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 23세 社會回勅(사회회칙) 마뗄 엩 마지스뜨라(MATER ET MAGISTRA) 全文(전문) (10)
발행일1961-10-22 [제300호, 2면]
(大尾)
■ 중대한 위험
내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의 인간은 자연법의 지식을 크게 심화(深化)하고 신장(伸長)하였고 또 인간 자신이 그 자연법의 주인이 되게 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인간은 굉장하고 찬란한 작품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외적(外的)인 세계를 지배하려고 또 변형(變形)하려는 노력 중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망각(妄却)하는 또 파괴하는 위험에 빠져있다. 나의 선임자 <비오> 11세 교황은 회칙 「과드라제씨모 안노」에 깊은 슬픔으로써 다음과 같이 관찰한다.
『원죄 이후까지도 인간의 육신과 영혼의 선을 위하여 「섭리」가 명하신 육체 노동이 도처에서 괴상 악용의 도구로 변환(變換)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한 곳에 무기물(無機物)이 그 공장을 고상하게 되게 또 변형하게 되게 버려 두기 때문이다』
그와 동일한 법으로 나의 선임자 <비오> 12세 교황은 『초자연적 영원 세계의 왜인(矮人)의 정신으로 격하된 자기 정신을 소비하여 인간을 물질적 세계의 거인(巨人)으로 변형시키는』 『기괴한 걸작』이 보여 주는 굉장한 과학적 및 기술적 진보와 인간적 공포의 경향 사이의 뚜렷한 대조가 우리 세대의 특징이라고 정당히 주장한다.
『인간들이 저희 사업에 있어 자기의 본 지위를 잊어 버리고 저희 생산품을 우상숭배의 정도로 찬미하나이다. 외방인들의 우상들은 인간 손의 작품인 은제품(銀製品)과 금(金)제품이로소이다』라고 성영가(聖映家)가 이단자들을 단정한 바가 가장 감명적인 방법으로 오늘날 또다시 인증되고 있다.
■ 가치차등의 승인 및 존중
영혼의 보편적 사목자(司牧者)로서 나의 자부적(慈父的) 걱정으로 나는 나의 아들들이 현세적 사무를 영위하며 목전(目前)의 목적을 추구하는 때 가치의 차등에 대한 경각(警覺)이 계속하여 살아 적극적이도록 유의하기를 근급히 권고한다.
확실히, 교회는 과학적-기술적 진보와 그 결과인 물질적 부유(富裕)가 진정으로 선한 것이며 인간의 문명에 있어 중요한 면을 보임을 가르쳐 왔으며 또 항상 가르치고 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이러한 모든 일은 그 진정한 가치에 따라 평가되어야 할 것이니 즉 보다 고상한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하는데 사용되는 도구로서, 또 자연적 및 초자연적 양방으로 인류의 영성적(靈性的) 완성을 용이하게 하며 향상시키는 수단으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나는 성주(聖主)께서 경고하시는 말씀이 인간들의 귀에 항상 울리기를 바란다. 『사람이 만일 보천하를 다 얻을지라도 제 영혼의 해를 받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또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영혼을 다시 물려내겠나냐?』(마두 16·26)
■ 聖日과 聖化
천주의 모상으로 형성된 영혼이 부여된 피조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교회는 천주심계의 제삼 계명의 확실한 준수를 항상 요구하여 왔다. 『너희는 「사바트」날을 거룩하게 지키기로 기억하라』 물질적 과념(科念)으로부터 해방된 정신이 정신상 위무와 창조주께 대하여 필요한 관계를 양심의 비소(秘所)에서 성찰하면서 천상적(天上的)인 일에 대한 생각과 사랑으로써 그 정신 자체를 드높이며 개방(開放)하는 일주간의 한 날을 예배를 위하여 봉헌하기를 인간에게 명하시는 권리를 가지셨다.
그에 보태어, 인간은 힘드는 매일 노동에 용진(用盡)한 체력(體力)을 갱신하기 위하며, 오관(五官)에게 적당한 휴양을 주기 위하여 가족의 전원(全員)과 빈번한 접촉과 평화로운 동거(同居)를 욕구하는 가정적 일치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휴식하는 권리와 필요까지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영혼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기념하고 응용하는 「미사」성제(聖祭)에 참여함으로써 여러 세기 동안 교회가 주일의 성화로 변환시킨 정기(定期) 휴식의 법칙 안에 종교와 도덕과 보건 전구가 종합된다.
