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歐洲隨想(구주수상)] ④ 우선 인간을 사랑한다
CIDR 會員(회원) 黑人(흑인)되려하고
다섯 以上(이상) 헤지 못하는 키르디族(족)
唯一神(유일신)만은 믿고 있으나
발행일1962-05-06 [제325호, 3면]
지난번 호에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땅 「마요 울데메」와 이 땅의 주인인 「키르디」족(族)들의 이야기를 했다. 이 부족(部族)들은 옷을 입을 줄 모른다. 우물을 파면 물이 고이는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물을 찾아 몇십리씩 돌아다닌다. 수(數)를 헤아리면 다섯 이상은 모른다. 사람들은 그들을 미개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이신 하느님」이 계신 줄은 다 알고 있고 이 어른을 잘 모셔야 한다고 믿는 그들은 철따라 하늘과 땅에 변동이 있을 때마다 인간생활에 길흉사가 있을 때마다 희생의 제물을 바쳐 제사를 올릴 줄 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신 이 위대한 어른의 마음을 상해드리지 않으려고 죄로운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교우」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도 구속공부도 부활도 모른다. 설명을 해도 못알아듣는다. 교리를 가르쳐도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너무 거리가 먼 것이다. 그들에게는 정신생활보다 육신생활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먹고 입고 사는 것이다. 성당에 까지 발가벗고 들어와서야 되겠느냐 말이다. 교리보다 먼저 배워야 할 일은 우선 사는 법이다. 그 다음은 잘사는 법이다.
이것은 말로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니다. 누가 그들 속에 들어가서 같이 살고 같이 발전해야 하겠다. 이 어려운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마요 울데메」에 있다. 그들은 성직자도 수녀도 수사도 아니다. 그들은 이 원주민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법도 없고 서앙에 오라고 하지도 않는다. 오직 그들을 사랑하며 같이 살고 같이 웃고 같이 울고 또 생활상에 필요한 조그마한 기술을 자기 손으로 해보일 뿐이다.
이 친구들은 「CIDR 」(국제향토개발협조회)에 속한 일꾼들이다. 이 일행은 국적이 다른 아홉사람들로 조직된 한 「팀」이다. 의사(醫師) <듀베리>와 역시 의사인 그의 아내 <안나 마리아>. 이 두 내외는 하루 2백50명의 환자를 보고 월요일은 3백50명을 진료한다. 주일날은 「키르디」어로 성가를 부르는데 목청을 뽑고 교우로서 신부를 도우고 「키르디」어 통역을 한다. 그 부인은 시집을 온다고 남편을 따라 곧장 온것이 이런 곳이었다. 화려한 「프랑스」의 학생 <안나 마리아>의 꿈은 인류를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막연한 꿈이 이럴줄은 몰랐다.
처음 일주일은 눈물로써 세월을 보냈고 다음 일주일은 남편 <뚜베리>의 총각시절에 밀리고 쌓인 빨래를 하고 그토막을 청소하는데 그리고 지금 그는 병원일을 보고 남는 시간에는 「키르디」 부인의 성인교육을 한다. 수십만 부인중에 겨우 세사림이 옷을 입고 <안나 마리아>의 제작 되었다.
첫번 공부가 바늘에 실을 뀌는 법, 둘때 고부가 단추다는 법. 그러나 그 제자들은 아무리 가르쳐도 등이나 소매가 아무데나 단추를 달아놓고 좋아라고 한다. 왜단추를 다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요셉 와그네르>라는 독일 사람은 학교를 시작했다. 꼬마들을 모아놓고 급식(給食)을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 오는 아이들에게는 샛빨간 잠방이를 입혔다. 교복(校服)이다. <요셉>은 꽃이 없는 이 고장에 저 붉은 잠방이가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혼자 만족해하고 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날 이 사업은 일단계가 끝나고 그들의 손으로 이 사업이 계속 될 것이다. <요셉> 이하는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팀」의 당가(當家)의 일도 맡아본다. 그는 낡고 우굴어 진 나팔을 하나 가지고 있어 식사때마다 「마요」의 산골짝을 우렁차게 한곡씩 길게 뽑는다.
「베르기」 사람 <바이온>은 >미셀>과 같이 제이 부락을 착수했고 <조르쥬>는 농사지도원 양성소를 맡아보고 원예와 농사일을 지도한다.
그는 흑인처녀와 약혼을 해놓고 꿈속에 살기도 한다. <아니크>는 학교 선생이고 그 남편 <그로드>는 농사기술자 <로랑>은 건축가다. 흙벽돌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키르디」들과 같이 집을 짓는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내 몸같이」 남을 사랑하는 일은 나를 버리는 사업이다. 천주를 사랑한다는 사람은 많으나 진정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에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보이지 않는 천줄르 사랑할 수 있으랴. 저 새카만 「키르디」도 천주의 모상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