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28) 나자렛이라 하는 極地(극지) ⑤
발행일1962-04-08 [제322호, 4면]
엘리사벹 원장도 수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사렡은 틀림이 없었읍니다. 이것은 참으로 천주께서 보내신 사람입니다. 우리들 집 속에는 성인이 있읍니다.』
<샤르르> 수사가 만일 이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드라면 그는 귀까지 빨개져서 도망치고 말았을 것이다. 벌써 그는 수녀들이 그에게 주의를 너무 과하게 하는 것을 느끼고 불 유쾌했을 것이다. 만일 <엘리사벹> 원장이 그를 위하여 생각하고 있던 계획을 알았다면 그는 더욱 부린의 생각을 품었을 것이다.
그가 나자렡에 돌아가자 즉시 원장은 그를 다시 오도록 노력했다. 돌아오자 <엘리자벹> 원장은 잠시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도록 <샤르르> 수사에게 간절히 원했다. 수도원에서 보이는 다빗드의 마을의경치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진실한 십자가의 길이었으므로 <샤르르> 수사는 간단히 승락했다.
그는 또 새로운 오두막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의 그의 생활은 훨씬 더 고독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나자렡의 생활과 전혀 같은 것이었다.
『나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 성당에 가는 이외에는 독방을 나오는 일은 ㅇ벗다. 비할 때 없는 정막 속에서 일어나는 침묵 평온 고독』
다만 한번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날 걸인떼들이 수도원 안마당에서 수녀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악동들이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모르는체 하고 버려두던 <샤르르> 수사는 자기에 관한 일이 아닌 것은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는 그 소동을 보자 바로 걸인들에게 달려가서 어디에 그런 힘이 있었던지 혼자서 그들을 군대식으로 쫓아버렸던 것이다. 일이 진정되자 그는 슬퍼하며 수녀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부르짖었다.
『참으로 좋지 못한 표양을 보여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벹> 원장은 그저의 계획을 잠시도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즉 <샤르르> 수사는 사제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검은 커텐과 철창 너머로 응접실에서 원장은 그에게 똑똑히 말했다. 은수자는 거부했다.
그는 사제의 지위에 올을 자격이 없음을 느끼고 있었으며 가장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을 할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았었다. 그러나 <엘리사벹> 원장은 천주께서 주신 능력을 파묻어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샤르르> 수사는 무자격하다는 것을 내세워서 반박하였다.
그는 제일 말석에 머물러 있고 싶었으며 사제의 품위는 그의 개인적 천직과는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융통성이 있는 그는 아직도 역시 <샤르르> 수사의 영적지도자인 <유브랑> 신부에게 자기가 편지를 써서 보내겠다고 말했다. 드디어 <샤르르> 수사는 양보했다. <엘리사벹> 원장은 무난히 <유브랑> 신부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열심히 권고하겠다는 것에 성공했다.
쌩 오규스땡 성당의 보좌신부는 몇해전부터 <샤르르 후꼬오>를 사제직에 올리려고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조일석에 그들은 <샤르르> 수사의 저항을 이겨내기는 어려웠다. 예루살렘에 4개월반을 있은 후 은수자는 나자렡에 돌아가 또다시 그곳에 1년 남짓하게 체재하였다.
마침 그때 즉 1899년 그는 평상 꿈꾸고 있는 수도회를 위하여 새로운 회측을 썼다. 물론 이상(理想)은 변함없이 같은 것이다. 포교하는 지방에서 나자렡의 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계획 중에 물질적 구조(構造)는 대단히 변화했다.
성심의 성모수도원과 같은 대수도원에서는 그는 결핍과 고독에 보다 가깝게 하기 위하여 오두막집만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오두막집 속에서 비로유(非所有)의 행복을 소유하는 한편 그에게 물심양면의 원조를 주는 수도원 옆에서 그것을 의식하며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금에는 전과 달리 40명 가량의 수도자를 비오(庇護)할 수 있는 대수도원의 계획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당시에 그에게 힘을 주고 있던 주요한 생각은 항상 영성체를 할 수 있게 하도록 하려는 것이 그의 원망이었다. 성체앞에서 끊임없이 조배할 수가 있으며 더욱이 그나머지의 공동의 물질 생활이 보증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수의 수도자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그는 커다란 건물로 거의 숙명적으로 가난의 적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세와 부귀에로 이끄는 유혹을 완전히 쫓아버리기 위하여 모든 것을 될 수 있는대로 세밀하게 규축을 세웠다. 그밖에 그는 최초의 회측초안에 정해진 것과 같은 작은 집에 틀어박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것인가를 이해해서인지 따로 따로 다섯 개의 거눌을 뜰 가운데 두고 연결시켜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설계도에는 미리 모든 것이 센치메타에 이르기까지 면밀하게 정해져 있었다.
