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기도
발행일1962-03-25 [제320호, 2면]
(일반 의향 )
病席(병석)에서 天主(천주)께 接近(접근)하길
『모든 병자가 기독교적 신앙과 희망 속에 위안과 힘을 발견하도록』
질병은 우리가 혈육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사실에 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죄의 결과이다. 그럴지라도 여기 성화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특히 오래 끄는 병 그리고 소위 불치의 병에 있어 그 방법이 요구된다.
우리는 현대의학의 위대함을 감탄한다. 병원 의사 간호부 화학자 실험실 의약 등이 있다. 경험과 기술의 결과인 이 모든 것이 천주 섭리의 한 부분이다. 병자가 완쾌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자연이다. 의무이기도 하다. 그가 가정을 가졌거나 직무상 공민상 책임이 있을 때 그것은 지상의 의무이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존재한다.
천주께서는 그들의 죽음과 병을 원치아니하신다. 그러나 병든 기간은 은총과 축복이 시간이다. 천주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저 만사를 선으로 유도하심을 우리는 안다. (로마서 8,28)
병은 우리 우리 주님이 방문오시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십자가로 상의 운전수처럼 잠시 「스톱」 한다. 병은 우리가 영광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고 질그릇 같은 혈육을 가진 몸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케 한다. (마두 25,14)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참을성이 없다. 그러나 만일 안정하면 육신과 기관(器官)에서 오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서를 지배할 수 있다.
병중에 우리는 천주와의 친밀을 가져오고 기도하기 쉽게 하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은 것을 생각하는 여유를 준다. 병원에서 우리는 어떤 훌륭한 일을 본다. 이때까지 자아주의자였던 자가 갑자기 남의 괴로움을 이해하는 자가 된다.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괴로움을 잊어버리는 의사와 간호부의 헌신을 가탄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드물다. 병이 다년간 혹은 일생을 끌게되면 사람은 천주를 원망하고 혹은 세상의 물질적 개념 위에 바탕하는 불손한 「베시미즘」으로 흐르게 되는 수가 일수이다.
이 고통스러운 때에 냉한 신자는 실망의 유감에 떨어지게 되고 때로는 자살로 끄친다. 오로지 기독교적 신앙과 망덕만이 그 영혼에 빛과 기쁨을 갖다 줄 수 있다. 참 생명은 사후에 시작한다. 참 생명은 사후에 시작한다. 현 생명은 지나가는 여정(旅程)이다.
「턴넬」끝에 빛이 온다. 『이에 천주 저들의 눈에서 온갖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것이며 죽음이 다시 없을 것이오 비애도 탄식도 고통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묵시록 124)
의사와 간호부는 치료의 희망으로 환자를 다루고 최후 순간까지 이 환상으로로 병자를 그대로 버려둘 수 있다. 그 중대한 시기에 의식을 잃어버리면 다시 구원할 도리가 없다. 사목의 의무를 지고 있는 신부는 지혜롭게 그러나 명확히 진실을 말해야 한다.
죽을 위험이 많을 때 체면을 무릎쓰고 종부성사를 권해야 한다. 종부성사의 효과중 하나가 육신의 완치도 있다는 위로를 주어야 하고 병은 축복과 은총은 물론 시련의 시기 영적 진보이 시기라는 것을 상기시켜야 한다. 신자들도 수계하지 않는 자들에게나 크리스찬 아닌 형제들에게 위안과 힘을 줄 수 있는 말과 「제스츄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머너 괴로움의 사명과 천주의 계획에서 병을 묵상해야 하고 또 많이 괴로워하고 기독교적 체념으로 괴로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전교지방)
傳敎地學園도 自由 누리길
『학원의 자유가 전교지방에 보증되거나 복구되도록』
전교지방에 기독교적 교육의 권리를 잠식(蠶食)하는 투쟁이 심하다. 우리는 이것을 방지하고 그 발전을 막아야 한다.
몇달이 지나가는 동안 계속해서 또 공산세계와 관계없이 가나 · 기네아 · 쿠비 · 수단 · 세일론 등 여러나라에서 동시에 학원의 자유가 박탈되고 혹은 국유화되어간다. 어떤 학교는 그 발전과 번영이 제한되거나 혹 귀찮은 행정적 조치를 가함으로써 더 많은 국가적 간섭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어린이의 마음을 잡으면 장래 그의 손으 ㄹ잡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국가주의와공산주의가 자기 방법으로 학교를 조절하고자 한다.
공산주의정권은 전체주의이다. 그것은 유순하고 꺾기고 냉혹과 독재의 「시스템」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시민을 원한다.
국가주의는 어린이들의 정신위에 완전한 권리를 잡으려고 한다. 이것은 독자적인 청년운동을 억압한다. 국가주의 정부는 국가의 일치가 학교의 일치를 요구한다는 거짓 구실하에 사학(私學)을 중단시키거나 제하시키고자 한다. 이 전터에 제삼의 원수가 있다. 『라이시즘』(LAICISM)이다. 장난의 위험은 크고 전투는 개시되었다. 이러한 정부가 사물을 건전한 눈으로 관찰하고 관용하고 서로 존경하는 정신으로 모든 이의 협력을 구하도록 기구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가정과 나라와 교회라고 하는 서로 구별되는 사회에서 조화있게 이루어진다.
교회는 인류의 구원이란 목표를 위해 요구되는 모든 방법을 주기 때문에 최고의사회이다. 교육의 기독교적 관념이 존중되고 개설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기도의향이다. 새 나라의 젊은이들은 견고한 도덕을 보증할 필요가 있고 비위생적이고 후퇴하는 교리적 오류를 거스려 그들을 보호해 주는 종교적 키(舵)를 잡아주어야 한다. 학교는 이러한 교육의 기본적인 도구가 된다.
<비오> 11세께서 야만종족에게 신앙의 광명과 함께 문화의 혜택을 갖다주었고 또 가지고 가는 복음의 전도사에게 찬사를 아끼지 아니하셨다. 많은 사회사업 자선사업의 창설자와 신성한 교육가가 있고 그들을 이어 가정을 도우고 나라의 칙량할 수 없는 이익을 위하여 기독교적 교육의 결실을 보고자 일생을 바리는 선남선녀가 있다. 특히 전교지방에서 좋은 일을 하였고 또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학교는 위협을 당하고 있고 폐쇄되고 있다.
우리의 기도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