이 신성한 법칙을 전연 멸시하지 않으면 등한히 함과 그에 따라 나의 사랑하는 노동자들의 육신과 영혼 양방의 건강에 끼치는 유해(有害)한 결과를 내가 승인하여야 하며 유감히 여겨야 함이 크게 통탄스럽다.
천주의 이름으로 또 인간의 물질적 및 영성적 이익을 위하여 천주와 당신 교회의 명령을 준수하도록 나는 공권, 고용주 및 노동자 등 만인에게 호소하며 또 천주와 사회 앞에 각자가 져야 할 중대한 책임을 일일이 깨우치고자 한다.
내가 위에 간단히 열거(列擧)한 바에 있어 만일 나의 아들들, 특히 평신도가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개인적으로 맡은 바 그리스도교적 위탁(委託)을 덜미, 보다 신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과오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 위탁을 갱신하고 증가해야 한다.
오 주께서 교회의 일치를 위하신 그 숭고한 기도에 있어 성부께 향하여 당신께서 조성하신 바를 이 세상에서 제거하시기를 청하지 아니하셨고 그들을 악에서 수호하시기를 청하셨다.
마치 인간이 일체의 현세적 활동을 배칙하지 아니하고는 자기를 완성할 수 없던 것처럼 또 마치 그러한 행동을 하고 나서는 언제나 인간이 일개의 인간 존재로서 또 일개의 신자로서 자기의 개인적 존엄성을 타협함이 불가피(不可避)한 것처럼 이 세상에 있어 인간의 자기 존재의 완성과 인간 개인의 활동적인 현존(現存) 사이에 인위적(人爲的) 대립을 우리는 조작(造作)하지 말 것이다.
이것이 그러하기 대신에, 거의 모든 인간 존재가 현세적인 성질인 자기의 일상 노동을 통하여 각자가 발전하며 자기를 완성함이 초자연적 섭리의 계획과 완전히 일치한다. 오늘날 교회는 현대 문명에게 인간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기조(基調), 즉 그 문명 자체가 그 자체의 가일칭(加一層) 발전과 그 자체의 계속적 존재를 위하여서도 요청하며 또 거의 간청하는 기음을 주는 굉장한 과업을 직면(直面)하고 있다. 내가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교회는 천주와 그리스도와의 내적으로 일치하여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어떠한 의무의 완수로서, 어떠한 봉사의 이행으로서 자기의 직업상 활동을 영위하기로 맹세하였음을 느끼는 평신도 아들들을 통하여 이 사명을 완수한다. 성 <바오로>가 지적한 바와 같이 『너희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그 외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천주의 영광을 위하야 하라』「코린트 전서 10장 31」 그리고 『어떠한 일을 하든지 혹은 말로나 혹은 행실로 모든 것을 주 예수·그리스도의 성명을 의지하야 행할지니라. 저로 말미암아 아버지신 천주께 감사할지어다』(코로새서 3장17)
■ 현세적 사무의 보다 큰 능률
현세적인 사무와 제도 안에 가치에 대한 각성(覺醒)과 초자연적 목적이 보좌되는 때 언제나 그와 동시에 그들의 집적적인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는 힘의 강화가 있다. 우리 성주(聖主)의 말씀이 아직도 진실하다.
『이러므로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은 너희게 더음으로 주시리라』(마두 6장33)
정의의 기본적 요구는 현세적 사무의 가장 곤란하고 복잡한 지대 즉 개인, 집단, 인종을 막론하고 이기주의가 가끔 짙은 검은 구름을 일으키는 지대에서 더욱 안전히 파악된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애덕으로 활기를 띠는 때 남들과 결합되었음을 느끼며 남들의 아쉬움과 고통과 기쁨이 자기의 것으로서 느껴진다.
따라서 각자의 행동이 어떠한 목적을 막론하고 또 어떠한 환경 안에 실현될지라도 보다 청렴 아니할 수 없고, 보다 정력적이 아니될 수 없고 보다 인간적이 아니될 수 없음은 애덕이란 『사랑은 관인(寬仁)하고 어질도다.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고 거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지 아니하고 사익을 도모하지 아니하며 노하지 아니하고 당한 욕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즐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진실을 즐기며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인내하는도다』(코린토 전서 13장4-7)이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 신비체의 생활한 지체
또 하나의 다른 숭고한 진리이며 현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당신 교회의 생활한 지체라는 사실을 상기(想起)함이 없이 나의 회칙을 결론지을 수 없다.
