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10) 지난 동안의 줄거리
미셀·까루우즈 原著
발행일1961-11-12 [제302호, 4면]
<샤트르 드 후꼬오 드 풍브리앙> 자작은 프랑스 「페리그으르」주의 귀족 출신이며 부유한 가정의 청년이다. 그는 단란한 가정에 태여났으나 유년시절에 이미 그의 양친을 여의고 그의 외조부인 퇴익보병대령 밑에서 자라나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얼마후 그의 조부마저 잃고 그의 나이 겨우 이십세 때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 그는 이 육사시절부터 군기를 위반하고 면학을 경멸했을 뿐 아니라 그의 막대한 재산을 사치한 도락생활에 탕진했다. 졸업 후 「쇼뮤르」 기병학교의 일년 동안도 악희에 찬 끊임없는 물의를 이르킨 끝에 87인 중의 87번으로 졸업했다. <후꼬오>는 「세산느」의 제4경기병대의 소위로 서임되어 곧 「풍타무숑」으로 전임해 갔다.
이곳에서 <미미>라는 여성을 알게된다.
이런 절조 없는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재질과 인품은 그 당시 동료들의 인기와 찬탄을 받았다. 일년 후 그의 연대가 「알제」에 주둔하게 되었다.
<후꼬오>는 그곳에 애인을 동반하고 가서 전레없는 추문을 일으켜 그는 여인이나 직위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도록 강요당했다. 그는 서슴치 않고 애인을 데리고 태연히 연대와 이별하고 「에뷔앙」으로 떠났다. 어느날 신문에서 「아프리카」 남「오랑」현에 폭동이 일어나 그의 제4경기병대가 출동한 것을 알았다.
삽시간에 아프리카의 전화는 <후꼬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는 파리육군성으로 달려가 단지 알제리아의 기병으로 출전할 것을 탄원했다. 그는 이전의 직위로 복귀되어 모록코 전쟁의 한가운데 뛰어들었다. 이 전쟁에서 그는 군인으로서 무쌍한 용기와 지휘관으로서 의협심에 찬 헌신적인 노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무엇보다 이 사막의 한가운데서 그가 얻은 것은 회교도들의 장엄한 예배를 목격하고 그리스도의 아들이면서 이미 불신자가 된 그가 비록 적이며 이교도이긴 하나 그들의 깊은 신앙에 끝없는 감명을 받은 것이다. 전쟁이 끝나 그의 연대는 돌아가는데 <후꼬오>는 이 신비에 찬 이교의 땅을 탐험할 결심으로 휴가를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는 재차 군대와 헤여졌다. 당시 모록코는 대서양의 입구에 있는 회교문명의 대요색이다. 당시 이 지방의 야만적이며 장엄한 아름다움을 탐험하기 위해 들어가는 유럽인은 생명을 걸지 않으면 안 되었다. <후꼬오>가 알제의 도서관에서 모록코 여행에 대한 연구와 준비에 골몰하고 있을 때 파리에 있는 그의 친척들은 막대한 재산을 사치로 탕진하던 그가 이번엔 목숨을 걸고 「모록코탐험」이란 허무하고 정처 없는 망상에 쫓기는 그를 붙들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고 그에게 경제적 제재를 할 법적후견인을 붙혔다. 어떠한 강압에도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유데교 재관인 <말도세>라는 늙고 무기력한 안내인을 동반하고 그 자신 유데교제관으로 분장하여 위험한 만지의 탐험을 떠났다. 이 험난한 여정에서 이 늙은 유태인은 지리를 잘 모를 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말썽부려 그들의 논쟁은 끝이 없었다. 어느날 두 나그네는 모록코 땅인 「탕제」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여기서 아라비아의 성도 「세사우엔」으로 향해 떠나던 도중 목숨을 잃을번 하고 돌아와 「제다」(당지의 주민으로 여행자의 보호인 역할을 함)를 동반하고 「휏쯔」로 떠났다. <후꼬오>는 이 위험한 여행에서 여러 사람의 눈을 피해 끊임없이 과학적 관찰과 아름다운 자연을 기록하고 있었다. 「휏쯔」에 이른 그들은 그곳에서 유력한 유데인의 주선으로 중부 「아트라스」산맥 사이에 있는 미개하고 광대한 지방 「타틀라」로 갈 계획을 꾸몄다. 그는 그 유데인에게서 「타틀라」와 「부우쟈」의 모든 회교도의 영적 두목인 <시디·벤·타우드>에게 보내는 유력한 소개장도 얻었다.
