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서 있으려나 「새남터」 木造(목조) 순교탑
발행일1961-11-04 [제301호, 4면]
【承前】
나는 즉석에서 「위임장」을 써주었읍니다. 수녀들은 그것을 가지고 부산가서 현양회 물품을 갖다가 계성유치원 자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읍니다. 전시회가 끝난 다음 이 물품을 복자수녀원에서 보관하는 경우, 또다시 난리가 나서 피난가게 된다면 무엇을 제일 소중히 생각해서 가져가겠느냐고 물어 현양회 물품을 가지고 가겠다는 확답을 듣고 또 만일 수녀원에 화재가 일어난다면 무엇을 제일 먼저 끄내겠느냐고 물어 현양회 물품을 제일 먼저 꺼내겠다는 확답을 듣고는 모든 것을 수녀원에 맡겨 보관케 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이 정신과 사상은 복자수녀회 골수에 박혀 있읍니다. 개인이 이런 정신과 사상이 있을지라도 그 사람이 죽고나면 그만이지만, 이 정신과 사상이 「수도회」에 박혀있는 만큼 영구한 전통으로 계속될 것이니 이것은 큰 장점입니다. 오늘의 이 행사도 수녀원에서 자발적으로 개최한 것이지 내가 뒤엥서 일언반구의 암시라도 주어서 된 것은 아닙니다.
이제 순교기념관이 되기 위하여는 한 가지만 필요합니다. 특지가의 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구시 김 <바오로>라는 특지가는 사재(私財)로 훌륭한 현대식 성당과 사제관과 강당을 지어 천주께 바쳤습니다. 우리 순교기념관이 되기 위하여도 이런 특지가의 출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 서울 시내에 새로 터를 사고 성당과 사제관과 강당을 세울만한 비용이면 순교기념관은 세워질 것입니다.
전부를 자담하는 특지가가 나타나면 더욱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터(대지)라도 사주는 특지가가 있으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3백평도 좋고 2백평도 좋을 것입니다. 4·5년 전 순교기념관 건설운동이 머리를 들었을 때 1평당 7·8만환하던 그곳 땅값이 지금은 평당 _십만환 가량이 되었읍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더 오를 것은 여러분이 더 잘 아실겝니다. 79위 복자 중 41위가 피흘려 치명하신 그 터를 잡아주실 특지가는 없겠읍니까?
그 터만 확보하면 순교기념관 건설은 시간문제 뿐이겠읍니다. 여러분은 「성북동의 기적」을 보셨읍니다. 1953년 명동성당 옆마당에 천막을 치고 적수공권으로 시작한 복자회 수사들의 활동은 불과 8년만에 거대한 4층건물을 완성하였고, 청파동 수녀원의 성당을 지었읍니다. 고로 문제는 그 터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런 특지가가 나타나 순교기념관이 건설되는 경우엔 마지막 실에는 그 특지가의 초상과 그 가족의 초상과 그의 기념품이 진열될 것입니다. 이런 특지가가 나타나거든 복자수녀원이나 복자수사원에로 연락하여 주십시오. 여러분은 기회있는대로 이 문제를 끄내놓고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상의 말씀을 여러 교형자매들께 유언으로 드리는 바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