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7) 금지된 마을 ③
미셀·까루우즈 原著
발행일1961-10-15 [제299호, 4면]
결국 갈길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휏쯔」쪽으로 통해 있는 길이다. 그것은 모든 사절단(使節團)이 지나가는 길이며, 서쪽에서는 「엘 코사르」 「엘 케비이르」(스페인 사람은 이것을 「알카자아르 기비르」라고 한다)로 통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곳이 안전히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외교관들은 그들 자신의 견고하고 공식적인 호위를 대동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편 보통 여행자들은 그들이 지나가는 지방의 부족(部族) 중에서 특별한 몇 사람의 호위를 금전을 보수로 주고 모집해야 하는 것이었다.
『모록코의 독립해 있는 모든 부족들 속을 여행하는데는 불완전하게 정복된 부족들 속을 여행할 때와 같이 그 방법은 다만 한 가지밖에 없었다』고 <후꼬오>는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부족 한 사람에게 「아나야」 즉 보호를 청한다. 그리고 그가 자기네들을 지정한 장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기를 부탁한다. 그러면 그는 여러 가지로 논쟁해서 가격을 작정하면 그 조건으로 그들을 안내하기를 승락한다. 금액이 정해지면 그는 자기 스스로 인도하거나 혹은 그 부락의 사람들과 같이 정한 장소까지 데려다 준다. 그곳에서 그는 소개받은 사람이 있는 곳에 안전하게 넘겨주는 것이다. 다시 더 여행을 하려면 또다시 새로운 조건과 계약금을 정해야 한다. 이런 짓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여행을 계속하게 된다. 이와같이 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에는 손에서 손으로 넘겨지는 것이다.
인행을 구성하는 사람을 「게다」라고 부른다. 그들의 수효는 때에 따라서 대단히 다르다』
이것이 모록코에 있어서의 <후꼬오>와 <말도세>의 여행의 거의 전부를 지배한 방법이었다. 물론 이것은 원칙에 불과하다.
실제에 있어서는 그것은 가장 도박적으로 실현된다. 여정(旅程)의 각 지점에서 우선 보호해주고 호송해주고 방어해 줄 사람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수에 대해서 아직까지 논쟁해야 하며 또 그 보호자가 확실한 지 어떤지를 알기 위하여 될 수 있는 한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후에 이 여행자와 「제다」를 습격해 올 보다 강력한 약탈자들을 맞날 위험을 각오하면서 출발하는 것이다.
유데아인이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하는 <후꼬오>와 <말도세>에게 있어서는 「유데아」인의 평판이 나쁘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어서 오히려 습격을 당하기에 안맞고 그만치 위험성이 더 많았다. 지방 총독의 호위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샤우언」에 가는 도상에서 통행인들이 다음과 같은 인사를 하는 것을 여러 차례 그는 들었다.
『신이여! 그대를 낳은 부친인 유데아인을 영원히 불태우소서!』
아무튼 <후꼬오>는 전진하려하고 있다. <말도세>는 이맛살을 찌프리고, <후꼬오>는 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말도세>가 맘에 들지 않는다. 말도세는 게으른 겁쟁이며, 취사하는데 밖에는 소용이 없다』고 그는 기록하고 있다.
마침내 이 청년은 안내인에게 속히 결단을 지우도록 서둘러서 두 사람은 한 사람의 「제다」를 동반하여 노세를 타고 또다시 「휏쯔」를 향하여 출발했다.
이 길은 수없이 불안한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꼬오>는 끊임없이 많은 과학적 관찰을 작은 수첩에 기록하며 이 나라의 훌륭한 모습에 감탄하여 마지 않는다. 훨씬 후에 그의 저작 『모록코 탐험』 속에다 그는 여러 산의 모습과, 전답, 복장 주민의 풍속을 매일매일 기록하고 있다. 그 얘기는 일종의 귀여운 서정적 필치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별안간 호화로운 풍경이 눈앞에 전개된다. 이 책은 이 여행자가 모록코의 산에 최초로 들어가던 날 7월2일부터 기록이 시작되었다.
『「제벨」 「베니」 「핫상」산은 지금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리밭이 옆구리에서 원희장(圓戱場)과 같이 층을지어 펼쳐있으며, 그리고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에서 계곡에 이르기까지 황금깔개로 산을 덮고 있다. 이 보리밭 한가운데에 정원이 있는 무수한 집들이 빛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삶이며, 부(富)이며, 서늘한 맛이다.