不歸順地方을 건너서 ①
「메크네스」에 도착한 두 사람의 나그네는 <서디·오마르>를 방문했다.
「세리프」는 전연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징 않다. 불귀순지방(不歸順地方)인 <브레도·에스·시바>의 영역은 이 마을 바로 근처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세리프」 자신도 「제다」를 데리지 않고서는 거기에 들어가는 모험을 할 수 없는 것이다.
8월27일, 비로서 「세리프」는 출발할 눈치를 보였다.
첫날부터 여러 가지 사건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 시간 동안에 다섯 차례나 「즈므우르」족의 전사들이 길을 차단하고 통행세를 요구했다.
이튿날 그들은 50명의 상인을 오렌지와 야자열매 오리이브, 붉은 피이만, 등의 열매가 산적해 있는 노천의 큰 시장으로 모여들게 하였다. 그다음 다음날 호위를 강화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안전성이 더욱 적은 지방에 일행이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도세>는 더욱더욱 한탄하고 있다. <후꼬오>는 그를 대단히 밉살스럽게 보고 있었다.
도중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제다」들이 살림속 한 가운데까지 왔을 때 발을 멈추고 추가금을 요구했다. 만일 들어주지 않으면 즉시 대상을 헤체해 버린다고 협박하였다.
도중에 밤이면 야숙을 하며 혹은 유데아인이나 회교도들의 정성어린 후대를 받기도 하였다.
이 지방 사람들은 대로상의 강도인 동시에 친절하게 환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그들을 맞났을 때의 정세와 그리고 때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소개장 여하에 달려있는 것이다.
「타들라」가 가까워졌다. 그것은 흰 나석(裸石)이 즐비한 망막한 평원이며 중부 「아트라스」 산맥의 기슭까지 연속해 있다. 그곳은 전부가 유목민인 강력한 그 부족의 권한 내에 속해있었다. 그들은 유일한, 권력, 즉 <시디·벤·타우드>의 권력만을 인정하고 있었다. 9월5일, 대상들은 「타들라」의 입구에 도착했다.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나머지 얼마 안 되는 길에는 내가 이날까지 지나온 모든 여정에 있어서와 같은 정도의 위협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아나이아」도 그리고 「제다」까지도 없다. 통과하는 인자는 누구든지 습격을 당한다. 대상이 50정의 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감히 모험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처럼 위험한 가운데서도 하나의 구원의 길은 있다. 그것은 존경하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들도 <시드·벤·타우드>는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무기로서는 습격을 막아낼 수 없는 곳에서도 성가족(聖家族)의 일원인 평화의 일산(日傘)은 모든 위험을 멀리 하는데 충분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고독한 여행자나 여러 수송대가 「부우쟈」에 가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시디·벤·타우드>의 친구의 한 사람이든가 혹은 그의 손자에게 자기네들을 마중나오게 하도록 그에게 청하는 것이다.
아라비아의 성자들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덧붙혀 말해둔다.
나는 <시디·벤·타우드>에게 마중을 나와 달라는 청을 하는 동시 가지고 온 그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급히 전달했다.
한 사람의 심부름꾼이 이 용무를 완수하기로 하였다. 그 사나이는 입고 있는 옷을 거의 전부 벗어버리고 출발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안전히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시디.벤.타우드>는 누구보다도 뛰여나고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세리프」도 아니며 종교형제단원도 아니지만 「오마르」(<마호멧트>의 친구이며 「이스람」의 제2대왕)의 후손인 것이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대종가(大宗家)다.
『그는 대성가족 의장이며 그의 조상의 기도에 의해서 태여난 하늘의 특별한 은총의 대상인 지복자들의 유서 깊은 혈통의 자손이다.
사람들은 그 속에 있는 성스런 피를 존경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토지를 풍요하게 하며 가축의 무리를 번영시키고 그리고 저 세상에선 천국의 문을 여는 그의 축복을 신뢰하고 있다. …』
<후꼬오>는 이처럼 권력이 있으며 또한 친절한 인간에게 직접으로 소개를 받는 행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후꼬오>는 그로부터 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 동안에 밤에는 어떤 「쿠자아르」(방비시설을 한 마을) 속에서 지냈다.
이튿날 아침 10시 반경에 대상 중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일어났다. 시름름꾼이 돌아온 것이다. 그는 나귀를 타고 양산을 가지고 단지 노예 한 사람을 대린 미소년과 같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