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교지방 / 기술을 닦는데 있어서도 전교지방 청소년을 신앙의 정신으로 지도하도록
선 교황 <비오> 12세께서 1952년 성탄 「멧세지」에서 오늘의 사회발전에 있어 기술적이오 비인격적인 조직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성격을 띠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다음해 성탄 「멧세지」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취급하시와 노동의 기독교적 개념을 말씀하시고 생산의 기계적인 개념을 예방하시었다. 기술과 무제한 생산의 힘으로 교만해진 우리 세기는 인간적이오 기독교적인 가치의 개념을 잊어버리고 경제적 생산 능률을 위하여 인간을 기계에 대치하면서 노동자를 마치 도수장으로 끌고 가는 소와 같이 취급하였다. 노동은 인간을 위하여 구원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것은 노예 상태이며 직업 위에 정신의 개선이라야겠는데 반데로 직업이 정신을 혹사하고 있다. 인간 정신과 기독적 정신은 꼭같다. 달리 말하면 인간 정신이란 생산과 물질적 이득을 인간 완성과 지적 윤리적 가정적 생활에 종속시키는데 있고 기독적 정신이란 우리 인간 목적을 현세 생활에 제한시키지 아니하고 이 지상을 우리의 장래 거처를 하늘에 준비하는 장소로 생각하는데 있다. 한편 이것은 선 교황 <비오> 12세께서 기술적 정신이라 부르신 것인데 그것은 현세 생활을 과학과 진보의 수단으로 최대한 이용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천주의 위대성과 지혜와 조화를 말하는 자연의 품에 맡기신 천주의 부(富)를 우리가 이용한다는 뜻으로 그리고 우리가 물질적 진보와 안락으로 인간생활에 높은 가치를 주면서 사랑의 마지막 목적을 천주께 둔다는 뜻에서 기술적 정신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교황의 말씀이 영향을 받기 어려운 그리고 현제 급진적으로 물질 문명에 도취되어 있는 전교지방에 이 기술 정신을 고취시키고 그를 위해 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바이다. 복음과 「나자렡」 목공소가 던지는 광명으로 받는 지혜는 두 가지 원칙을 이룬다.
1. 소극적 원칙
노동의 신성성에 관한 관념과 직업의 조직으로 생산의 우위성을 제거해야 한다. 인간이 노예상태에 다시 떨어지는 종속관계에서 있어서는 아니된다. 왜냐하면 노동은 인간을 위해서 있고 인간이 노동을 위해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적극적 원칙
현세적 필요성의 충족을 초월해서 인간의 노동은 인간 자체의 완성에 있다. 그것은 먼저 자연적인 계획 그 다음에 초자연적인 계획 위에 서있다. 그리고 차차 이 노동의 관념을 발전시켜야만 하고 그것은 가톨릭 노동자들을 위해서 가장 환영받는 것이라야 한다. 전교지방 노동자의 사도들은 그들의 사도직에 주어진 노동자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지성과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위하여 특별 기도를 바치자.
■ 일반의향 / 노년기가 바로 평가되고 걱정 없이 지나게 되도록
노령이란 연령적으로 생리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혹 사회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한 말로 그 나이에 일할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를 말한다. 연로하신 분은 특수한 지위에 놓여 있다. 그들은 긴 일생에 많은 경험을 쌓고 있고 많은 일을 실현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로자들을 존경해야 하고 그들의 의견을 빌려야 한다. 성서도 『백발노인 앞에서 일어나 노인을 존경하라』(레위기 19장 32절) 하였다. 노인들의 수가 인구 증가에 따라 붓고 있다.
이 인구학적 현상은 멀지 않은 장래를 위하여 사회적 정의(定義)에 더욱더 효과적으로 지향하는 경제적 제조직을 요구한다. 이러한 각도에서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야 하고 젊은이들의 직업 알선과 나이를 먹을수록 이 직업의 강화 혹 능률 향상이 늙은이가 사회에서 일하는 그곳과 직접 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명한 사실에 심리학적인 고려가 있어야 한다. 현재 삼십 이상의 나라에 사회제도가 잘 되어있어 노후에 연금을 받아 살 수 있고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안온히 눈을 감을 수도 있지만 아직도 이러한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의 노인들의 지위란 것은 처참한 바가 있다. 그들이 병 들었을 때 의탁할 사람이 없다든가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를 생각해 보라.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주택 문제일 것이다. 안온히 눈감을 수 있는 집 한 칸이라도 없을 때 받는 정신적 타격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또한 일생에 범한 죄가 많음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영육의 죄악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 그들의 약한 영육에 힘을 주시고 그들의 부형에 의지가 되시도록 기구하자. 또한 그들이 일생에 주님으로부터 입은 가지 가지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영혼이 되고 그들의 많은 죄를 잊어 버리시도록 기구하자.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끝까지 선에 항구하는, 은혜를 빌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