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8) 금지된 마을 ④
미셀·까루우즈 原著
발행일1961-10-22 [제300호, 4면]
「브레드 엘 마그젠」에로 가는 도중은 평온했다. 악당들을 만나지 않았다. 도중에 이 일행에 여섯 마리의 가나리아를 넣은 새장을 손에든 농부가 가입했다. 그 농부는 그 가나리아를 「휏쯔」에 팔려가는 길에 「제다」로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베일을 쓴 모록코 여인 하나가 소녀 하나를 데리고 대상(隊商)에 끼여 들었다. 걸어가는 동안에 이 모록코 여인과 가나리아를 든 남자는 서로 얘기를 하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마음이 맞아서 결혼하기로 정했다. 그들은 결호 ㄴ비용을 얻기 위하여 「휏쯔」에 도착하기 전에 가나리아를 팔아버렸다.
7월11일, 마침내 푸른 광야 저편에 흙을 다져서 만든 성벽의 총안(銃眼)과 두툼한 여러개의 탑과 무수한 흰 노대와 녹색의 「휀싸아」 자기(_器)의 지붕, 「아트라스」산 봉우리들 앞에 빛나는 모자익으로 덮인 회교사원의 높은 탑들이 눈앞에 보였다. 「휏쯔」 시가가 이 모든 아름다움과 더불어 거기에 있었다.
이는 술탄(君主)의 네 개의 수도 중의 하나이며 모록코의 최대의 성도(聖都)이다. 그리고 13세기와 14세기에 절정에 달한 회교도의 화려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 옛날부터 있는 회교의 「카라우인」 대학은 아라비아의 예지와 학문의 무수한 문헌을 아직도 보존하고 있다. 그것은 철학자 <아비첸나>의 사본(寫本) 중세의 신비가와 연금술사들의 사본들이며, 이들은 모두 서양 사상의 발달에 현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었다.
유대아인들이 살고 있는 지구 「메라」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쓰레기 무덤과 짐승들의 시체가 악취를 풍기는 광막한 황야를 건느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시내(市內)의 거름을 모아놓은 거름떠미였다. 늑대가 밤마다 와서 그것을 조금씩 처치하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메라」의 소로(小路)는 회교도의 마을 「메디이나」와 같이 미궁(迷宮)과 흡사하며 어둠침침하고 사람들이 혼잡을 이루고 있다. 이 나그네들은 「렐프 엘 훗기」통(通)을 찾았다. 거기에 <후꼬오>가 「올데가」로부터 받은 소개장의 주인공인 <사뮤엘 벤시문>씨가 살고 있었다. 유대아인이 이처럼 천대받고 있는 이 나라에 있어서 <벤시문>씨는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드물게 보는 행운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국제적 대상인이며, 오래전부터 프랑스에 가담하는 사람이며 프랑스의 피보호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그에게 유익한 보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나라의 요인들과 친교가 있었다. 아마 그는 「술탄」파도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소문이었다. 또 <사뮤엘>이 「휏쯔」에 거주하고 있는 동안 그의 형제 <메사우>는 항상 파리와 런던을 왕래하며 용무를 보고있었다. 그 두 사람들도 존경을 받을 만한 충분히 유력한 안테나를 가지고 있었다.
<후꼬오>와 <말도세>는 겨우 「델프 엘 훗기」통(通)을 찾아냈다. 덥개가 있는 길을 지나서 그들은 흐미한 불이 빛이는 나지막한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완전히 캄캄한 복도를 지낸 다음 모자익으로 돌담을 싼 가운데 뜰에 들어섰다. 얼굴을 드니 거기에는 투각(透刻) 세공을 한 발코니의 이층 지붕에 붙어있는 중앙의 「스텐드 그래스」 창밑에 당초문양(唐草紋樣)의 녹색도기로 장식한 천정이 보였다. 어둡고 꾸불꾸불한 계단을 올라서 그들은 돌로싼 벽장식이 있는 밝은 방에 도달했다. 그들은 <벤 시문>씨 댁에 온 것이다. 그 집 주인은 곧 나왔다.
