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87) 서울 약현본당
最初의 西洋式 성당
『허물어진 성당』…『우리손으론?…』
한국 교회사를 간직한 곳
발행일1961-11-26 [제304호, 3면]
시골 사람들이 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하면 첫 눈에 띄이는 서울역 뒷편 언덕 위에 붉은 벽돌로 된 뽀뚝집은 금년이 본당 설정 74주년을 맞는 전국에서 가장 오랜 본당인 약현(藥峴) 성당이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섭정시대에 일어난 그 처참한 1866(丙寅)년 군난의 직후 한국교구 제6대 감목 <펠릭스.리델>(李) 주교와 경상도 지방의 사도(使徒) <아킬레오.로벨트.바오로> 김(金保錄) 신부와 같이 1877년에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원 <가밀로.도우세> 정(丁) 신부가 첫 본당 신부인 이 본당은 1888년 그 당시 『합동산전』(蛤洞山田)이라 불리운 현재의 중림동(中林洞) 149번지에 성당 부지를 마련하고 한국에서는 최초의 서양식 벽돌집 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어 그해 9월에 준공되고 1893년 <뮤델>(閔) 대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역대 본당 신부로는 <가밀로.도우세>(丁), <뽈.비르모>(禹), <요셉> 김(金允根), <바오로> 이(李善用) 신부 등의 시대를 거쳐 1946년 <바오로> 신(申仁植) 신부가 제5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약 10년간 계시다가 서울, 영등포(永登浦)본당으로 전임되었다가 1955년부터 1961년 초까지 약 6년간 주임신부로 있던 <발라바> 김(金哲珪) 신부의 뒤를 이어 다시 이 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현 서울교구 부교구장(副敎區長) <바오로> 신(申仁植) 신부와 두 보좌(11월11일 육군에 입대)가 4천6백여 명 교우들의 사목(司牧)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깊은 본당이요 신자수로서는 명동(明洞) 주교좌 다음 가는 많은 가족을 거느린 이 본당은 1957년에 아현동(阿峴洞)본당을 신설하여 구역을 분할한 후도 현재 남교우 2천25명 여교우 2천6백30명으로 신자 총수는 4천6백55명인데 일정(日程)시대까지는 『가명』(加明) 보통학교를 경영하여 왔고 지금은 옛 「가명학교」 건물을 개축(改築)하고 증축(增築)하여 「성 요셉병원」과 「성 요셉고등간호학교」를 경영하고 있다.
<요셉> 성인을 주보(主保)로 뫼신 이 본당은 신자수는 많지만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70여 년 전에 지은 성당이 비좁고 군데군데 벽돌이 허물어지고 있어 성당의 신축문제가 절실한 당면문제이지만 『본당 신자들의 힘으로는 기대할 수가 없고 달리 원조가 없으면…』하고 본당 신부님은 한숨을 쉬시는 것이다.
평신자들의 사도직 단체로는 「레지오·마리에」가 5개 「쁘레시디움」이 있고 이 본당의 자랑인 「성체회」가 있으며 또 「연령회」가 있는데 때마침 본당 신부님은 「성체회」원들을 인솔하고 「절두산」(切頭山) 순교터를 순례하고 돌아오신 때였다.
이 「성체회」는 고 <요셉> 김(金允根) 신부시대에 설립된 약 20여 년의 전통을 가진 남자 장년층의 조직체로서 성체(聖體)께 대한 열성으로 매일 성체조배와 그밖에 「레지오마리에」 활동과 비슷한 사도직 활동과 교회일의 협조가 그 목적인데 현재 회원은 약 70명이며 「연령회」는 연령(煉靈)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가난한 장례(葬禮)를 돌봐주는 것이 목적이며 한편 교우가정에 있어서도 연도 때에 술떡 같은 음식 위주의 폐습을 없애도록 새로운 생활 개선운동에 적극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