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사)순절 전례 解說(해설) 聖週間(성주간)
부활을 기다리는 盛大(성대)한 前夜祭(전야제)
빠스카의 밤을 함께 밝히자
발행일1962-04-08 [제322호, 4면]
土曜日
오늘도 매우 슬픈 날이다. 교회는 주님의 무덤 옆에서 지낸다. 교회는 그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미사가 거행되지 아니한다. 제대상은 헐벗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밤중에 부활을 기다리는 성대한 전야제(前夜祭) 예절때까지 지낼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계속해서 희열이 솟아나올 부활의 기쁨이 빛날 것이다. 에집트를 출발하기 전날 밤 빠스카의양을 먹기 위하여 서서 철야(徹夜)하는 상태로 「헤브레아」인들은 각 가정에 모였다. 그들을 위하여 해방의 깜박거리는 여명(黎明)이 다가오는 이 극적인 시간에 약속의 땅을 향하여 큰 여행을 시작하기 위하여 그들은 빠스카의 성찬을 취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천주와 함께 깨여있었고 천주께서 그들을 지키셨다. 만일 교회가 옛날처럼 밤이 깊어가는 동안 부활의 훌륭한 예절을 거행하도록 권하는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려고 함이 아니오 오로지 철야하는 정신과 행동을 가지게 함에 있다. 「헤브레야」인처럼 우리는 밤중에 서서 철야하고 빠스카의 고양의 식탁주변에 모인다. 우리는 빠스카의 다가오는 여명을 기다린다. 우리는 다만 한 주년제(週年祭)를 기념하는데만 그치지 아니한다.
이 밤만은 다른 모든 밤 이상으로 영광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가운데 지낸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가운데 철야한다. 사실 수난하시기 이틀전 세상의 종말을 고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확실히 재림할 것을 단언하시었다. 또한 성부 외에 아무도 그날을 모르니 준비하고 있을 것을 당부하셨다. 부활의 밤은 이중으로 뜻이 있지 아니하는가. 천주의 백성을위하여는 해방의 시간을 그리스도를 위하여는 부활의 시간을 알린 밤이오 우리를 위하여는 세상 마칠 때 우리의 부활을 구하는 밤이 아닌가. 이 밤은 우리의 신앙을 위하여 위대한 밤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크리스대이즘의 주용한 신비이기 때문이다. 이밤은 희망의 밤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장래의 부활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일년중에 이밤 이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가 행복과 자유 속에 영원히 살기 위하여 우리를 부활시키려 오실 것이라고 하는 것을 더 힘있게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순간이 없을 것이다. 이 밤은 인류를 위하여 정열적인 사랑에 타는 그리스도의 이 부르심으로 진동한다. 예수의 부활을 재긍정하는 밤이 이 밤이요 승리자 그리스도 안에서 찬미와 기쁨으로 그의 개선의 재림을 고하는 밤이 이 밤이다. 「이스라엘」 후곤들이 저희 대대로 천주를 위하여 세워드리는 밤이 바로 이 밤이다.(출애급기 12,42)
사제는 새 불과 부활초를 축성한 후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부활초를 가지고 어두움 속에 잠겨있는 성당으로 행렬한다. 우리는 이전에 있어서는 암흑이었었으나 지금에는 주안에 있어 광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명의 자식다웁게 거닐어야 한다. 개선의 노래 『EXULTET』으로 빠스카의 축일이 열린다. 부활초에서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의 촛불을 켠다. 성당 안에 빛이 차차 황홀해진다. 이 노래는 성언이다. 열광적인 보고(報告)이다. 환희의 절규이다. 기쁨의 폭발이다. 부제는 빛과 같이 빛나는 흰 제의를 입고 가장 엄숙한 서문조(序文調)로 노래한다. 빠스카의 아침 <막다레나>가 예수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돋았고 그리스도는 벌써 부활하셨다. 『빛이 생기어라』 명하신 그가, 천체(天體)를 만드신 그가 소경의 눈을 열어주신 그가 바로 빠스카의 밤에 죽음에서 사람의 눈을 여시고 당신 무덤을 지키기 위하여 빛같이 눈부시는 두 천사를 남겨 놓으신 그 양반이시다.
