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漠(사막)의 불꽃] (31) 베니 아베스의 사랑의 집 ②
발행일1962-05-06 [제325호, 4면]
『영혼이 눈에 보이는 것에 끌려 나가지 못하든지 방해가 되지 않고서 똑바로 확실하게 천주에게 올라가는데 편리한 것은 고독하고 풍경이 주엄한 장소이다.』
십자가의 성 <요왕>은 『갈멜산 등반』에서 이렇게 썼다. 그리고 드 후꼬오 신부는 친구인 트라피스트 수사 <재롬> 신부에게 이렇게 썼다.
『천주의 은총을 얻으려면 사막을 지나고 사막에 머므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사람이 자기를 무료하며 자기 가운데에서 천주 아닌 모든 것을 몰아내고 천주께만 모든 자리를 옮겨 드리기 위하여 우리의 영혼이란 이 집을 완전히 비게할 수 있는 것도 그곳입니다. 해브라인들은 사막을 지나갔으며 모이세는 사명을 받기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었읍니다. 성 바오로와 금구 성 요왕도 역시 사막에서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은총을 입었을 때이며 열매를 맺으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지나가야 되는 시기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이 침묵이 잠심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잊어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낮은 지방 속에 있는 메마른 땅은 「메니 아베스」의 토민 관리의 것이었다. 신부는 종자매 <마리>가 그에게 보내준 천프랑 가량의 돈으로 이 땅을 사버렸다. 나은 것은 그것을 정리하는 것이다. 작은 집을 세우고 우물을 파며 야채밭을 조금 갈고 낮은 곳에는 야자와 오리브나무를 몇주 심지 않으면 안된다.
은수자는 일을 시작했으나 그것을 혼자서 해치운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레니오> 대쥐가 골이 빠지는 일을 맡아서 할 병사 몇명을 보내주었다. 신부는 종자매에게 이렇게 써보냈다.
『성당의 내부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색인 흑진주색의 모르다아르로써 거칠게 발랐읍니다. 대들보는 굵은 야자수로 되어있읍니다. 이것은 대단히 거칠고 소박하나 조화된 아름다운 것입니다.
대들보를 바치기 위하여 한가운데에 네게의 야자수 기둥이 어 있읍니다. 이 소박한 중에서 이 기둥이 대단히 좋은 효과를 내어서 제대를 보기 좋게 에워싸고 있읍니다. 제대 모서리 아까이에 있는 기중에는 석유람프가 걸려있으며 그것이 나를 위하여 밤을 비쳐주고 재대에 풍부한 광선을 던져줍니다.
눈의 성모수도원에서 나의 지시대로 만들어서 나와같이 운반해온 이 제대는 뜯어 맞출 수 있는 대단히 간단한 것이지만 지극히 청결하고 경건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흑단위에 동을 씨운 것이며 대단히 아릅답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크라라다회수도원장의 선물입니다.… 성당은 10센치 두께의 장미색 사층(砂層)(이 지방에는 이것이 얼마든지 있읍니다)으로 덥혀있읍니다.…』
신부는 1901년 2월 1일에 처음으로 여기서 미사를 드렸다. 높이 걸려있는 작은 나무십자가가 없다면 이것은 알제리아의 토민 오막사리와 같은 것이다. 이 성당은 이제부터 그 옆에 세우려고 하는 몇개의 작은 방들과 거의 구별이 없는 것이었다.
「베니 아베스」 에 이 우둔소를 축조할 때 홗실히 이신부는 그의 1899년의 대계획을 기초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샤르르는 「베니 아베스」 또다시 나자렡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 온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여전히 불변하다고 하지만 그의 주위의 현실은 변하였으며 샤르르 수사가 그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방법도 달라졌었다. 이 은수자의 새로운 생활을 레니요> 대장은 공식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요악하고 있었다.
『후꼬오 신부는 올타리안의 생활을 회복하려고 그 건물이 접하여 있는 토지 한계선을 긋고 결코 그것을 넘어자기 않습니다. 가지 돈으로 임금을 주어가며 몇사람의 토빈을 써서 그 주택의 서쪽에 있는 낮은 땅에 보리를 갈았읍니다. 거기에 움물을 몇개 팟으므로 곡물에 물을 줄 수가 있읍니다. 그는 야자여매와 관리국에서 구하는 빵으로 살고 있읍니다 가시로 있는 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할 밀가루와 보리 야자열매를 사는데 쓰고 있읍니다. 주둔군의 사관들이 거듭거듭 부탁햇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식을 조금도 변경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방에서 그에게 보내오는 야채는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나 객실에서 하루저녁 묵어가는 나그네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우라의 토민들은 깊은 존경을 후꼬오 신부에게 보내고 있읍니다.』
매일아침 날이 새기 전에 그는 사막의 절대적 침묵 속에서 미사를 드린다.
