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술 중에 있는 <바오로> 종도께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재림에 대한 사상을 우리에게 고취시킨다. (서간경) 그는 『너희 모든 이에게 대한 생각이 내 마음에 있다.』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마지막 날에 대비할 수 있도록 사랑이 인식과 온갖 이해로써 더욱 더 풍부하게 하라고 하신다. 시간은 우리가 이를 준비하도록 주어져 있다. 우리 안에 선행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를 완전케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의 성덕은 그를 항상 증가시키고 완성시키므로써 우리 영혼 속에 천국의 맛을 미리 보게 해준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성부 옆에 가족적인 단합의 기쁨을 노래한다(층계경). 『형제들이 함께 삶은 이 얼마나 좋고 또 얼마나 재미있는고』 우리 신자 생활은 언제나 영적 투쟁이라고 지난 주일에 말씀하였다. 오늘 복음도 또한 진중한 투쟁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바리서이」(유태교 율법학자=위선자)들은 공론하여 예수를 말로 건과(=허물)잡고저 한다. 예수를 한 마리 물고기로 보고 그물 속에 집어넣을려고 하는 태도이다. 그들은 흑막에 물러앉아 제자를 보내고 <헤로데>의 당도 여기 참가시킨다. <헤로데>당은 친 <로오마>파(派)이다. 예수님의 답이 경솔하면 그들은 즉시 「로오마」 총독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감언을 가지고 묻는다.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사정을 두지 않고 천주의 길을 가르치신다고 하는 것은 「바리서이」들이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세살>(=시서)에게 세납을 바치는 것이 가하니까 혹 가치 아니하니까?』 당시의 사정을 알고 있는 자는 이 질문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불을 보듯 명백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그물에 걸리지 아니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궤변의 작난감이 될 수 없다. 탁월한 예민한 회답을 보내신다. 『위선자여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예수님은 물론 원수의 간교를 보셨기 때문에 올가미는 치워졌다. 『구실바치는 돈을 내게 뵈이라』 그들은 돈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그 돈의 모상과 기록한 것을 아시면서 그들에게 답을 요구하신다. 교활한 그러나 어리석은 그들은 『<세살>의 것이라』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대로 대답하였다. 『<세살>의 것』이라고 대답하는 그들에게 예수께서는 준엄한 교훈을 주신다. 『<세살>의 것은 <세살>에게 바치고 천주의 것은 천주께 바치라』 여기서 예수께서는 스승으로서 천주의 권리를 선언하신다. 이 권리는 어느 때를 물론하고 불가침이다. 특히 「사탄」이 마지막 정력을 발휘하는 순간에 불가침이다. <바오로> 종도께서 지난 주일에 우리가 거스려 싸울바는 이 혈육이 아니라 오직 이 암흑의 세상을 다스리는 자, 이라고 교회의 투쟁의 진짓한 한계를 가르처 주셨다. 에수께서는 이에 옛 원수를 이기셨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돌격을 단념하시지 아니신다. 마귀의 올가미는 수없이 많고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하여 예수의 명령을 듣자. 에수께서 천주의 권리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그것을 인증하고 그와 함께 그 권리를 선포하자. 우리는 특히 우리의 겸손한 기도로 그 권리를 인증하자. 오늘 미사는 여기 일관하는 것이 있다. 『주여 나 깊고 거욱한 곳에서 네게 부르짖나이다.』가 이 주년(週年) 마지막 주간에 등장하는 큰 영송(詠誦)이다. 우리는 끝임없이 우리의 환란 속에서 천주의 자비를 구하면서 이 성영을 거듭하자. 『주시여 당신이 죄악의 기억을 늘 품고 계시오면 주시여 누가 감당하오리까』(초입경) 교회가 이 주년 마지막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가장 힘을 주는 독서를 줄 수 있는 책은 묵시록이다. 이 책은 투쟁을 말하는 책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승리를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피상적인 독자의 눈에는 무서운 책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와 함께 「페지」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찾는 영혼들을 위해서는 위로와 비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책이다. <요왕> 종도는 순교하러 가는 신자들을 장려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그는 투쟁하는 자에게 천국 낙원을 뵈여주고 끝까지 항구하는 자에게 광명을 약속하였다.
新相祚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