창세기 때처럼 광대한 빛이 밤을 뚫고 새 생명의 시작을 보였다. 그러나 이 새 새벽빛이 그 비밀을 간직한다.
아무도 예수의 부활을 보지 못했다. 그럴지라도 부활의 이밤이 우리를 비추기를 그치지 아니한다. 그는 생명의 천상적 의의를 알아듣도록 우리의 눈을 연다. 사막의 밤에 「헤브레아인」을 인도한 불기둥처럼 그는 우리 마음의 암흑을 쫓아낸다. 그는 만민의 부활을 기다리는 모든 이의 마음에 희망의 기쁨을 담뿍 뿌려준다. 그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빛은 완전히 발사되어 타볼산에서보다 더 빛날 것이오 그림자 없는 예루살렘에서 태양 이상으로 광채를 낼 것이다. 이 빠스카의 밤 어두운 성당 안에 모인 군중 앞에 모든 초를 점화하는 큰 부활초는 모든 예절을 지휘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오 그이 빛은 약하다. 그러나 밤에 그 빛나는 도정(道程)은 세상의 빛이신 그가 지나가신 것과 다시 오실 것을 고한다. 그후에 네개의 구약의 독서가 있다. 그러나 이 독서는 부활초의 빛에서 즉 구약성서를 이해케 하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서 읽는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영세수의 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다시 죽지 아니신다. 죽음이 다시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의 생명은 조락(凋落)을 모르는 새 생명이다.
그러나 그는 육신을 가지신다. 그는 인간 세상에 속하신다. 그러나 세사의 모든 것이 묵어가고 죽을지라도 그의 생명은 영원히 솟아날 것이다. 이 새로운 빛이 묵은 세상 위에 빛날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모든 것이 새 날에서 빛난다. 빠스카의 밤은 새로운 밤이다. 우리는 새 불을 축성하였고 이제 새 물을 축성하고 새 잔치가 베풀어질 것이다. 우리는 새 세상에 인류의 새 역사의 여명에 있다.
백성이 영세수에서 나온다. 새 사람이라 할지라도 괴로움과 유혹과 육신의 죽음을 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부터 새 생명으로 난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이다. <바오로> 종도는 어리석은 사람이 안다.
영세가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든다고 하는 그의 확신은 신자들을 천사로 오인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는 안다. 그는 투쟁이 죄와 은총 사이에 묵은 생명과 새 생명 사이에 계속된다는 것을 경험에서 시련에서 안다. 그러나 새 생명은 이겨야 한다. 그것이 새 생명이 피어나기 위하여 극기하고 죄에서 일어나는 그것을 매일 죽게하는 영세받은 자의 생활의 모든 프로그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걸어가자. 우리가 빠스카의 밤에 영세서약을 새롭게 할 때 다시한번 우리에게 <바오로> 종도의 권고말씀이 주어진다. 그 신앙고백은 우리가 영세한 시절의 청춘을 다시 찾아준다. 우리는 부활하였다. 새로운 생명으로 걸어가자.
파공날 다음 첫날이 밝으려 할 때에 부인들이 무덤을 보러 갓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다. 그들은 죽은 자를 보러 갔으나 생명을 맞이하였다. 오늘도 영세한 자가 성체난간으로 나아갈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맞이한다. 그는 기쁨 속에서 영원한 생명이 잔치를 향하여 나아간다. 이렇게 마지막날 부활한 무리들은 기쁜 발걸음으로 천국 잔치속에 들어갈 것이다.
◆ 성토요일
전에 - 아침 일찍 길고 신비로운 예절이 벌써 부활을 거행하였다. 이 예절에 많은 신자들이 참석하지 아니했다.
지금 - 아침에는 아무 예절도 없다. 자정에 끝마치는 예절이 바 늦게 거행된다. 새 불을 켜고 모든 신자들이 초를 켜고 그리싀도의 부활을 거행한다. 성세수 축성 후 즉시 영세예절 모든 신자가 영세서약을 새롭게 한다. 부활미사와 부활 영성체
변경 이유 - 예수께서 무덤에 계신 시간이다. 모든 신자들이 올 수 있다. 부활은 우리를 어두움에서 광명으로 지나게 하는 이다. 영세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케 하는 것이다. 부활의 모든 축일은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한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