한 수녀들』의 하인을 보고 조롱할 만도 했다.
또 어떤날 <샤르르> 수사는 수녀원의 안마당에서 콩을 고르고 있었ㄷ. 거기에 프랑스인의 순례하는 수도자 두 사람이 지나갓다.
그들은 그가 부엌일을 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 보았다. 그는 귀밑까지 빨개졌다.
그리고 이렇게 낯을 붉힌 것을 대단히 죄스럽게 생각했다. 예수도 모친을 도와 일하는 것을 무안해 하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날 한 사람의 설교자가 여자 수도원의 습관에 따라서 작은 응접실에서 홀로 점심을 들고 있었다. 이 첨례를 위하여 메뉴는 특별히 공을 들여 차렸다. <샤르르> 수사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도 음식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이 설교자는 참으로 마음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일어나자 자기 자리를 이 하인에게 양보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번에는 당신 차례입니다. 여기 앉아서 마음껏 많이 잡수시시요』 <샤르르> 수사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는 성스런 굶주림 밖에는 굶주리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크라라회의 수도원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지수성찬을 먹는 것이었다. 이 순간 「미로메닐」가에서 하인을 부리던 저 고상한 파리인은 어디로 자취를 감춘 것일까. 또 크라라회의 수녀들이 감탄하던 저 고행자는 어디로 가고 만 것일까.
그는 모든 것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 고행가지도. 예수는 권하는 대로 누구와든지 식사를 같이하고 식욕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던가. 정열로써 받아들인 굴욕. 이것이야말로 말석에 이르는 제일 가까운 코스이다. 사람은 조롱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자아를 죽이고 조롱받으며 경멸을 당한 왕자 예수와 한몸이 된다.
조롱을 받는 것이야말로 성 바오로가 말한 『낡은 사람』의 뿌리가 존재의 밑바닥에서 뽑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참된 비천함이 생기며 그것이 영혼의 밑바닥에서 주가 찾아오시기 위하여 검은 섬광(閃光)을 비치는 좁은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