우물은 그 근처 여기저기에 용솟음치며 폭포처럼 그 언저리에 욱어진 월계수, 무화과, 포도넝쿨 사이를 흐르고 있다. 나는 아무데서도 이처럼 상쾌한 풍경을 본 일이 없으며 아무데서도 이처럼 부지런한 주민들은 본 일이 없다』
<후꼬오>의 어조(語調)가 마치 <빌질이우스>의 시와도 같이 음조(音調)에 잠겨있을 이 무렵에 그는 「망제에」와 「휏쯔」 중간에 있는 무수한 고대 「로오마」의 폐허가 산재하고 있는 지방을 횡단하고 있었다. 탐험가의 일이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기록을 하고 관찰을 하기 위해서 쉴새없이 몸을 숨겨야 한다. 왜냐하면 <후꼬오>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그는 지리학 협회에다 참된 과학적인 참고자료를 보내주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의 여정 전부는 나침판과 기압계(氣壓計)로 사생(寫生)되었다. 걸어가면서도 나는 언제나 손에다 5센치 평방의 수첩을 숨겨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손에 언제나 가지고 있는 2센치 길이의 연필로 길가에 주목할만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기록하고 좌우에서 남의 눈에 띠지 않게 했다. 또 나침판에 나타나는 방향의 변화, 토지의 고지와 기압, 그리고 각각 관찰한 시간, 휴식과 보행의 속도, 기타 여러 가지를 기록했다. 이처럼 나는 어디서나 거의 항상 기록하고 있었다. 수많은 대상(隊商)들 속에서도 아무도 이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내 옷이 여유가 있고 풍만했기 때문에 내 손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나는 뒤섰다 앞섰다 하면서 조심하며 걸었다. 유데아인이라고 하는것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 것은 오히려 내가 고립하는 것을 유리하게 했다. 이와같이 해서 기록한 것과 도정(道程)의 검사는 수첩으로 몇 권이나 가득찼다. 나는 어떤 부락에 도착했을 때 별실(別室)을 사용할 수가 있었으므로 시기를 놓치지 않고 그 여행일기를 수첩에다 다시 썼다. 나는 매일밤을 이런 일을 하는데 보냈다. 낮에는 언제나 유데아인 틈에서 보냈다. 그들이 있는데서 기록을 하면 의혹을 사게되기 쉬웠다. 밤은 고독과 일을 가져왔다』
『천문학적인 관찰을 하는 것 도정(道程)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육분의는 나침판과 같이 숨길 수가 없다. 그것을 사용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측정한 태양과 별의 높이의 대부분은 촌락에서 잰 것이다. 대낮에 나는 노대에 사람 없는 틈을 타서 기구(器具)를 옷속에 감춰서 운반했다. <말도세> 제관은 나를 면회하려는 사람들을 끝없는 얘기로 제지하기 위하여 층층대에서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근처의 노대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때를 택하면서 관찰을 시작했으나 때때로 중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이 대단히 걸렸다. 잠시도 혼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육분의의 전시를 설명하기 위하여 무슨 얘기를 꾸며대야 할 것이냐 어떤때는 그것을 공중에 있는 미래(未來)를 보는데 쓰는 것이라고 했다. 또 어떤 때는 부재자(不在者)의 소식을 듣는데 쓰는 것이라고 했다.
「다자」에 있을 때는 그것을 「콜레라」를 예방하는데 쓰는 것이라과 했다. 또 「다도우라」서는 이것은 유데아인들의 죄를 폭로하는데 쓰는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그것은 시간과 대체로의 천기와 여정의 위험 등을 예고해 주었다.
밤은 일하기가 훨씬 용이했다. … 산의 측면을 선으로 그리고 지형의 약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한층 더 비밀이 필요했다. 육분의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프랑스」어는 그 비밀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러나 도면은 사소한 것이라도 나를 배반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노대위에서나 들에서나 나는 단지 혼자서만 종이를 외투자락 속에 감출 수 있는 준비를 해가지고 일을 했다.』
일에 이렇게 곤란했음에도 불구하고 <후꼬오>는 대단히 정확하고 또 훌륭하게 그려진 수많은 스켓취로 그의 책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통과한 여러 지방에 대해서 지리학자들에게 여러 가지 필요한 지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