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宋) 내각수반은 지난 11월2일 하오 1시30분 중앙청에서 대전교구장 <원>주교 및 춘천교구장 <구>주교 야우이에게 윤대통령을 대리하여 문화훈장(文化勳章)을 수여하였다. 이번 우리나라의 훈장을 받으신 영예의 주교는 외국인 주교로서 평생을 바쳐 우리나라 사회사업과 문화향상에 큰 공훈을 세운 바 있으며 특히 <구> 주교는 6·25 사변 당시 북한 괴뢰들에게 납치당한 일까지 있다고 내각 사무처에서는 밝혔다.
■ 歷略 및 功勳
▲元亨根 주교(안드리안·요셉·라리보=佛人) 신학박사, 대전교구장, 빠리외방전교회 소속, 불란서 「라로미에 겔스」에서 1883년 2월4일 출생, 1907년 3월10일 사제서품, 1907년 5월21일 한국에 입국, 1927년 5월1일 주교성성
지난 54년 여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만주」의 교포를 따라가서 전교는 물론 인도주의적 자선사업 등을 몸소 영위하시면서 항상 이민족과 고락을 같이하시며 가난까지도 감수하셨음.
우리 민족운동을 염려·후원하신 주교께서는 일제치하 특히 제2차 대전 중에는 일경의 압제에 의해 옥내 연금을 당하셨음.
한국 천주교회에 일본인 주교를 임명하려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예견하시고 자기의 서울교구장직을 사퇴하시는 한편 한국인 주교 임명을 교황청에 간청하셔 뜻을 이루고 현 서울교구장 <바오로> 노기남 주교님이 취임하셨음(자기는 용산에 은퇴).
온 평생을 본국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마다하시고 이 나라와 민족과 동고동락하며 성덕으로 민주주의 원리와 민족상애(民族相愛)의 실현에 진력하셨음.
▲具仁蘭(토마스 F 퀸란=愛蘭人) 신학박사, 춘천교구장, 골롬반회 소속, 애란국 「보리소대이」시에서 1896년 9월13일 출생, 1920년 2월2일 사제서품, 1934년 6월29일 한국에 입국, 1955년 11월23일 주교위에 성성.
중국에서의 저명한 전교신부로서 이름있던 주교님은 소속 「골롬반회」 지시로 한국 전교사업의 개척자로 지명되어 이곳에 오셨음. 일제치하에서 한국 민족의 독립운동을 창도하셨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년 여를 옥중생활하시고 제2차 대전이 일어나서 끝나기까지 옥내 연금을 당하는 등 일본인에 의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으셨음.
한국이 해방되자 곧 주교님은 때를 놓지지 않고 교육·자선사업을 착수하시는 등 강원도의 험로를 헤치며 병고와 가난에 쏘들리는 이 겨레를 돌보셨음.
6·25 동란이 일어난 뒤 계속해서 양들을 돌보시던 주교님은 다른 성직자, 신자들과 같이 공산괴뢰군에 납치되어 죽엄의 행군을 평북만포진까지 당하셨음. 강제행군이나 수용중, 주교님은 자기의 괴로움은 돌보지 않고 오직 인보애(隣保愛) 정신으로 신자·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신음 중의 동지를 위안 간호를 하시는 등 영웅적인 일을 계속하시다가 마침내 자기도 병에 걸려 본국인 「애란」으로 송환되셨음. 한국을 떠나 살 수 없는 주교님은 1954년 재입국에 성공했음.
주교님이 죽음의 행군 중 직접 간호했으나 효험없어 별세하신 초대 주한교황사절 <번>주교님의 후임에 취임했음.
주교님은 높으신 성덕과 겸손으로 1957년 영예의 교황사절직을 사임하고 필생의 염원인 전교사목의 길로 돌아가 춘천교구장으로 다시 취임하여 강원도민을 돕는 전력을 다했음.
주교님은 거반 「로오마」 여행 중 다시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병환에 빠졌으나 쾌유되신 후 이땅에만 당신 뼈를 묻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 귀임하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