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寶鑑(시사보감)] (27) 20世紀間(세기간) 敎會史摘記(교회사적기) (7)
발행일1962-05-06 [제325호, 3면]
17世紀
▲1601=예수회원 선교사 <마데오 리치> 신부 중국 북경(北京)에 진출. ▲1613-1642=<갈리레오> 문제가 일어났다. <갈릴레오>는 교회와 화목리에 사망했다. ▲1649=<올리바 크롬웰>이 「아이란드」를 침략하고 참한 가톨릭박해를 처 감행했다. ▲1653=교황 <이노첸트> 10세가 <얀센>의 오(誤)를 단죄했다. ▲1669=교황 <크레멘트> 9세가 30년간의 「얀세니즘」 소동을 진압시켰다. ▲1673=영국에서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영국교회의 교리와 영성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공직에 취임할 수 없는 법령을 공포했다. ▲1678=영국에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학살되었다. <티투스 오아테스>라는 앙그리칸 교직자는 가톨릭 신자들이 <챨스> 1세를 암살하고 프랑스군을 상륙시켜 런던을 불태우고 예수회원들이 정부를 장악한다는 허설(虛說)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1689=영국에 종교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가톨릭은 전혜 그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18世紀
▲1713=교황 <클레멘트> 11세 「얀세니스트」 의 101개 항목을 단죄했다. ▲1724=중국에서 가톨릭 박해 ▲1738=교황 <클레멘트> 12세 「후리메존」을 단죄했다. 가톨릭시낮로서 동 「후리메존」에 가입하는 자는 파문된다고 선언했다. 「후리메존」의 단죄와 금지는 1751년 <베네딕트> 14세에 의해서 그리고 그후의 교황들에 의해서도 금지되었다. ▲1759-1773=예수회의 압력, 그들은 1759년 폴튜갈에서 1764년 프랑스에서 1767년 스페인에서 각각 추방되었는데 그 중요 원인은정치적인 줄을 단데 있었다. 1773년 <클레멘트> 14세는 여기 관련된 교서를 발표했으나 동회 및 회원에 대한 비판은 언급되지 않앗다. 동회는 1814년 회복되었다. ▲1778=영국에서 가톨릭구제법이 통과되었다. 가톨릭신자도 매매하고 토질르 상속할 수 있으며 신부들에 대한 종신형을 철회했다. ▲1789=미합중국에 종교자유가 선포되었다. ▲1789-1799=프랑스의 교회사정.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교회재산을 민영화(民營化)하고 성직자에 관한 헌법규정 등을 제정했다. (1790) 교황 권위에 복종하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를 박해했다. <나뽀레온>이 교황영토를 침범했다. (1796) ▲1796-1799=박해가 거듭되었다. 프랑스의 비(非)그리스도교화를 획책했다. 1789년에는 프랑스군이 로마를 완전 점령하고 교황을 프랑스로 연행해갔다. <비오? 6세는 1799년 「발렌스」에서 서거했다. 새 종교의 설립을 계획했다. ▲1794=<비오> 6세는 1786년 「피스트와」의 교구회의를 단죄했다. 동 회의는 「얀세니즘」과 「갈리카니즘」을 찬성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