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會(교회) 再一致觀(재일치관) - 聖公會(성공회)의 見地(견지)에서
발행일1961-10-15 [제299호, 4면]
7년 전, 한국에 처음 나왔을 때 이 재일치 문제에 대한, 한국 그리스도교인들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간에 대단한 분단(分斷)이 있고 우리 성공회(聖公會"앙그리칸교회)는 그들에서 또 격리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동일(同一)한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가 아닌양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로오마」 가톨릭 신자들이 참 그리스도교인이 아닌줄 여기고 있었다. 천주교, 기독교라 하여, 별개(別個)의 종교처럼 말하고 있었다. 우리 성공회 어느 젊은 이는 저 「로오마」 가톨릭 신자도 기독교냐?고 묻는 것이었다.
본인의 본국 또는 「프랑스」 이태리에서의 관념(觀念)과 얼마나 다른가! 이곳에서도 심한 반목, 박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에 전쟁까지 있었음은 사실이다. 허나 20세기 구라파사(史)의 가장 큰 사실은 그런 견해를 완전히 바꾸어 그리스도교 각파가 그들의 분단을 종식(終熄)하고 다시 한 번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창설하신 그대로의 하나인 볼 수 있는 교회 안에 일치할 것을 열원하게 된 것이다.
구라파에 있어 소위 「에큐메니칼」 운동은 성공회가 주도(主導)하고 있다. 거기엔 역사적 이유가 있으니 성공회는 「로오마」 교회로부터 분리된 연고요 다른 일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아닌 것이다. 사실 성공회는 「가톨릭」이라 불리는 권한에 참여(參與)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각국인들은 아직 성공회가 <헨리> 8세에 의해 세우진 줄 알고 있다. 이것은 오인이다. <헨리> 8세가 「로오마」로부터 분파를 창설하고 수도원을 박해했으며, 오늘 영국 사람들이 치욕을 느끼는 반교회의 악행을 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 후 영국에는 종교적 혼란을 야기하게 되었는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제각기 정치와 힘으로 이 나라를 얻으려 하게 되므로 이때에 그 어느 쪽도 통탄할 짓을 감행했었다. 드디어 명철한 <에리자베스> 1세가 나와 지금 성공회를 형성함으로 영국의 종교 분규를 처결했다.
이 성공회는 세 교회가 되려 하지 않고 원 가톨릭교리와 고전(古典)과 주교, 신부의 전통적 가톨릭 서계(序階)를 「로오마」와 절충하고 교황에 순종함이 없이 전승(傳承)했었다. 성공회에는 「칼빈」이나, 「루터」의 새 교회같은 특별한 새 교리는 없다. 성총, 성사, 성인들의 통공(通功), 사목에 관한 것 등을 초대 교부(敎父)들이 교도한대로 전수(傳受)했다. 성공회는 교황만 없는 가톨릭 교회라 해서 무방하다.
사리(事理)는 단순하지 않음을 인정해야겠으며 많은 「앙그리칸」은 전통적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가령 영국왕 <찰스> 1세는 가톨릭교리를 위해 순교했다. 새로 조작(造作)된 「프레스비테리안」 형식의 사목을 수락하려 하지 않은 때문이다.
로오마 가톨릭 목자들은 교황 없는 가톨릭인 어떤 교회를 세우겠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을 줄 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성공회의 입장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 역사적인 것과 오늘날 「앙그리카니즘」이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에의 지도적 위치를 가지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바다.
교회를 가톨릭(공번되다는 뜻)이라 하기는 쉽다. 허나 이 위대한 범(汎) 국가의 「로오마」 교회들은 분립되어 희랍, 「러시아」 및 「시리아」의 「올스독스」 교회 등으로 고립을 크게 느끼고 있는 줄 안다. 성공회는 제 역사가 「엘리자베스」(1세·여왕)으로서 시작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성공회가 4백년만 된 교회로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저 「로오마」의 성 「그레고리오」에서 첫 「칸타뻬리」 대주교 성 <아우구스투누스>같은 분을 거쳐 내려오며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귀의(歸依)한다.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성공회를 작은 집이라고 자기들을 큰 집이라 하는 수가 있다. 괜찮은 말이다. 어떻든 역사가 보여주는 바다. 교회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영국에 보낸 사실을 신중히 살펴본다. 한편 성공회는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로부터 저들같은 「프로테스탄트」 취급을 받는다. 한국서는 가능한 협동을 받고 있다. 그 연고는 다만 「로오마」 가톨릭이 아닌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회는 그들과 완전히 협동할 수 없으니 그 예들은 미사를 믿지 않고 신부 주교가 없으며 성체성사 안에 참 천주의 임(臨)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회는 성사가 없는 「프로테스탄트」와 우리가 수락할 수 없는 교황을 가진 「로오마」 가톨릭간에 떠있음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으니 다같이 예수를 따르는 자인 연고이다.