그는 매력있는 사나이였으며 완전한 교양이 있으며 여행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고 해주려고 하는 사나이였다. 물론 그는 <후꼬오>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열심을 북돋게 하는데 큰 원인이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일에 매우 분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일은 제쳐놓고라도 시간을 내게했다.
그래서 여행을 계속하는데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그의 교제관계의 모든 것을 제공하며 힘을 썼다.
또 그는 어떠한 보수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모록코의 유데아인들은 불안정하며 환경이 비천하기 때문이라는데도 불구하구 그들의 도덕에 대하여 가끔 엄격한 태도를 취한 이 젊은 탐험가도 <벤 시문>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주인은 그를 도기제의 극히 작은 궁전인 기분 좋은 작은 방에서 묵게했다. 그 방은 덥게가 있는 통로의 위에 있었다. 첢아을 친 작은 창에서 <후꼬오>는 길을 내왕하는 모든 것을 관찰할 수가 있었다. 더구나 거기에는 발코니로 직접 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는 동리의 전경이 다 보였다. 그리고 궁전의 높은 시르웻트까지도 볼 수가 있었다. 이 탐험가는 여기서는 정신을 집중하며 여러 가지 관찰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본래 그는 공식적인 모든 외교관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휏쯔」의 동리에서 마음놓고 오래오래 묵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어서 바삐 남부지방에 들어가고 싶었다.
최초에 그는 중부 「아트라스」산맥 주위의 산들 사이에 있는 미개하고 거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는 광대한 지방인, 「타투라」로 찾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회교의 은둔자 <시리.벤.타우드>의 동리인 「부우쟈드」(혹은 부우.엘.쟈드)는 그 수도이다.
<벤 시문>은 그 여행이 용이할 것은 아닐 것이라고 그에게 예고했다. 역시 「브레도.엘 마구젠」 영토 내에 있으며 「술탄」의 지배하에 있는 여기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 「메크네스」까지는 만사가 용이하게 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뒤에는 불귀순 지방인 「브레도·에스·시바」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타투라」에 도착하기 전에 「사이안」족과 「제무올·시에라하」족의 영지를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 족속들은 매우 평판이 나쁘며 회교도의 시민들까지도 감히 그곳에 들어가는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은 그곳에서는 신용할 만한 「제다」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시문>은 <후꼬오>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힘을 썼다. 그렇게 분주한 결과로 그는 「메크네스」에 있는 친구 한 사람이 확실히 「부우쟈」로 갈 예정인 어떤 유력한 「세리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디.오마아르>라고 하는 그 「세리프」는 이런 의견을 듣고 두 사람의 제관을 그의 대상들과 같이 데리고 갈 것을 승락하였으며 그들을 아무 장해 없이 통과시킬 수 있는 자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유일한 곤란은 회교력(回敎曆)의 9월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건한 「세리프」가 단식과 기구를 하기 위하여 봉헌된 이 한달 동안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우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8월 중순 이전에는 출발하기 어려울 것이다.
<후꼬오>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이러한 얘기를 듣고 완전히 놀랜 <말도세>가 「부우쟈」로 가는 여행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려고 하였으므로 <후꼬오>는 더욱 화가 났다. 격심한 논쟁이 두 사람을 대립시켰던 것이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하여 <후꼬오>는 「타쟈」까지 전진하기로 정했다. 「타쟈」라고 하는 곳은 그가 지금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리프」의 경계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거기까지 가는데도 「제다」가 필요했으나 그것을 찾아내는데는 용이하지 않았다.
7월29일에야 비로서 <후꼬오>는 「타쟈」로 출발할 수가 있었다. <말도세>는 아무런 흥미도 없이 그를 따라갔다.
3일 후에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검은 바위로 된 높은 절벽 위에 있는 이 작은 동리를 보고 놀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 지방에 발을 들여 놓자말자 그에게는 불길한 소식이 들려왔다. 「리프」에 머므르고 있는 가장 강력한 부족인 「리아타」족의 「카비리아」인이 끊임없이 「타쟈」의 부근을 배회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들 무장한 도당들이 동리 가운데로 침입하여 무력한 주민들을 박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민중이 당하고 있는 공포를 말로써 표현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그러기 때문에 민중은 다만 한 가지만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