<샤르르> 수사는 모든 것을 포기했으나 전에 모록코에서 위도와 경도를 측정한 탐험가가 은수자의 헌옷을 입고 또다시 나타난 것과도 같았다. 그는 또 같은 적도로서 인간세계에 영계(靈界)의 토대를 정하고 그것을 굳게 하려고 하는 것일까. 여기서는 <푸라톤>이 미리 그의 정치적 유토피아를 세운 것과 같이 모든 것이 미리 그려지고 측량되었다. 마치 어떤 커다란 꿈을 보는 사람이 계획의 공상적인 면을 기하학의 과잉에서 보충하려고 하는 것과 같이. 그러나 그 설립이 집단적으로 실현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모양을 취할까 상상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한없이 어려운 일이었다.
또 한편으로 이와같은 설계에는 대단히 높고 신성한 시(詩)가 있는 것이다.
이곳에는 『영혼의 성(城)』이나 신전(神殿)이 입구와 앞마당을 동반하고 구현하고 있는 감이 있다. 성스런 장소의 주위에 잇달아 서있는 울타리, 정신의 성계급(聖階級) 신성한 것의 단계, 현대인이 그 의의를 잊어버린 이러한 명상의 순간에 생명을 회복시켰던 것이다. 필경 그는 그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을 카라라회 수도원 옆에서 외적 생활 속에서 만들어낸 것은 아니였을까. 그러나 그것은 역시 그 자신의 정신적 도정(道程)의 살아있는 영상인 것이다.
이러한 중에 그의 소원과 <엘리사벹> 원장의 계획을 자세히 들은 나자렡의 프란치스꼬회의 수도자들이 그에게 예수께서 -전통에 의하면- 진복에 대한 산상수훈을 말씀하셨다는 산이 매매 되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토지를 살 것. 두번 다시는 매매되지 않도록 할 것.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복되게 살기 위하여 그곳에 은둔소를 세울 것, <샤르르> 수사에게 있어서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꿈이었을까. 푸란치스꼬 회원들은 그를 자기들의 대리인으로 소개했다. <유브랑> 신부는 그에게 동의했다.
<후꼬오>의 의제인 <드 부릭크>씨는 이 꿈이 실현되도록 1만2천 프랑을 보내주었다.
<샤르르> 수사는 계약서에 서명하며 돈을 치러주고 진복팔단의 산위에서 기도소를 건축하는 허가를 얻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라띤 전례의 대주교 <삐아뷔>를 방문하려고 출발했다. <삐아뷔> 주교는 부랑자풍의 수도자의 방문을 받은 경험이 그다지 없었다. 그는 <샤르르> 수사가 진실이라고 볼 수 없어서 쫓아 보내고 말았다.
그후에 <샤르르> 수사는 땅을 판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은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나는 깊은 평화와 커다란 기쁨에 젖어있읍니다』 『내게는 단하나밖에 걱정할 것은 없읍니다. 천주의 은혜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다시 <엘리사벹> 원장과 <유브랑> 신부는 <샤르르> 수사에게 사제가 될 결심을 하도록 재촉했다. 그는 승락했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그것을 원하는 것이 그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었으며 - 또 그에게 권고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천주의 소리가 들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는 이이상 나자렡이나 예루살렘에 꾸물꾸물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크라라회의 수녀들은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수도원 근처에서 황홀과 휴식과 유락의 생활이라고 그가 말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은 그를 사제직에 부르고 있으므로 그는 또다시 눈(雪)의 성모 수도원에 원조를 구한 것이다.
수도생활에로 그를 육성한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은 그를 사제가 되는 준비를 완료해 줄 것이다.
그는 가장 완전한 무사무욕을 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조그만치도 또다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은 그의 소원을 알자 즐겁게 들어주었다.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샤르르> 수사는 프랑스에 돌아가겠다고 <유브랑> 신부에게 예고하고 그 회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배로 마르세이유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