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회칙 『어머니와 교사』가 우리게 가르치는 길
발행일1961-11-04 [제301호, 2면]
■ 회칙의 내용과 동기
교회는 항상 사랑의 진리를 인류에게 가르쳐 전체 인류가 다같이 서로 사랑하며 행복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인류는 이 사랑의 원리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 크나큰 혼동과 불행을 일으켜 서로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만 하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럴 때마다 역대 교황들께서는 자부적(慈父的)인 사랑으로써 인류에게 사라으이 원리를 지키기를 호소하시며 전체 인류가 행복되게 살 수 있게 되는 원리를 제시하시는 것이다.
이번 이 『어머니와 교사』의 회칙도 바로 이러한 것이다. 교황 <네오> 13세께서 반포하신 『레룸 노바룸』(勞動狀態에 對하여) 회칙이나 또 <비오> 11세 성하께서 반포하신 『과드라제시모안노』(社會秩序再建에 대하여)의 회칙은 다 그 당시에 불의로 혼돈되어 있던 사회를 정의에로 재건하기 위한 좋은 충고의 말씀들이었다. 이 세 회칙의 말씀들을 한 마디로 종합한다면 유린된 인권을 옹호하며 온 인류는 그리스도의 참사랑의 진리에 의지하여 서로 사랑하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나 오늘이나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부 강자(强者)들에게 불의한 억압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약자에 대한 강자의 불의의 억압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국가와 국가간에 민족과 민족간에 또는 계급과 계급 간에 또 한 개인과 다른 개인 간에 재력(財力)으로 혹은 권력으로 혹은 지력으로 좌우간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남보다 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하 처지에 있는 사람을 억압하려는 것이 세상의 형편이다.
그래서 이러한 형편을 반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회칙들의 내용이다. 즉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남보다 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서 다 같이 행복되게 살 수 있도록 힘쓰라는 것이 교황들의 간절한 호소의 말씀이다.
이 진리는 교황들이 말씀하시기 전 옛날부터 천주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영원한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길을 걸어간다면 교황들은 새삼스러이 이런 말씀을 하실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실생활에의 반영이 필요
이번 『어머니와 교사』의 회칙이 나온 다음에 가톨릭 교회 내외를 막론하고 세계 각처에서 이것을 대단히 환영하고 찬양하였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에서도 모든 교회의 간행물을 통하여 이것을 환영하고 찬양하였다. 참으로 백번 지당한 일이다. 그러나 지상(紙上)을 통하여 이것을 찬양하는 것만으로 교회가 할 사명을 다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먼저 교회는 이 원칙을 자기 자신 안에 실천하여 이 원칙 하에서 교회의 생활태도가 규범되어 나가도록 해야할 것이고 또 따라서 사회 정의가 완전히 소멸되어 있는 우리 한국사회에 사회 정의를 재건할 수 있는 모범과 원칙을 주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한국 천주교회가 혼란한 한국 사회에 대하여 할 천주께 받은 중대한 사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일 교회가 자기는 이 원칙을 하나도 실천하지 않고 남에게만 하라고 가르친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다른 모든 진리를 세상에 가르칠 의무가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또한 이 사회정의를 세상에 가르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사회정의도 다른 사람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중대한 계명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만일 어떤 교직자나 수도자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다른 진리는 다 수행하여도 이 사회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진리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종교적으로 큰 과오를 범한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의 전체 사회를 살펴본다면 사회가 이렇게 불행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사회정의가 무시되어 있는 까닭임이 틀림 없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발달했을 때에 반동적으로 생겼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또 해방 이후 십여 년 간에 우리 한국 사회의 형편을 보더라도 한국이 오늘과 같이 혼란하고 불행한 사회가 된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사회정의가 완전히 무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바야흐로 사회의 모든 잘못된 질서를 재건하려는 이 마당에 우리 교회도 진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우리주 그리스도께 받은 사회정의를 완전히 실천함으로 새 생명을 찾으려고 하는 이 사회에 뚜렷하나 모범과 원칙을 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 교회는 솔선수범 해야
물론 우리 가톨릭교회는 정치에 관련됨이 없이 사회부정(社會不正)을 시정할 중책을 주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았다. 그러니까 정치의 관련됨이 없이 벌써부터 이것을 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솔직하게 반성해보면 우리는 과거에 이런 점에 있어서 너무나 미미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가톨릭 교회는 진리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교회적으로 볼 때에는 교황 성하께서 여기에 관련되는 회칙을 반포하심으로 우리를 격리하여 주시고 국가적으로 볼 때에는 국가 재건운동이 활발히 시작된 이때에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세상에 선양하는 것은 시기에 맞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문답을 성당 안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본사명의 전부가 아니라 영원하신 진리의 스승이신 주 그리스도께로부터 위탁받은 진리의 보고를 열어 세상을 비추어야 할 것이다.
현 교황 <요안> 23세께서 교황위에 등극하신 후에 첫 사업이 교황청 내에 모든 직원들에게 봉급을 인상시켜 주신 것이었다. 특히 하급 직원들의 봉급을 비율적으로 볼 때에 훨씬 높이 올려주셨다. 이렇게 하심으로 우리 교회가 얼마나 사회정의를 잘 지켜야 할 것인지를 친히 당신 표양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칭송을 받으셨다.
교황께서 당신이 등극하신 후 즉시 이를 단행하신 것을 보면 당신이 얼마나 이런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또 이런 문제가 얼마나 긴급한 문제인지를 우리는 잘 깨달을 수가 있다.
이것은 1959년 초에 된 일이니까 우리나라 사회의 인권유린과 사회부정이 극도로 성왕하던 때다. 이런때에 교황성부의 이런 좋은 모범을 가지고도 교회가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을 못 주었다는 것이 한국교회가 이런 일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그때에 한국 천주교회가 교황성하의 좋은 모범을 따라 교회 내에 그 당시의 사회정의가 요구하는 어떤 개혁적 광버을 수행하였더라면 천주 앞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세상에 충실히 전한 자로서 많은 은혜의 갚음을 받았을 것이요 사회에는 진리의 교회의 아름다운 광명을 비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때에는 그랬지만 지금 사회적으로 이러한 개혁을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이때에 교회가 선봉에 서지 못한 것은 유감이나 지금이라도 그리스도께 받은 진리를 사회에 제시해야만 진리의 스승 주 그리스도의 간절하신 뜻을 실천하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