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祭館 窓门(사제관 창문)] 개별적 가치평가에 질서보존해야 된다
「中高校 체육시간 증가」를 듣고
발행일1961-11-12 [제302호, 2면]
인적자원이 부족되어 식민지 정책으로 하시하던 한민족의 젊은이들까지 동원시켜 군국주의의 야욕을 성취시키려고 모든 힘, 모든 정신, 전력을 육체세_에 보내던 8·15전 학교교육제도에 무슨 가치의 질서나 계급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순전히 싸움에-그것이 정의의 사움이건 아니건 불문하고- 이미 저질러 놓은 싸움에 이기기 위해 직접 필요한 육체의 훈련을 무엇보담도 존중시 했고 그 이상의 무슨 가치를 염두에 두질 않었다.
민족이 해방되자 어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민주주의에 정신이 팔려 그 주의의 적당하고 요구되는 선결준비는 염두에 두지 않고 그것이 제대로 적용되는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그 결과만을 성급하게 맛볼려고 하는 바람에 자유를 빙자하여 방종을 일삼았고 남녀평등을 구실로 이 나라의 전통적 양습이 땅에 짓밟히게 된 현상을 자아내었다. 정당한 준비 없이 누리려는 어떤 선, 어떤 열매는 그것이 개별적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그것만이 제일이고 최고 가치인양 그 획득에 몰두하게 된다. 이렇게 개별적 가치가 정신적인 것이거나 물질적인 것이거나 쉽게 그 위치의 선후를 구별하기 어렵게 된다.
요즘 각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이 늘어 신체단련에 매우 힘을 쓰는 표가 난다. 또 좋은 일이다. 『건전한 육체 안에 건전한 정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박학하고 인류애에 타는 이라도 몸이 불편하고 병신일 때는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의 교육제가 시국이 요구하는대로 어떤 독특한 가치를 중대시하고 거기 힘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 한 가치에 힘과 시간을 보냄으로 결과되는 절룸발이 비슷한 가치 계급의 형태가 일시적인 것이면 능히 이해할 수 있고 용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국가제도의 각 부분에 종사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100% 그 직장과 자기의 지식과 경험이 부합한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따라서 긴급한 것이 우선 여러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한 조종사가 필요하고 그것을 교육하는 것이 급한 문제이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적 완성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질서잡힌 가치체계를 토대로 한 교육이라야 한다.
덮어놓고 체육만, 덮어놓고 병력만, 덮어놓고 과학만을 중대시하고 비준에 맞지 않는 교육방침을 쓸 때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난다. 아침부터 줄곳 운동장에서 나팔소리, 체육선생의 고함소리가 축구, 농구, 배구……의 몸둥이 훈련을 위하여 그치지 않은 것 같다. 왼종일 이렇게 시끄러운 가운데 뛰어다니며 어린이들-감수성이 많은-의 머리속, 마음속에는 간단 없이 고무해주는 운동시합에 승리함으로 알려지는 학생의 자랑, 운동 못 하는 애들은 응원대에 휩쓸려 들어가 모든 힘과 재주를 부리며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 두 시간 세 시간 머물러 있다.
「스포츠」는 항상 정력과 박력을 젊은이에게 발육 고무시키는 한 수단이며 단체적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목적을 위하여 개인이 단체에게 종사케 하는 교육기술이다. 즉 달리 말하면 「스포츠」는 교육에 있어서 한 부분적인 가치는 갖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교육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가톨릭적 「휴마니즘」과 문화의 중심은 인간의 여러 기능이 가지는 가치에 계급이 있다는 것이다. 즉 하급, 주로 육체적 가치에서 쌓을려가 지능과 의지력으로 이루어진 계급적인 체계에 있다. 지능과 의지, 이 두 가지 상급 가치는 그 기능행사를 위해서 물론 하급기능에 달린 것이지만 육체에 대한 엄연한 통솔권은 지능과 의지가 가져야 하고 육체를 더 낫고 높은 선을 위해서 종속시켜야 한다. 육체를 정신에 적합하게 종속시키는 것이 인간 전체를 효과적으로 교육하는데 요소가 되는 것이다.
가르치는 이의 사명은 이 종속관계를 보존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해서 배우는 자의 전체적 교육을 완성하는데 있을 것이다. 단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을 부지런한 공부와 씩씩한 육체적 단련으로 균형이 잡힌 다음에는 그 남는 시간과 정력을 지적, 사회적 또는 종교적인 발달에로 이끄는 방향에 써야 한다. 학생은 먼저 독서할 줄 알고 거기에 취미를 갖도록 해야 한다. 직접적인 육체단련고 지적 연마 외에도 시간과 동기를 다른 면에로 옮겨야 한다. 연기, 학술토론, 과학적 실험, 혹은 사회적 종교적 조직 등을 들 수 있다. 「스포츠」가 갖는 역할이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다른 기능이 희생됨으로 피교육자의 전체적 인격 완성에 결핍된 점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질서와 체계가 없는 학교에서는 쉽게 「스포츠」와 육체 단련이 제일 교육목적으로 취득하기 쉽다.
지적연마와 지적생활보담 더 힘들고 피땀을 요구하는 적은 없다. 따라서 자연적 인간의 경향은 누구나 다 경함한 바이지만 학교에서 한 시간이라도 선생이 결근하거나 공휴일로 놀게 되는 것이 무엇보담도 즐거워 하는 것 같다. 이런 자연적 경향에 만일 독서와 연구에서 머리를 돌리는 구실은 무엇보담도 학교 당국에서 정식 시간으로 제정된 체육과 육체단련일 것이다. 만일 부주의하게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을 한 모로만 해석하여 학생들의 자연적 경향을 조장하고 연학과 인격 완성에 요구되는 다른 면을 등한시 한다면 앞날의 중견인물이 될 오늘날의 학생들은 옛날의 육체 지상주의자들이 안 된다고 누가 보장하며 절룸발이 지도자들이 안 됨을 누가 장담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