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911년 5월3일 <드만쥬> 안주교(파리외방전교회 소속)께서 창립한 대구교구는 「그리스도 왕」 첨례인 10월29일 교구설정(設定) 금경축(金慶祝=50주년) 겸 금년도 성체거동을 상오 10시30분 시내 대건고등학교에서 성대히 거행했다.
『신뢰하고 일하자』는 <드만쥬> 초대교구장 「못토」를 계승한 제6대 교구장 <요안> 서(徐正吉) 주교께서는 왜관감목대리 <티모테오> 이 몬시뇰과 성직자 수녀 신자 등 1만여 교우들이 참집한 야외 가설제대에서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 동상을 왼쪽에 바라보며 대례미사를 드렸다.
『천상천하 모든 권한을 내게 주셨으니 나는 참으로 왕이로다』고 선포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회장에서 상기시킨 <베드루> 장(裝炳補=가톨릭時報 社長) 신부는 강론에서 함께 『그리스도의 왕이심을 만천하에 알리자』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장신부는 『세속사(世俗事)에 눈이 어두운 우리는 깨여나 신덕에 뭉치고 성체 안에 계시며 성부 우편에 좌정하신 성자를 경배하고 그리스도 왕국 건설에 모든 힘을 바치자』고 다짐했다.
대회장 4방에서 펄펄 나는 오색의 깃발들을 선두로 연합(韓·佛·獨·墺·英·美) 성체거동은 상오 11시50분 행열을 시작했다.
교황기, 태극기를 앞세운 십자가가 인도하는 연2「키로」에 줄지은 행열은 악대에 발맞추어 유치원생, 각급 학생, JOC(가톨릭노동청년회) 남자 「레지오」단원이 뒤따랐고, 보육원생, 외국인 신자, 국군, 미군, 합창대, 성직에 이어 꼬마둥이들이 뿌리는 색색의 종이꽃이 뿌려지는 뒤를 따라 성체는 우리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발을 옮겼다.
수만 시민이 주시하는 대구시 중앙통을 메꾼 거동의 뒤에는 각 회 수녀, 왜관감목 대리구, 여자 「레지오」 단원, 각 여자악숀 회원, 본당회장단이 뒤따랐다.
대구교구 역사상 처음인 이 대회는 역전광장 가설제대에서 수만 시민을 둘레에 두고 성체강복을 받으며 『그리스도왕이 여기 계심』을 시위했다.
하오 1시40분 마지막 「코스」인 시내 칠성본당에 도착한 대회는 『무궁토록 천주의 영광이 이 교구에서도 헌양되길』 비는 강복으로 무사히 경축식을 끝마쳤다.
그런데 이곳 영남에 첫 복음이 전파된 것은 「신유」(辛酉=1801)박해 직후 피신한 선열들이 경상도 영양, 청송, 진보에 발을 들여 시작되었고 1856년 불란서 「파리외방전교회」 <안또니오.다벨뤼> 안신부님이 이 고장에서 첫미사를 드린 제2 그리스도이시다.
■ 大邱교구 약사
흥선대원군(1866년)의 병인년 박해는 드디어 이곳에 신앙을 고백하는 선혈로 뿌리게 하였다.
5월3일은 대구교구에 천주께서 교황 <비오> 10세를 통해 강복을 주신 날이다.
<드만쥬> 신부는 초대교구장에 임명받고 6월11일 서울주교좌 성당에서 주교위에 성성되었고 6월26일 임지인 이곳서 착좌하셨다.
<드만쥬> 주교관하에는 경상남북과 전라북도가 속했고 신자 수는 2만113명, 본당은 13개소 성직자는 불인 3, 방인 5명이 있었다.
1937년 4월15일은 전주 및 광주교구가 설정된 날이다.
지난 50년간 이 교구는 초대교구장에 <드만쥬> 안주교, 2대 <뭇세> 문주교, 3대 <하야사까>(早板)주교, 4대 <바오로> 주(朱在用) 신부, 임시겸임 <바오로> 노(盧基南=現서울교구장) 주교, 제5대 <요안> 최(崔德弘) 주교와 현 <요안> 서(徐正吉) 주교에 의해 사목되었다.
이 교구는 <티모테오.빗델리> 이 몬시뇰(성분도회)에 의해 왜관감목대리구가 그리고 <프랑소와.할데르> 신부(파리외방전교회)에 의해 안동감목대리구가 사목되고 있다.
그런데 대구교구의 현세는 주교(방인) 1, 신부 85, 신학생 95, 수사 74, 수녀 561, 신자 71,581명, 본당 40, 수도원 4, 각급 학교 11, 유치원 13, 주일학교 81, 보육원 2, 양로원 2, 병원 7, 신문사 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