『몸은 다만 하나이되 지체는 많으며 몸의 지체가 많기는 하지만 이 모든 지체는 다만 한 몸을 이룸과 같이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도 또한 이러하니라』(코린토 전서 12장12)
성직자에 속하거나 평신도에 속하거나 모든 나의 아들들에게 그들이 포도 넝쿨에 달린 가지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접지(接地)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이 존엄과 존귀(尊貴)를 깊이 인식할 것을 나는 자부적인 긴급성으로 권하는 바이다. 『나는 포도줄기요 너희는 그 가지라』(요왕 15장5절)
그리고 그들은 그와같이 바로 당신의 생명으로서 생활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현세적인 성질일지라도 사람이 거룩하신 구속자이신 예수와 일치하여 자기의 정당한 활동을 영위하는 때 모든 노동이 당신 사업의 계속이 되며 구속력으로 충만된다. 『네게 머무는 자는 나 또한 저에게 머무르매 많은 실과를 맺나니』(요왕 15장5) 그리하여 자기 인격의 초자연적 완성에 공헌하는 노동이 되며 구속의 과실을 남들에게 떨어주기를 도우며 사람이 그 가운데 생활하며 노동하는 문명을 복음의 누륵으로써 발효케 한다.
우리 세대를 과격한 오류가 삼투(渗透)하고 관통(貫通)하여 심각한 혼란에 찢기어 뒤번벅이 되었다. 비록 그렇다 할 지라도 선(善)을 위한 굉장한 가능성의 길이 교회를 향하여 열린 세대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형제들과 아들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깊이 침사숙고(沈思熟考)하기를 권고하는 바 말하자면 성명과 결의(決意)의 전개(展開)인 <레오> 13세 교황의 가르침이 시작된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의 여러가지 문제를 나는 그대들과 더불어 일치하여 회고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지상(地上)에 실현시키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합작하는데 용기를 가져라.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창조되였으며 또 그것을 동경(憧憬)하는 바 천상적(天上的) 선을 누리기를 보장하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 거룩함과 성총의 나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다.
이에 우리는 그 빛이 밝히며 불을 붙이며, 불꽃이 타오르게 하는 바, 그 따뜻한 소리가 만대(萬代)에 속하는 천상적 지혜로 충만한 바 그 권능이 인간의 증가하는 궁핍과 현대 생활의 박탈과 불안에 대한 효과 있고 적절한 구제책을 항상 제공하는 바 만민의 자모이며 교사인 공번되고 종도전래의 교회의 교리와 관련되어 있다. 그 소리는 우리 마음을 끊임 없이 굳건하게 하며 들어올리는 고대의 성영가(聖映家)의 소리와 일치한다.
○ 천주신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실찌 나는 들으리니,
정녕코 그이께서 평화를
당신 백성에게와 당신의 성인들에게
또 당신을 향하여 마음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 말씀 하시는 도다.
○ 일정 그이를 두려워 하는 자에게는 그이의 구원이 가까이 있으니, 이는 우리 땅에 영광이② 머물러 있기 위함이로다.
○ 자비와 충성이 서로 맞우 오겠으며, 정의와 평화가 저희끼리 입맞추리로다.
충성이 땅에서 움돋겠으며,
또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시리로다.④
○ 정의가 그이의 앞에 걸어갈 것이요,
또 그이의 걷는 길에는 구원이 있으리라. ⑤
보편적 교회를 위한 나의 우려(憂慮)를 상당한 동안 가졌던 이 서한을 마침내 즈음하여 내가 바라는 바는 그러한 것이다. 나는 『너희는 저(=천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나니(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야 천주께로 조차 오는 상지와 의화와 성화와 구원이 되셨나니라』(코린토 전서 1장 31) 인간의 거룩하신 구속자께서 만대를 통하여 만사에 있어 만민을 다스리시옵고 영광스러히 승리하시옵기를 바라는 바이다. 나는 인간의 사회가 질서를 재건하여 만민이 번영과 행복과 평화를 굳이 누리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 모든 소원의 증조로서 나의 자부적 선의(善意)의 맹세로서, 주(主) 안에서 충심으로 보내는 나의 종도적 강복이, 공경하는 형제인 그대들에게, 그리고 그대들의 보호에 맡겨진 모든 신자들, 특히 나의 호소에 시원스럽게 응답할 사람들에게 내려가기를.
나의 교황직 제3년, 1961년 5월15일, 「로오마」의 「성 베드루」 대성전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