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入門(입문) 講座(강좌)] ⑫ 가톨릭이 받는 聖事(성사)란 무엇인가? (1) 寵愛生命(총애생명)
발행일1962-05-06 [제325호, 2면]
누구든지 진해에 가본 일이 있다면 해군통재부 앞에 우뚝 서 있는 웅장한 동상을 보앗으리라. 이것은 우리 한민족이 자랑하고 공경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다. 이 동상은 이순석교수의 역작으로 참 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상이 대표하는 분이나 이를 제작한 분이 다 훌륭하다. 그러나 이 동상과 산(生) 사람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사람은 호유한다. 음식을 먹는다. 팔다리를 움직길 수 있다. 말한다. 생각한다.
그러나 동상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동상이 절대로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고 동상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조물주께서 우주와 그안에 들어있는 만물을 ㅊ아조할 때 모든 것을 꼭같이 창조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알 수 있는 바에 의하면 그의 조물들에는 여러가지 생명의 층계가 있다. 제일 아랫층에 무생물인 돌, 흙, 금, 은, 철 등 광물이 있다.
바로 그 윗층의 저은 헤아릴 수 없으리만큼 많은 종류의 풀, 꽃 나무들인 식물의 세계가 있다. 식물들은 제일 하등의 생명을 가진다. 식물 위에 더 높은 생명을 가지는 것은 짐승, 새, 고기 같은 동물들이다. 인간은 동물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는 그를 다른 동물에서 분간하는 특수생명 즉 이성과 자유의지의 근거가 되는 생명을 가진다.
인간의 생명은 다른 동물에 그것보다 훨씬 높다.
조물주의 생명이 인간의 그것보다 더 높은 것은 물론이다. 인간의 생명은 한정된 것이다. 그러나 조물주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고 무한하고 전능하고 전진(全眞) 전선(全善) 전미(全美)의 완전 무결한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후 조물주가 제일먼저 세우신 기본적 자연법 측은 조물들이 그가 배치한 생명의 층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초자연적 힘의 간섭이 없이는 광물은 식물의, 식물은 동물의, 동물은 사람의 사람은 조물주의 생명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아파트멘트의 벽돌에 꽃이 피지 않는다. 앞뜰에 심어져 있는 코스모스는 서리가 나리기 시작해도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개(犬) 말(馬)에 대한 애기책이 많으나 그들의 자서전은 나타나지 않는다. 벽돌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코스모스가 집안으로 걸어들어오지 못하고 개가 자서전을 쓰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것을 하는 것은 그들의 자연(즉 조물주로부터 받는) 능력을 능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규측과 법률에는 예외가 있다.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아마 제일 「케이스」의 예외법을 쓰신 듯하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에게는 자연생명만을 주셨을뿐 아니라 「총애생명」(혹 상존성총)이란 초자연적 생명을 붙여주셨기 때문이다. 인류의 원조 <아담>과 <에와>는 이 「총애생명」을 가짐으로 조물주의 현존(現存) 앞에서 생활하여 그와 교재하고 그를 이해하고 그의 행복을 같이 하며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담>은 범죄로 말미암아 이 「총애생명」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조물주는 인류에게 이 생명을 아주 거부하시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구세주를 약속하였고 또 사실로 이를 보냈다. 신인(神人)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된 구세주였다. 그의 구제의 결과는 인류에게 <아담>이 원죄로 잃었던 「총애생명」은 이것을 소유하는 자를 거룩하게 하여 시에게 사랑스런 자가 되게 하고 신의 양자녀(養子女)가 되게 하고 성삼위(聖三位)의 제삼위(第三胃)인 성신의 거처가 되게 하고 죽어서는 천국을 유산받을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총애생명」의 소유는 곧 <아담>이 범죄이전에 가졌던 초자연생명을 소유함을 의미한다. 이 초자연생명은 신의 생명에 참여(參與)함이다. 이 생명은 사람의 육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비지사(神秘之事)다. 그러나 사실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재료를 취급할 때는 언제나 포장(包裝)을 이용한다. 수소(水素)나 「헬리움」 등의 화학원소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다. 이것을 큰 곤란 없이 식별하게 하는 방법은 그것을 담은 강철탱크에다 그것이 들어있다는 것을 명시함이다. 「총애생명」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여 인류를 위해 회복해 놓은 이 생명이 어떻게 사람에게 오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은 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신이었기 때문에 인간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총애생명」이 어떠한 포장에 의해 식별되기를 원하였고 일정한 포장을 제정하였던 것이다. 그가 제정한 포장을 가르켜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사(SACRAMENUM SACRAMENT)라고 부른다. 가톨릭교회에는 일곱가지 성사가 있다. 이 일곱가지 성사중 어떤 것은 「성총생명」을 부여하는 것이고 어떤 것은 이것을 잃었을 때 회복하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이미 사람 안에 있는 「총애생명」을 더 풍부하게 하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