『이 미사에 참여한 일이 없는 사람은 미사가 무엇이지를 알지 못한다.』고 보미사를 하고 있던 옛날의 병정은 말하고 있다.
『그가 <주여 나는 불초한자이오니>라는 말을 할 때 그 어조에는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사하라의 땅에 있는 이 기묘한 토민 오두막집들이 은수자의 주택이었으며 여기에서 신부는 사막의 한 사람으로서 살았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예루살렘과 같이 완전히 고독한 오두막집은 아니다. 그것은 은둔소인 동시에 하나의 사랑의 집인 것이다. 은수자는 거기에 찾아오는 사람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써 형제와 같이 영접한다. 「간두라」(아라비아식 작업복) 위에 예수성심의 표시를 붙인 것과 같이 그는 그 은둔소를 『성심의 사랑의 집』 「후라때르니떼 듀사크레 꾀외르」라고 명명하였다.
어떠한 사람도 「베니 아베스」의 사제인 후꼬오가 선언하고 있는 신앙의 멧세지에 관해서 오해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또한 아무도 후꼬오의 애덕의 멧세지에 관해서도 오해를 할 수는 없다. 신부는 천주의 사람이다. 그를 세속과 격리시키고 있는 울타리 속에서는 세상의 모든 울타리가 무너지고 만다.
즉 사관도 병사도 프랑스인도 아라비아인도 벨베르인도 흑인노예도 토민도 관리도 걸인도 그리스도교신앙 없는 사람도 회교도도 얌전히 지나가고 있는 유목민들까지도 사랑의 집 속에서는 형제로서 영접되는 것이다.
나자렡에서 하듯이 기구와 조배 속에 살기 위하여 「베니 아베스」에서도 신부는 시간표를 만들었다. 나자렡에서는 그 시간을 지키는 것은 쉬웠다. 「베니 아베스」에서는 이것은 전보다 어려웠다. 밤중에 자지 않고 있는 것은 그의 자유이지만 낮에는 몇번이고 방해를 받게 되었다.
그는 아무 불평도 없이 결코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천주께 대하여 고정된 신공을 중지하는 것은 군복과 아라비아인의 두건이 붙은 외투 및에 숨어있는 천주께 봉사하기 위해서였다. 샤르르 수사는 그리스도가 앗시지의 성 프란치스꼬 앞에서 나병자 대신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 사실인지 어떤지를 알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참으로 그리스도였다면 이것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기적인 것이다.
사랑의 집에는 방문자들이 쉴새없이 몰려왔다. 그리스도 교도는 기구하러 왔다. 회교도는 은수자와 같이 천주께 대하여 이야기 하러 왔다. 노예와 걸인은 원조와 비호를 구하러 왔다. 샤르르 수사는 지극한 사랑으로써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그는 빈민구제 사무소의 냉담한 태도나 가련한 사람에게 몸을 숙이려고 하는 귀부인들의 친절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객실 두개에 그들을 묵게했다. 그들과 함께 보리죽을 먹기도 하며 자기보다 잠자리에 불편이 없게 가마니를 주었다. 어느날 묵상을 하는 동안에 그는 자기의 환대가 불충분한 것이라고 엄격히 단정하고 더 잘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속옷을 빨고 방소제를 할 수 있는대로 자기가 할 것. 집 속이 가장 비천한 일을 무엇이나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나 자신이 할 것. 그들에게 음료수와 음식을 날라다 주며 이 봉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말 것…』
녹음에 기인한 전도(顚倒)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도 어떠한 계급적 숙명론도 존중치 않고 천주의 아들이 인간에게 자기를 맡기신 것과 같이 옛날의 주인을 하인과 노예들에게 내맡기는 것이다.
「베니 아베스」의 이 최초의 1년간에 샤르르 수사는 불구의 노인 두 사람과 흑인의 노파를 책임졌다. 옛날에 노예였던 이 노인은 거의 장님이 되어서 아무도 그를 데려가지 않았다. 그는 <게랑> 주교에게 썼다.
『내 생활에 대하여 바른 생활을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시간에 10회 혹은 그 이상도 빈민과 병인과 나그네가 나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병인에게는 약을 주고 가난한 자와 노예들에게는 토요일마다 필요하다면 날마다 라도 모아둔 보리와 빵과 야자열매를 분배하며 나그네와 다른 가난한 자에게는 보리죽을 주고 그도 이것을 같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