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미국」에서 개봉된 「이태리」의 명감독 <뻬데리꼬뻬리니>의 최신작 『라 돌체 비따』(甘味로운 生活)는 구라파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록을 나타내었다.
구라파 대륙에서 공전의 흥행기록을 세운 이 성 <요안>의 「묵시록」(默示錄)은 수물여섯가지의 중요한 영화상(映畵賞)을 거의 획득하고 있다.
이 영화가 1959년에 첫 개봉된 이래 「이태리」 내에서 선풍적인 열광을 받았고 관객들은 과연 <뻬리니> 감독이 호색가(好色家)냐 예언자(豫言者)냐 또는 추악(醜惡)을 만드는 자냐, 그렇지 않으면 도덕가냐 하여 여론이 비등하였다.
「이태리」 내에서 가장 저명한 신사실파(新寫實派) 감독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는 <뻬리니>는 이러한 국제적인 여론에 관하여 세계적인 대감독 <르네끄레망> <데이비드 런> <이그말 버그만> <죠르쥬 끄루주> <로베르토 롯세리니> 등과 토의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단한 흥미를 도발하였고 현대 사회를 위한 『충격적인 요법(療法)』으로서 수많은 선량한 분노(憤怒)를 만들어 놓았다.
<뻬리니>는 이러한 우리들 세대의 과잉(過剩)과 비법(非法)의 치료에서 20세기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제시해 놓았다.
<뼤리니> 감독은 현대인의 정신적 타락의 심오(深奧)를 세 시간에 걸친 이 영화 안에서 여실히 파고들어 갔다.
<뻬리니>는 1920년 1월20일 「리미니」에서 출생하여 16세 때 홀로 「로오마」로 왔다.
굶주림에 시달리고 직업은 물론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이상조차 없었다. 후에 그는 「라디오」 작가와 연출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그는 모든 것이 뚜렷한 목적의식조차 없었고 되는대로 살자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결국 팔리지도 않는 몇 개의 「코메디」 영화 각본을 쓴 후에 그가 행운을 만난 것은 1944년에 <로베르토 롯세리니>와 <셀지오 아미델>과 같이 대작 『개방(開放)된 도시(都市)』(Open City) 제작에 협력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때서부터 그는 소위 신사실파(新寫實派)의 작가며 제작가며 감독으로 첫 발을 디려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뻬리니> 감독은 『아이 비델로니』 『라 스트라다』 『카비리아의 밤』 드으 대작을 감독하고 난 후 문제의 영화 『라 돌체 비따』에 1백60만「딸라」의 거액을 들여 완성시켜 놓았다.
현재로 보아 <빼리니> 감독의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신약」(新約)의 묵시록과 현대인을 파멸의 위기에 이끌어 가는 현대도덕 기준의 위험스러울 정도의 저하(低下)를 비교시킨 것이다.
『라 돌체 비따』는 평범하고 마치 「뉴스」 영화의 촬영 방법과 같이 만들어졌다.
그 안에는 공상적(空想的)인 시정(詩情)도 없다.
<빼리니>의 기술은 어떤 이야기를 정확하고 「로멘틱」하지 않게 또한 날카롭고 명료한 「이메지」로 담담히 펼쳐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빼리니> 감독은 말하기를 자기의 모든 영화는 자기네 자신을 드려다보는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고 있다.
『라 돌체 비따』의 성격은 바로 이 점을 놀랄만하게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이 영화를 시눚ㅇ하게 검토하고 있는 「미국」의 「영화윤리위원회」(Legion of Decency)는 『이 테마의 영화적 발전에 있어서 영화 제작가는 보다 높은 선풍적인 문제와 사건을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충격적인 장면들은 관능적(官能的) 희열을 위하여 이용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이들 충격 가치는 오히려 악(惡)과 죄(罪)의 유익한 인식을 알려주고 있는데 있다』라고 호평하였다.
이 영화가 수많은 비판과 반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라 돌체 비따』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병들고 있다. <뻬리니>는 우리들 자신의 불행을 강력하게 또 엄격하게 반복시킴으로써 우리들에게 신중한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전에 보지 못했던ㄷ 것을 본다는 충격이 아니라 새로운 경고의 충격인 것이다.
한 마디로 해서 『라 돌체 비따』는 고백문학(告白文學)이다.
<뻬리니>는 그의 작품에 있어서는 신사실파(新寫實派)보다 오히려 도덕가이다.
그는 선(善)의 장례(葬禮)를 비웃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슬퍼하였다.
<뻬리니>는 이 영화에서 세계를 판단하였고 예술가로서 영화인으로서 자기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權-
리챠드 A 더프리 記