彫刻(조각) 안톤 그라우엘
聖物 商業化에 큰 警鍾
발행일1961-11-19 [제303호, 4면]
교회 안의 수많은 종교 미술가 중에서 성당과 신학교 및 학교를 위한 아름답고 획기적인 미술 작품으로서 자기 인생을 바친 예술가로 아마 <안톤그라우엘>을 손꼽을 수 있겠다.
<프란크 맥드날 드리드>記
특이한 수법을 가지고 있는 조각가 <그라우엘>은 1951년에 「독일」 서부로부터 미국으로 이민했고 미국인으로 귀화하였다.
<그라우엘>과 그의 아내 <엘스>는 그해 12월에 미국에 도착한 이래 줄곧 「위스콘신」주 「베로이트」에 거주하고 있다. 「베르린」에서 자유로히 작품호라동을 할 때에는 「힛트러」정권 당시의 「독일」 미술계의 거물인 <에른스트 바자흐>·<게오르그 콜베>·케테콜비츠>등과 친교가 두터웠다.
그가 「이태리」와 「불란서」에서 미술연구를 할 때에는 <도나텔로> <미케란제로> <로뎅> <마일롤>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1931년부터 「베르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독일」 내 주요한 도시 「쾨른」·「함부르그」·「후란크프르트」·「듓센돌프」·「브레스라우」 등지에서 작품 전시회를 여러번 가졌다.
1943년에 그의 집이 폭격을 당하자 가족과 같이 「스페살트」산의 한산한 골짜기에서 거주하였다.
6년 후 그는 가족을 거느리고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자기가 찾은 선대륙을 거의 대부분 여행하여 자기가 영주할 정착지를 찾아 헤매다 결국 「위스콘신」주의 「베로이트」에 짐을 풀어놓았다.
미국에 정착한 지 불과 1년도 못 가서 많은 미국인들은 그의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국내 최대지의 하나인 어떤 신문은 그의 작품을 『장엄』이라고 표현하였다. 많은 대학과 미술관으로부터 그의 작품 전시회의 초대가 날라들어왔다.
그는 14세 때부터 벌써 물과 나무로 조각 연구를 시작하였다.
1920년에 「프란크풀트」의 「스타에델」 미술학회에 들어갔다.
그 후 10년간 <리칼드슈라이베> 교수의 지도 아래 연구와 작품 제작생활을 계속하였다. 이 기간동안에 그는 「이태리」, 「서서」, 「불란서」를 두루 여행하였다.
1929년부터 1942년까지 그는 「프러시안」 아카데미의 초청으로 매년 봄과 가을에 「베르린」에서 작품전시회를 가졌다.
「베로이트」에 도착한 이후 그는 「베로이트」의 「밀오키」미술학회에서 개인전(個人展)을 가졌다.
종교와 전례미술의 전문적 연구로서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저명한 상(賞)을 수여받았다.
그 중에는 「노틀담」대학의 「모로」신학교 성당을 위한 그의 작품인 「스테이숀 오브 크로스」와 「이리노이스」주 「원덜 제이크」의 「그리스도왕」 교회 내부 장식으로 수여받은 「십자상」도 포함되어 있다.
<그라우엘>의 작품은 「독일」 초창기의 전통을 대체적으로 답습하고 있다.
「스테이숀 오브 크로스」와 「그리스도왕」 교회 안에 조각되어 있는 「예수상(像)」은 그의 가장 『현대적』 작품의 하나이다.
<그라우엘>은 전례(典禮) 미술 분야에 있어서 명민(明敏)하고 간결(簡潔)한 미술가로 자신을 확립시켰다.
그러나 많은 다른 양심적인 미술가들은 교회를 위하여 작품을 제작할 행운을 아직 가지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조각분야의 수상 작가이며 「노틀담」의미술관장인 <안토니 J 라우크> 신부는 이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종교적 주체(主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술가들은 그것의 제작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교회 밖으로 매도하고 있다.
「쎄인트 루이스」의 어떤 여류 미술가는 나에게 가톨릭 신자는 잠자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작품을 「프로테스탄트」에게 팔고 있다고 말하였다』고 솔직히 말하고 있다.
<안톤 그라우엘>은 『과거 몇 세기를 통하여 보더라도 종교미술은 언제나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왔다』고 말하고 『시초부터 그리스도교는 천주를 찬미하고 제성(諸聖)들을 공경하는데에 그림을 사용하여 왔고 여러 가지 상의한 종류의 미술로 종교적 이야기를 묘사함으로써 백성들을 가르쳐왔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언제나 위대한 미술가의 작품을 동반하여 왔다.
물질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는 현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종교가 더욱 중요하여졌다.
불행하게도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교회미술은 빈약하고 지나치게 상품화된 대량생산에 치중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