재일치에 관한 성공회의 사고(思考)의 욧점을 말했다. 그 중 가장 욧점은 재일치를 원하는 이유이다. 거기엔 한 좋은 이유가 있다. 우리가 마땅히 재일치를 원해야 함은 천주께서 원하시는 바인 때문이다. 예수, 십자가에 운명하신 전야(前夜) 모든 당신의 제자들이 『온전히 하나이 되기를』 바라며 기구하신 그와 같은 정성으로 이를 원해야겠다.
그 수단(方法)은 우리의 재일치에 대한 모든 희망과 원의를 천주께 맡겨야 한다. 성공회 측은 다른 모든 이가 성공회에 합치기를 바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이가 예수께서 원하시는 완전한 교회에 합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천주께서 택하시는 시일에 교회의 재일치를 동의해야 하겠음을 뜻하고 만약 당신이 기다리게 하신다면 인내해야 하겠다.
어째서? 만일 죄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분할되고 양심을 속이고 있다면 재일치란 인간적으로 될 수 없는 일이다.
성공회가 교황을 인정치 않는다면 「로오마·가톨릭」과 어떻게 합칠 수 있겠는가? 「메스디스트」파가 미사를 신앙치 않는다면 어떻게 성공회와 합칠 수 있겠는가? 아직은 각 종파가 그 정신을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논쟁은 삼가해야 한다. 노쟁은 사람들을 당혹시킬 뿐이다. 허나 우리의 차이(差異)를 무시한다는 것도 허용(虛用)할 것이니 이는 진리에의 관심을 포기함을 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구하는 일이다. 이는 천주의 명하시는 바다. 한 불인 신부(가톨릭)는 이 최선의 길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즉 우리는 딴 그리스도교인의 개종보다는 먼저 그 성화(聖化)를 기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길로 우리는 천주께 온전한 겸손으로 기구드릴 수 있겠다. 이런 의향으로 나는 매 목요일 미사를 드리고 있고 또 정규적으로 「프랑스」의 「트라피스트」 수사들, 「앗시지」의 「프란치스꼬」회 수녀들 그밖의 세계 각지 신부들과 상호 기구드릴 약속을 맺고 있다.
서로의 사랑 즉 서로 친숙해지고 개인적으로 종교상의 모임, 토론을 가혹치 않게 그러나 가능한 깊이에 도달하는 그런 사랑을 나눌 수 있다. 대로는 신학상 논의를 하지 않고 당면한 일이라든가 단순히 그리스도 안에 형제를 맺는 그런 접촉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성공회 신자들의 공통된 태도이다. 성공회 영성지도자들은 그리스도교인의 재일치에 저들의 생활을 철저히 천주께 봉헌하기를 종용하고 있다. 전 수도원이 이 의향으로 창설된 줄 알고 있다. 성공회에 있어서 이는 당연한 일이요 신자들은 일치에 열렬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 목적을 위해 기구하는 자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분은 북 이태리 한 조고만한 마을 낡은 성당에서 평신자의 작은 모임을 가지고 매주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해 미사를 드리는 한 「갈멜」 신부인 것을 알고 있다. 주, 우리 마음을 사랑에, 그리고 우리 정신을 진리에 하나이 되게! 오늘 천주께서 이 기구를 들어주신 많은 표적이 있다. 오늘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교회에서 성서교육에 주력하는데 놀라고 있다. 한편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은 예배에 전례(典禮)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장로교회서는 목사가 제의(祭衣)를 입고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른다) 그리스도교인 간의 논쟁은 거의 없다.
그 가장 큰 표적은 성하(敎皇聖下)께서 이 문제를 다른 교파와 논의할 공의회 소집을 발표한 것이다. 많은 성공회 신자들은 교황의 영예를 사랑하고 있다. 그에게 서방의 총 대주교직의 「타이틀」을 즐겨 주고자 하고 있다. 또 우리가 천주께 감사하는 바는 교황께서 「로오마·가톨릭」 아닌 그리스도교인에 교황의 자부(慈父)의 사랑을 보내주시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이처럼 본인의 글을 청탁하고 있는 이것부터 큰 특권이요 사랑의 표적인 줄 안다. 이 또한 천주께 감사드린다.
(筆者=英國人 聖公會 宣敎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