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주년(週年)의 끝이 가까워옴에 따라 예전에 두게된 사상은 천주의 심판이다. 천국은 마치 한 임금이 그 종에게 헴을 받으려함과 같다(복음). 천주께서 이를 우리에게 요구하실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 하늘과 땅 그리고 그 모든 부(富)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초입경). 이 천주의 심판에 대비하기 위하여 우리는 신앙과 희망 가운데 악의 정신을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서간경). 우리 신자생활은 언제나 영적 투쟁이다. 여기 신앙과 이 신앙의 대상이요 동기요 내용인 천주의 말씀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신자를 위해서 신앙은 어린 시절에 받은 감격을 잃은 추상적이요. 최소의 「프로그람」밖에 아니된다. 물론 어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에도 혈육(약한 인간)을 거스려 싸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우리 시대에는 특히 마귀와 천고에 떠도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에게 중독을 주는 악(惡) 사상으로 끈힘없이 위협을 당하고 있다.
이를 거스려 우리는 그리스도의 용사처럼 천주의 주시는 무기로써 무장할 필요가 있다. 이 투쟁에 있어 <바오로> 종도는 정신적 무장을 역설하신다. 이 정신적 무장은 진리와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는 열성 등이다. <바오로> 종도는 신앙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서 투구를 삼으라고 가르쳐주신다(텟사로니카 전서 5장8절). 물론 신앙은 우리를 보호한다. 신앙은 오류를 거스려 우리를 천상 진리로 덮어준다. 그러나 우리는 투쟁을 회피해서 피난소를 찾아서는 아니된다. 신앙은 이를 발전시키고 확장시키고 견고히 해야만 이 신앙이 우리를 보호해준다. 어린 시절에 배운 교리문답의 희미한 기억이 우리 신앙의 갑옷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수비해야 한다. 그러나 천주의 말씀인 양편에는 검(劍)으로 공격태세로 나아가야 한다. 성서는 가끔 천주의 말씀을 검에 비하였다(헤브레아서 4장 12절, 이사이야서 49장 2절, 묵시록 1장16절, 2장 12절, 19장 15절). 이 검이 잘들고 날카롭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이 생활해야 하고 잠을 자고 있어서는 못 쓴다. 그리고 천주의 말씀도 우리에게 생활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천주께서 심판하시는 이라면 그는 동시에 구원의 천주이시기도 하다. 그의 재림(再臨)은 우리의 영세와 함께 시작한 「출애급」(出埃及)의 끝이 되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때를 울릴 것이다(층계경). 신앙은 희망에 일치해야만 비로소 생활한 것이 된다.
우리는 생활하신 천주께 의지하자(영성체경). 그리고 사랑에 의지하자. 우리가 믿는 천주를 사랑하자. 그러면 <욥>과 같이 모든 시련에서 승리할 것이다. (봉헌경)
申相祚 神父(大邱曉星女中 校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